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비사
제6부. 노태우 레거시 ‘북방정책’과 ‘북핵’
4회. 고립된 북한 ‘개혁개방’ 대신 ‘북핵개발’ 올인
한국전쟁에서 비롯된 북한의 ‘핵폭탄’ 집착

1992년 한·중 수교는 북한에 결정타였다. 반면에 노태우 대통령 입장에서 한·중 수교는 ‘북방정책’의 하이라이트였다. 중국과의 수교로 북한을 완전히 포위 고립시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노태우는 이렇게 북한을 압박할 경우 북한은 곧 개혁개방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 북한은 개혁개방의 물결이 흘러 들어갈 경우 동독처럼 순식간에 무너지리라 예상했다. ‘2000년 이전에 통일될 것’이란 말이 회자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