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인디 게임 스튜디오 샌드폴 인터랙티브가 선보인 신작 역할수행게임(RPG)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가 독창적인 미술 양식과 감정 서사를 결합한 세계관, 반응형 턴제 전투 시스템으로 글로벌 이용자 시장에서 흥행 궤도에 올랐다. 국내에서는 스마일게이트가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PC 버전 유통을 진행 중인 가운데 개발진 서면 인터뷰를 통해 게임에 담긴 철학과 제작 과정을 들어봤다.
샌드폴 인터랙티브 개발진은 게임의 시각적 토대를 프랑스의 아르데코(Art Deco) 미술 운동에서 찾았다. '디스아너드', '바이오쇼크' 등 앞선 게임들에거 볼 수 있는 아르데코 양식에 판타지 세계관과 접목해 독자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벨 에포크 시대 건축과 예술 양식도 공간을 설계하는 데 큰 영향을 줬다. 스토리 구조는 프랑스 소설 '라 오르드 꽁뜨르방(역풍의 무리)'에서 착안해 세계를 탐험하는 원정대라는 개념으로 구체화했다.
전투 시스템은 '페르소나', '파이널 판타지', '로스트 오디세이' 등 일본식 RPG(JRPG)에 '세키로'의 액션 요소를 더해 설계됐다. 턴제의 전략성과 실시간 입력의 반응성을 결합한 시스템은 초기 테스트에서 다소 높은 진입장벽을 보였으나 수차례 조정 끝에 적절한 균형점을 잡았다. 특히 공격 시 퀵타임 이벤트(QTE), 방어 시 패링과 회피를 활용해 긴장감을 유지하며 연속된 패링과 카운터 성공 시 느껴지는 손맛이 돋보인다.
33원정대는 샌드폴 몽펠리에 본사와 파리의 소규모 사무실을 포함해 총 30명 미만 팀이 개발을 맡았다. 대형 콘솔 게임으로는 이례적으로 소규모 팀이지만 최신 엔진의 효율성과 기술적 진보 덕분에 제작 가능성을 확보했다는 설명이다.
현지화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내러티브 게임 전문 로컬라이징 업체 Riotloc과 협업, 한국어 번역팀과는 용어집 공유와 감정선 해석을 기반으로 철학적 접근을 시도했다. 개발진은 “로컬라이징은 과학이 아니라 예술에 가깝다”며 “한국어 번역팀은 원문의 감정 깊이를 충실히 전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전했다.
작품명 '클레르 옵스퀴르'는 르네상스 회화 기법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의 프랑스어 표현이다. 빛과 어둠의 대비를 통해 감정적 초점을 강조하는 방식을 뜻한다. 게임이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 또한 실존적 위기 속 상실과 슬픔,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희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캐릭터 간의 관계 역시 깊은 감정선을 바탕으로 설정됐다. 주인공 마엘과 구스타브는 양남매이자 보호자 관계로 연결되어있다. 구스타브는 또 다른 캐릭터 륀과 임무 수행을 통해 신뢰를 쌓고 시엘과는 10년 이상 이어진 우정을 공유하는 사이로 묘사된다.
숫자 '33'은 단순한 상징을 넘어 스토리의 무게감과 성숙한 주제를 상징하는 요소로 활용됐다. 개발진은 “이 나이가 생의 마지막을 상징하는 설정은 제작진의 실제 연령대와도 맞닿아 있어 더 진정성 있게 접근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게임에 등장하는 '페인트리스'는 '거대한 종말의 시계를 지닌 여성'이라는 콘셉트로 탄생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느꼈던 상실감과 무력감이 모티프다. 이를 바탕으로 개발자가 집필했던 단편소설 아이디어를 접목해 캐릭터에 녹여냈다. 세계의 종말과도 같은 분위기 속에서 위협에 맞서 싸우는 집단의 감정이 캐릭터에 그대로 투영됐다.
게임 출시 전 영화화가 결정된 배경에 대해서는 “이 세계에는 아직도 풀어내야 할 수많은 이야기들이 남아 있고, 그만큼 비전이 명확하다는 방증일 것”이라고 전했다.
박정은 기자 je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