결혼 로망스의 파탄

2024-07-04

지난 1일 정부가 저출생·고령화, 인력·이민 등 인구정책 전반을 포괄하는 ‘인구전략기획부’를 신설하겠다고 발표했다. 2005년 저출산 및 고령사회 대응을 국가 의제로 설정한 이후 4차에 걸쳐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수립하여 추진해왔지만, 인구 증가에 별반 효과가 없자 아예 인구전략기획부를 신설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지난 5월9일 윤석열 대통령이 저출생 문제를 국가비상사태로 규정하고 가칭 ‘저출생대응기획부’를 신설하겠다고 밝힌 후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기존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정책 심의 권한만 가졌지 독자적인 집행·예산권이 없어 정책을 의결하고 강제하는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수용한 셈이다.

‘전략’이란 이름부터 눈에 띄지만, 더 놀라운 것은 과거 경제기획원과 유사한 모델로 설계했다는 설명이다. 경제기획원이 어떤 조직이던가? 1961년 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지 불과 두 달여 만에 설립됐다. 경제성장을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고 7차례에 걸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했다. 독자적 예산 편성권은 물론 외자 도입과 배분이라는 막강한 권한도 지녔다. 1963년 경제기획원 장관이 부총리를 겸임하면서 ‘국가주도형 성장제일주의 전략’을 짜고 실천했다. 설립된 지 33년 만인 1994년 김영삼 정부가 폐지했다. 국가주도형 개발이 시대착오적이라는 인식이 컸다.

한동안 역사에서 잊히는 듯했지만, 인구전략기획부가 경제기획원을 인구정책 컨트롤 타워의 모델로 다시 불러냈다. 여러 부처에 흩어져 있던 인구정책과 국가발전전략을 모아 총괄한다. 특히 인구정책을 기획하고 평가할 뿐만 아니라 예산을 배분하고 조정하는 사회부총리 기능도 갖췄다. 마치 경제기획원이 ‘성장률’에 매달리듯, 인구전략기획부는 ‘국가주도형 출생제일주의 전략’을 짜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온갖 정책을 동원할 태세다. 국가가 나서서 산아제한 정책을 통해 인구감소를 이끌었다는 성공의 기억에 의지한다. 사실 20세기 대다수 개발도상국은 산아제한 정책을 통해 인구를 줄였다. 이제 거꾸로 산아증가 정책을 통해 인구증대를 이끌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이다.

과연 국가가 주도하는 출생률 증가 정책은 성공할까? 물론 저출생의 원인으로 지적되는 높은 자녀 교육비, 높은 주택 가격, 공간적 격차 및 불균형을 해소하는 국가 정책은 꼭 필요하다. 이러한 정책이 출생률 상승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국가가 전략적으로 이런 정책을 펼치는 것은 불가피한 면이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빠뜨린 사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혼외 출산율이 매우 낮다. 2018년 기준으로 2% 남짓으로, OECD 평균인 40.7%보다 훨씬 낫다. 일본만이 한국과 같은 수준이다.

올해 서강대 김영철 교수가 펴낸 ‘미혼율의 상승과 비혼가정의 제도화’라는 논문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여성의 사회참여와 경제활동이 활발한 대부분의 OECD 국가에서는 청년이 결혼을 피하는 게 보편적인 현상이다. 결혼생활 대신 비혼동거(cohabitation)나 등록 파트너십(domestic partnership)을 통해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고 키운다. 두 파트너는 각자의 소득과 재산을 인정하고 하는 일도 존중한다. 가사와 양육도 함께 나눈다. 결혼을 안 했으니, 상대 가족이 내 가족이 되지 않는다. 1970년 7.4%에 그치던 OECD 평균 비혼출산율은 2022년 42%를 넘어섰다. 영국, 프랑스, 덴마크 등 50%를 넘긴 나라들도 많다. 이를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모두 ‘비도덕적인 내연관계’다. 그 사이에서 출생한 자녀도 환영받지 못한다. 하지만 사랑-결혼-출산-육아의 자연적 연계를 실천하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로망스 서사가 파탄난 지금, 이러한 낡은 도덕적 판단을 폐기하고 당장 비혼가족의 제도화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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