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급증하는 전력 수요 대처하려면

가파도는 제주도 남쪽에 붙어있는 작은 섬이다. 주민이 203명밖에 안 된다. 정부가 이 섬에 육상 풍력 발전기와 태양광 설비를 설치해 ‘RE100(재생에너지 100%) 마을’을 만들겠다며 내년도 예산에 220억원을 편성했다. 주민 1인당 1억원 넘게 들어가는 셈이다. 가파도는 이미 2012년 146억원을 투자해 250KW급 풍력 발전기 2대와 가정용 태양광 설비를 설치했었다. 하지만 풍력 발전기는 5년 만에 고장 났고, 태양광은 현재 소비전력의 극히 일부를 충당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 작은 섬에 다시 실패한 재생에너지 투자를 강행한다. 정부는 주민 규모에 비해 거액의 예산을 투입하면서 예산 대비 효과도 충분히 분석하지 않았다. 지난 여름 현장을 1차례 방문하고, 관련 회의를 2번 거쳤을 뿐이다.
태양광·풍력발전만 급히 늘리면
산업용 전기료 더 급증할 우려
재생에너지 확대 불가피하지만
고비용·국산화율 문제 해결해야
AI 전력 수요 10년 뒤 3배 증가
신재생 약점 메꿀 SMR이 대안
태양광·풍력 발전 늘리되 효율 따져야
환경부는 지난달 8일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에 2035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최고 67%로 제안했다. 이를 위해 이재명 정부는 재생에너지 생산을 획기적으로 늘릴 계획이다.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량을 제로로 줄이는 탄소중립 선언을 지키기 위해선 불가피한 길이다. 하지만 정부의 목표는 너무 높고 급진적이다. 재생에너지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을 병행해야 한다.

재생에너지의 문제점은 첫째 비용이 비싸다는 것이다. 재생에너지 확대와 탈원전을 추진했던 문재인 정부 이후 8년간 산업용 전기료는 80% 가까이 급등했다.
2차전지의 핵심소재인 동박(銅箔)을 생산하는 SK넥실리스는 내년에 전북 정읍공장 설비를 우즈베키스탄으로 옮기기로 했다. 이 회사가 해외 이전을 추진하는 이유는 비싼 국내 전기요금 때문이다. 제조원가 중 전기요금 비중이 15%에 달하는데, 우즈베키스탄의 전기요금은 한국보다 40%나 낮다.

태양광은 계절과 시간대에 따라 발전량이 들쭉날쭉하다. 태양광 전력을 안정적으로 이용하려면 에너지저장장치(ESS)가 필수적이다. 1MWh를 저장하는 화물용 컨테이너 크기 ESS 장치 한 개에 2억 5000만원이 들어간다. 태양광 발전비중을 50%로 높이면 최대 525조원이란 천문학적 예산이 소요된다. 배(발전비용)보다 배꼽(저장비용)이 더 큰 불합리한 구조다.
풍력 발전은 2024년 목표 용량이 7.1GW인데 현재 2.3GW로 목표의 3분의 1도 달성하지 못한 상태다. 한국의 풍력 발전 확대가 더딘 이유는 풍속이 느리기 때문이다. 신안 앞바다 풍속이 초속 7m 정도인데 영국 북해 앞바다는 초속 9m를 넘는다. 발전량을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친다. 같은 풍력 발전기를 설치해도 발전단가가 두 배 이상 높아진다는 뜻이다.
둘째, 재생에너지도 환경 파괴에서 자유롭지 않다. 2050년 탄소중립을 실현하려면 풍력 발전이 50GW를 생산해야 한다. 이를 위해 700만t의 철강이 필요하고, 그 원료로 560만t의 석탄이 들어간다.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탄소를 배출하는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한국은 지난 8년간 태양광 발전이 급격히 늘었다. 국토면적당 태양광 발전량을 뜻하는 태양광 발전밀도는 네덜란드에 이어 세계 두 번째다. 달리 말하면 태양광 발전 부지를 확보하는 것이 갈수록 힘들어진다는 얘기다. 이미 많은 야산과 녹지에 태양광 설비가 들어서면서 환경 파괴 논란에 휩싸여 있다. 수명을 다한 태양광 설비는 거대한 쓰레기로 남게 된다.
봄철에는 필요한 ESS 용량이 최대 1500GWh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1MWh 용량 ESS 150만 개를 설치해야 낮에 저장한 태양광 전기를 필요할 때 끌어다 쓸 수 있다. 1200개인 우리나라 각 면마다 1250개의 ESS를 놓아야 한다. 국토 면적이 좁은 한국에선 불가능한 것이다.
셋째, 재생에너지의 국산화율이 너무 낮다. 태양광 설비의 국산 점유율은 태양전지 5%, 태양광 패널 41%에 불과하다. 인버터·웨이퍼·폴리실리콘 등 주요부품은 중국업체가 대부분 점유하고 있다. 풍력 발전 부품의 국산화율도 30%대 수준에 머물러있다.
태양광·풍력 발전을 늘리는 게 불가피하더라도 중국산 의존도에서 탈피해 국내 업체를 키워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경제성을 넘어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다뤄야 할 중요한 문제다.
마지막으로 대규모 재생에너지 발전은 막대한 송전비용을 발생시킨다. 용인에 들어서는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에는 최소 10GW의 전력이 필요하다. 정부는 이 중 7GW는 장거리 송전선로를 통해 호남권 재생에너지를 공급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 계획은 송전선로가 통과하는 전북 지역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정읍시 등 전북 8개 시·군 주민들은 지난 5월 ‘송전탑 건설 백지화 전북대책위원회’를 출범한 상태다.
경제성·지역분산 가능한 SMR 늘려야

AI 시대, 데이터센터는 ‘전력을 먹는 하마’가 된다.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은 2035년 1200TWh로 현재의 3배로 급증할 전망이다. AI 시대에 태양광· 풍력만 갖고는 주도권을 쥐기 어렵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은 “원자력 활용이 데이터센터 안정과 전기요금을 아끼는 해법”이라고 말했다. AI 데이터센터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은 이미 원자력에 막대한 돈을 투자하고 있다.
SMR기업 테라파워를 설립한 빌 게이츠는 10억 달러를 투입한 데 이어 수십억 달러를 추가 투자할 계획이다. 빌 게이츠는 대표적인 환경보호론자다. 지난 25년간 탄소 감축 등 기후기술 스타트업을 지원해왔다. 그가 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면서 AI시대 폭증할 전력수요를 감당할 대안으로 SMR을 선택한 것이다.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는 지난 6월 원전기업 콘스텔레이션 에너지와 20년간 원전 기반 전력을 구매하는 장기계약을 체결했다.
저커버그는 “이 사업이 메타의 초대형 AI 데이터센터 운영과 ‘탄소 배출 제로’ 달성에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태양광·풍력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한편으로 원자력 확대에도 국력을 집중하고 있다. 2022년부터 매년 10기 정도의 신규 원전 건설을 승인해왔다. 2030년엔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원전 발전용량을 보유한 국가가 된다.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에 대응하기 위해 지금까지는 석탄 화력발전 또는 LNG 발전소가 재생에너지의 약점(변동성·간헐성)을 메꿔왔다. 하지만 석탄은 탄소 배출의 주범이라는 점, LNG는 비용이 비싸다는 점에서 대안이 될 수 없다. 경제성과 안전성을 갖춘 SMR이 재생에너지의 보완재로 떠오르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2050년 SMR이 전 세계에 1000기 이상 설치되고, 시장 규모가 4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재생에너지가 확대되면 기저 전력을 담당하던 대형 원자로보다 전력 수요에 맞춰 분산할 수 있는 소형 원자로를 증설해야 한다.
한국형 SMR인 SMART100은 용량 100㎿ 정도다. 원래 사우디아라비아의 투자를 받아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항구도시에 전력과 담수를 공급하기 위해 설계됐다. 데이터센터와 반도체공장 등 전력수요가 많은 지역에 분산해 설치하면 송전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한국은 대형원전과 SMR을 자체 설계·제작·시공·운영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투자를 요청한 첨단산업 분야에 원자력이 포함된 이유다.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국제사회와의 약속이다. 하지만 재생에너지가 만능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과 급격한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으로 한국은 지금 비싼 수업료를 물고 있다. 실용주의를 표방한 이재명 정부는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되 문제점과 비용을 면밀히 따져 효과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환경운동가의 말을 듣기에 앞서 전기료 인상으로 고통받을 기업과 자영업자의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 전기료가 오르면 가장 힘든 계층은 부자가 아니라 폭염에 에어컨도 틀지 못하는 서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