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고용시장 둔화가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 기대를 누르고 있는 가운데, 인공지능(AI) 확산이 일자리 흐름을 바꾸는 ‘숨은 변수’로 떠올랐다.
20일 한국은행 뉴욕사무소가 내놓은 ‘AI 확산이 미 노동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한 시장 참가자 평가’의 내용이다. 이에 따르면 시장에서는 신규 대졸자가 일자리를 얻기 어려운 주요 요인으로 신입직원 업무의 AI 대체를 지적하고 있는 걸로 나타났다. 비교적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를 AI에게 맡기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의 고용지표는 두 달 연속 하향 수정되며, 6월 취업자 수는 53개월 만에 ‘마이너스(감소)’로 전환됐다. (-1만3000명) 7‧8월 일자리 증가 폭도 시장 기대에 못 미치며 고용 위축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이에 대해 골드만삭스는 “테크 부문의 2030 청년층 실업률이 올해 들어 약 3%포인트 상승했다”며 “AI 활용도가 높은 마케팅 컨설팅ㆍ그래픽 디자인ㆍ사무관리ㆍ콜센터 등도 고용 증가율이 마이너스로 전환됐다”고 짚었다. JP모건도 “최근 2년간 AI 발전으로 인해 노동력 대체 효과가 큰 ‘비반복적 인지 노동 직군’(경영ㆍ엔지니어ㆍ디자이너ㆍ전문직 등)이 실업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학계에서도 비슷한 분석이 나온다. 최근 스탠퍼드대 디지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소프트웨어 개발, 고객 서비스 등 AI 노출이 큰 업종에서 22~25세의 '초기 경력자(대학 졸업 후 첫 취업)'의 고용이 약 13% 감소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챗GPT가 출시된 2022년 이후 미국·영국에서 초급 직책의 구인 공고가 급감한 사례를 들며 “신입 일자리의 일부가 AI에 의해 빠르게 흡수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은 “AI 주도의 일자리 대체가 초기 단계에서 이미 진행 중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Fed는 아직 AI의 영향에 대해 신중한 태도다. 앞서 제롬 파월 Fed 의장은 “AI가 신입사원 고용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있으나,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는 말하기 어렵다”며 "지금의 고용 흐름을 좌우하는 주된 요인은 아니다"고 했다.
한국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일자리 중 절반 이상(51%)이 AI 도입에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7%는 AI에 의해 대체되거나 소득이 감소할 가능성이 큰 걸로 분석됐다. 오삼일 한은 고용연구팀장은 “단기적으론 AI가 고용에 미치는 충격이 크지만, 지속될지는 불확실하다”며 “대학은 근본적 교육 시스템에 대해, 기업은 장기적으로 인재를 어떻게 뽑고 키울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중장기적 영향에 대해선 의견이 갈린다. 골드만삭스는 “AI 도입 초기에는 실업률이 0.3~0.5%포인트 오를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새로운 산업ㆍ일자리 창출과 노동 수요 재조정 등이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JP모건은 “비반복적 인지노동 직군이 전체 고용의 45%를 차지한다”며 “AI가 이 영역까지 침투해 ‘고용 없는 회복’이 확산한다면, 상당 기간 고용은 둔화세를 지속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