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플랫폼 ‘거품의 끝’…브랜디 이어 에이블리도 흔들린다
국내 여성 패션 플랫폼 업계가 잇따라 흔들리고 있다.
한때 업계 ‘빅3’로 불리던 브랜디(운영사 뉴넥스)가 최근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하면서, 유사한 구조를 가진 다른 패션 플랫폼들 특히 에이블리에 대한 시장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시기 풍부한 유동성과 ‘계획된 적자’ 전략을 바탕으로 급성장했던 패션 스타트업들이 결국 수익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거품의 후폭풍을 맞고 있다는 평가다.

1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브랜디를 운영하는 뉴넥스의 매출은 △2022년 1191억원 △2023년 521억원 △2024년 196억원으로, 2년 새 6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2021년 442억원을 들여 인수한 ‘서울스토어’ 실패가 결정적이었다. 시너지 효과는커녕 부채만 급증해 뉴넥스는 자산보다 부채가 많은 완전자본잠식(-306억원) 상태로 전락했다. 결국 지난 9월,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하며 시장 퇴출 수순을 밟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사태를 “예상된 파국”으로 본다. 브랜디뿐 아니라 티몬·위메프·발란·정육각 등도 줄줄이 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데, 공통점은 자본잠식과 수익성 부재다.
한 e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자본잠식은 단순한 적자가 아니라 시장 경쟁력 상실의 신호”라며 “투자자뿐 아니라 소비자 신뢰까지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제 시선은 ‘에이블리’로…같은 길 걷는 중?
브랜디의 몰락 이후 시장의 관심은 에이블리코퍼레이션으로 쏠리고 있다.
여성 패션 플랫폼 ‘에이블리’와 뷰티 플랫폼 ‘4910’을 운영하는 이 회사는 매출 규모는 크지만, 재무 구조는 뉴넥스와 유사하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이미 “계속기업으로서 존속에 의문이 제기된다”는 의견을 받았다. 유동부채가 유동자산보다 648억원 초과했다.
2024년 말 기준 자본총계는 -522억원, 완전자본잠식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매출은 2024년 3343억원으로 전년보다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154억원으로 다시 적자로 전환됐다.
누적 미처리 결손금은 2222억원으로, 회생 절차에 들어간 뉴넥스(2431억원)와 거의 같은 수준이다.
시장에서는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 구조는 똑같다”는 말이 나온다.
◆‘알리바바 투자’도 반쪽짜리…자금난 여전
에이블리는 지난해 말 알리바바그룹으로부터 1000억원 투자를 유치했다고 발표했지만, 실제로 유입된 신규 자금은 200억원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기존 주주의 지분 매각 거래였기 때문에, 실질적인 자본 확충 효과는 거의 없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한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공시상 투자 유치는 상징적 성과로 보이지만, 유동성 확보에는 실질적 도움이 안 됐다”며 “결손금이 누적되는 상황에서 추가 자본 확충이 없으면 브랜디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설상가상으로 글로벌 경쟁자는 이미 국내 시장을 잠식 중이다.
시장조사기관 와이즈앱·리테일에 따르면 중국 패션 플랫폼 ‘쉬인(SHEIN)’의 국내 월간활성사용자수(MAU)는 올해 8월 기준 전년 대비 258% 급증했다.
평균 결제 금액도 에이블리보다 약 2배 이상 높았다.
업계 관계자는 “쉬인은 단가 경쟁력뿐 아니라 AI 기반 생산·물류 효율성을 무기로 빠르게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며 “국내 플랫폼이 이 흐름을 버티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돌파구’ 찾는 에이블리…악순환 가능성도
에이블리는 최근 오프라인 매장 진출과 자체 브랜드(PB) 확대 등 신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를 ‘위험한 확장’으로 본다.
스타트업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지속적인 자본잠식 상태에서 신사업 확대는 위험한 선택”이라며 “자본 확충이나 비용 절감 없이 외형 확장에만 나선다면, 좀비기업화를 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규모의 성장’에서 ‘건전한 수익’으로
한때 ‘여성 패션의 쿠팡’을 꿈꿨던 국내 패션 플랫폼 산업은 지금 냉정한 구조조정의 현실에 직면했다.
‘트래픽’과 ‘GMV(거래액)’에 집중하던 시대는 끝났고, 시장은 이제 ‘수익성 중심의 생존전략’을 요구하고 있다.
실패한 브랜디의 그림자 속에서 에이블리가 어떤 선택을 할지, 스타트업들이 ‘규모의 성장’에서 ‘건전한 이익 구조’로 전환할 수 있을지가 앞으로의 시장 판도를 가를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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