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화, 복싱화, 레이싱화, 트레킹화가 패션 아이템으로 스트리트 점령
스포츠 브랜드가 기능성을 기반으로 패션성을 강화하는 전략 이어질 듯

“발차기할 때 균형을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무술가의 선택” “스포티한 의상이나 비즈니스 캐주얼에 패셔너블하다.”
각기 다른 제품의 후기가 아니라, 한 신발에 대한 두 미국 소비자의 후기다. 아디다스 오리지널스의 태권도화(모델명 Taekwondo Shoes)는 신발끈이 없는 슬립온 스타일로 신고 벗기 편하고 부드러운 가죽 소재라 착용감이 좋다는 평을 듣고 있다.
지난해부터 꾸준히 인기를 쌓아온 태권도화뿐만 아니라 운동선수들의 전유물이었던 기능성 스포츠화가 스트리트 패션 아이템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유행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제니가 신어서’ 품절사태를 불러온 복싱슈즈다.

지난해 6월 팝스타 빌리 아일리시의 내한 당시 열린 청음회 행사에서 스페셜 게스트 겸 진행자로 깜짝 등장한 블랙핑크 제니는 경쾌한 쇼트 팬츠에 발목까지 올라오는 신발을 신었다. 언뜻 부츠처럼 보이는 신발은 아디다스의 복싱화였다. 밑창의 두께가 거의 없어서 일반 도로를 걷기에 불편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이 제품은 품절을 기록하며 인기를 모았다. 불편함을 덜기 위해 별도의 밑창을 도톰하게 더해서 신는 ‘튜닝족’도 생겨났다.

이런 추세에 발맞춰 아디다스 오리지널스는 이번 시즌 운동선수들이 신던 기능성 스포츠 슈즈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스니커즈 제품을 대거 선보였다. 작년부터 관심을 받기 시작한 ‘태권도’는 신발끈이 있는 버전도 제작됐으며, 트레이닝화를 기반으로 한 ‘도쿄’, 레이싱 스타일에서 영감을 받은 ‘아디레이서’ 등도 스트리트 출격 준비를 마쳤다. 1970년대 후반 레이싱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하산트’는 발목을 여유 있게 웃도는 기장의 과감한 실루엣에 클래식한 느낌의 고무 아웃솔을 더해 요즘 스트리트 스타일에 제격이라는 입소문을 타고 있다.

요즘 인기 있는 기능성 신발들의 공통점이라면 깔창이 얇은 이른바 ‘로-프로파일’ 스타일이라는 점이다. 복고적인 느낌이 강한 로-프로파일은 일단 가볍고 매끈하게 발을 감싸는 디자인이라 마치 신발을 신지 않은 듯 편안한 착화감을 느낄 수 있다. 이 간결한 트렌드에 충실한 푸마의 주력 스니커즈 스피드캣은 레이서들을 위한 방화 슈즈에 뿌리를 둔 제품이다. 격렬한 질주의 현장에서 왔지만, 핑크색으로 재탄생한 스피드캣은 브랜드 모델인 로제의 스포티한 의상과 찰떡궁합을 자랑한다. 스피드캣은 핑크 외에 블랙, 레드로 출시되며 다양한 스타일의 의상과도 잘 어울려 꾸준한 판매율을 기록하고 있다.

2022년 철수했던 스포츠 브랜드 케이스위스는 해당 브랜드 최초의 신발인 CLASSIC 66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CLASSIC VN을 선보이며 3년 만에 한국 시장 재론칭 소식을 알렸다. 케이스위스는 1966년 LA에서 최초의 가죽 테니스화로 탄생한 브랜드로 미국 테니스화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주)케이스위스코리아 박종현 대표는 “케이스위스는 테니스 헤리티지를 기반으로 파델, 피클볼과 같은 다양한 코트 스포츠 라인업과 함께 러닝, 서핑, 스키 등 윈터 스포츠를 포함한 종합 스포츠 카테고리를 아우르고 있다”며 다양한 라인업의 제품 출시를 예고했다.
기능성 신발의 스트리트 진출은 스포츠 전문 브랜드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만드는 윤리적인 스니커즈를 지향하는 프랑스 브랜드 베자(VEJA)는 이번 시즌 빈티지 축구화를 모티브로 한 파넨카를 출시했다. 키커가 골키퍼 정면을 향해 느리게 차는 페널티킥의 슛 전술에서 따온 이름이다. 축구화의 퀼팅 디테일을 적용해 착용감을 높였으며 클래식한 축구 유니폼에서 영감을 얻은 3가지 색상을 선보인다.

코치는 이번 봄 컬렉션 런웨이에 위트 넘치는 디자인의 소호 스니커즈를 올렸다. 뉴욕의 패션문화 중심지인 소호에서 이름을 따온 이 제품은 1990년대 초반 사랑받은 크로스 트레이닝 스니커즈에서 영감을 받았다. 코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스튜어트 베버스는 “뉴욕의 역동적이고 활기찬 정신을 그대로 담아내기 위한” 시도라고 소개한다. 내구성이 뛰어난 가죽을 사용해 통기성을 높이고 섬세한 스티치 마감으로 완성도를 높였으며 안감, 신발끈, 아웃솔, 로고 등에 재활용 폴리에스터와 고무를 사용하는 등 환경 감각도 챙겼다.

패션화와 기능성 신발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트레킹화도 도심으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아이유가 모델로 나선 블랙야크의 ‘343 라이트 스텝’은 ‘등산 30%, 하산 40%, 일상 30%의 효율적인 에너지 배분’이라는 뜻을 담은 상품명으로 일상에서도 신을 수 있는 다목적 트레킹화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여느 기능성 슈즈와 차별화된 간결한 디자인과 6가지의 다양한 컬러로 가벼운 산행은 물론 여행, 일상에서도 신을 수 있도록 했다. 이번 시즌 유행 조짐을 보이는 ‘샬랄라’ 샤스커트와 트레킹화의 조합도 더는 낯선 스타일링이 아니다.

기능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스포츠 브랜드와 패션 브랜드의 협업도 이 같은 트렌드 형성에 한몫했다. 스포츠 브랜드의 정체성은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소비층을 유입하는 전략적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스포츠 브랜드 프로-스펙스는 패션기업 한섬의 시스템과 협업해 ‘마라톤 110 파리’ 스니커즈를 2월 초 출시했다. 앞서 지난해 시스템 2025 SS(봄여름) 파리패션위크에서 처음 공개된 이 제품은 프로-스펙스의 전신인 스펙스에서 출시한 러닝화를 복각했다. 빈티지한 감성을 살리면서도 미끄럼 방지 기능 등 역동적인 스포츠 정신에도 충실한 협업 완성품으로 통한다.
스포츠 브랜드 살로몬과 뉴욕 기반의 패션 디자이너 샌디 리앙의 협업 컬렉션은 2000년에 출시된 트레일 러닝화 ‘XT-호크’의 여성용 모델인 ‘XT-위스퍼’를 재해석한 제품으로 아웃도어 기능을 갖춘 패셔너블한 핑크 스니커즈로 시선을 끌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스포츠 브랜드가 기능성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패션성을 강화하는 전략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다양한 패션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스타일리시한 스포츠 아이템들이 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