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경영권 분쟁으로 내홍을 겪었던 한미약품(128940)그룹에서 오너 일가가 실적 개선을 이유로 억대 상여금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내부 혼란의 중심에 있던 이들이 성과급까지 받았다는 점을 두고 업계 안팎에서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30일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모녀와 형제로 나뉘어 경영권 분쟁을 벌였던 오너 일가는 한미사이언스(008930)와 한미약품으로부터 10억 원이 넘는 보수를 받았다. 송영숙 회장은 한미약품과 한미사이언스에서 총 22억 원을 지급받았다. 임주현 부회장은 한미사이언스와 한미약품에서 각각 10억 원과 6억 원을 수령했다. 임종윤 사장과 임종훈 사장은 각각 16억 원, 12억 원을 받았다.
여기에는 직무, 직급에 따라 통상적으로 지급되는 급여뿐만 아니라 억대 상여금까지 포함됐다. 송 회장은 양사로부터 4억 1000만 원, 임종윤 사장은 1억 4900만 원, 임종훈 사장은 1억 2300만 원, 임주현 부회장은 9200만 원을 상여금으로 수령했다. 2023년 송 회장이 10억 5600만 원, 임주현 부회장이 2억 8900만 원, 임종윤 사장이 2억 3400만 원을 상여금으로 받은 것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지난해 한미사이언스 대표이사를 지낸 임종훈 사장의 상여금은 오히려 전년보다 늘었다.
상여금이 기업 실적과 연동되는 구조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미약품 오너 일가가 일정 수준의 성과급을 받은 것이 전적으로 무리라고 보기는 다. 실제로 한미약품은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1조 4955억 원을 기록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올렸다. 전체 직원 수는 일부 퇴사 인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300명 수준을 유지했으며, 매출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중도 14.0%로 전년(13.8%)과 유사한 수준을 유지했다. 다만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2% 줄었고 순이익은 13.2% 감소했다.
실적은 나쁘지 않았지만 기업 가치를 반영하는 주가는 1년 새 25%가량 떨어졌다. 실적 훼손 우려, 인력 이탈에 따른 연구개발 약화, 기업 이미지 훼손, 투자자 신뢰도 하락 등이 주된 이유였다. 한승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한미약품은 1년 이상 지속한 경영권 분쟁에 따라 본질가치(영업가치·신약가치) 대비 최소 30~40% 지속해서 디스카운트돼 왔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겉으로 드러난 실적과는 내부 혼란과 그에 따른 가치 하락이 뚜렷했던 상황에서 오너 일가가 억대 상여금까지 챙긴 점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 이들은 단순한 이해당사자가 아니라, 그룹 내 경영권 분쟁을 직접 촉발하고 내부 혼란을 부추긴 당사자라는 점에서 상여금 지급의 정당성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외부 투자자와의 합병 추진, 지분 경쟁, 이사회 내 권한 다툼 등이 연이어 불거지면서 회사 안팎에서는 불신이 커진 것이 사실이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오너 일가가 내부 혼란을 일으킨 당사자라는 점에서 실적을 이유로 상여금을 받은 건 명분이 약해 보일 수 있다”며 “보상 구조가 어떻게 정당화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미약품 관계자는 “상여금은 회사 성과 및 개인 기여도에 맞춰 지급하고 있으며 내부 기준은 외부에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한미약품그룹은 최근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전문경영인 체제로의 전환을 공식화했다. 송 회장이 한미사이언스 대표이사에서 물러나고, 김재교 전 메리츠증권 부사장이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