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남성이 더 여성차별적 인식을 갖고 있을까
‘남성이 더 차별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남성은 어떤 이들일까
사회학자인 김조은 한국개발연구원(KDI) 스쿨 교수는 최근 공개된 두 개의 논문에선 유사한 질문을 던졌다. 논문 제목은 각각 ‘남성의 적대적 성차별 지지 증가와 감소: 한국 설문조사 사례’와 ‘한국 남성의 피해자 남성성 이데올로기: 경제적 어려움인가, 지위 하락인가?’이다.
김 교수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 KDI 스쿨 등에서 수행한 복수의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연구를 수행했다. 예를 들어 ‘나는 우리 사회에서 남자가 더 차별받는다고 생각한다’ ‘남자가 살기 더 힘든 세상이다’ ‘페미니즘이 지나쳐 남자들을 위협한다고 생각한다’는 등의 질문을 던져 나온 여러 답변을 통계적으로 분석했다. 김 교수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보다 ‘나’의 지위가 낮아진 남성이 더 성차별적 인식을 갖고, 남성을 사회의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인식(Male Victimhood Ideology)이 짙은 경향이 나타났다”고 했다.
김 교수와 지난 22일과 24일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 교수는 “(두 논문의) 결과를 보고 비단 남성/여성 문제로 단순하게 나눠 볼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세상의 역학관계가 바뀌는 상황에서 모든 남성들이 페미니즘 등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건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누군가를 손가락질하기 전에 먼저, 함께 (사회) 구조를 같이 들여다보자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남성의 인식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계속 다루던 주제였다. 계속 데이터를 보니 신기하게 일상의 통념과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 흔히 교육 수준이 낮은 남성 혹은 임금수준이 낮은 남성이 안티 페미니스트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통계 분석을 해보면 그런 결과가 안 나온다. 통념과 배치되는 결과를 보고 조금 더 깊게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남성이 스스로 피해자라고 여기는 ‘피해자 남성성’을 분석한 연구를 소개하면.
“데이터 4개 세트를 썼다. 데이터 4개는 2015년, 2018년, 2020년, 2023년 다른 시점에 측정됐는데 결론은 모두 같았다. 너무 신기하게도 교육수준이나 임금 수준,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인지, 실업상태인지는 남성이 스스로를 피해자화하는 수준과 별 상관성이 없었다. 오히려 중요한 변수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현재 나의 사회적 지위의 차이였다. 부모가 현재 내 나이였을 때보다 지금 나의 위치가 더 낮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남자가 더 차별받는다는 취지의 인식을 더 강하게 지지했다.”
-이른바 ‘지위 하락’을 느끼는 남성들 사이에서 조금 더 두드러지는 특징이 있었나.
“옛날에 특별히 조금 더 잘 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중상층 이상에서 ‘나의 지위가 부모보다 더 낮아졌다’고 대답한 사람들 사이에서 유독 ‘남성이 더 차별받고 있다’는 인식이 강하게 나타났다. 반대로 부모의 사회적 지위도 높았는데, 나의 사회적 지위도 변함없이 높거나 혹은 부모보다 더 지위가 높아졌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오히려 ‘남성이 더 차별받고 있다’는 인식에 동조하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이같은 결론의 함의는 무엇일까.
“남성 집단을 하나로 묶어 분석하는 것도 한계가 많다. 그런데 남성 내 동질적 그룹에서도 사회적 지위의 이동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의견이 굉장히 갈린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연구에서 제시한 결과는 한국만의 특징인지, 아니면 전 세계적 추세인지 궁금하다.
“‘부모 세대보다 내가 못한 것 같다’고 응답한 스페인이나 미국 남성들에게선 ‘남성이 더 차별받는다’는 인식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는 한국과는 다른 점이다.”
-왜 한국에서만 ‘지위 하락’에 따른 ‘남성이 더 차별받는다’는 인식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걸까.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은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유지될 것이라는 믿음이 약해진 지점이 있다.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나 이런 것들이 쉽지 않아지면서 좌절을 느끼고, 그런 점에서 한국에서 더 두드러지는 현상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여성에게도 ‘지위 하락’에 따른 유사한 특징이 나타나야 하는데 그렇진 않는 것 같다.
“전통적인 남성성 같은 것을 놓고 봐야 한다. 전통적인 남성성을 떠올리고, 그 기대에 못 미친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의 생활·사고방식과 바뀐 사회의 간극이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진 남자로 태어나면 마땅히 가졌어야 할 것들을, 남성들이 어느 순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원래 가진 게 없었던 사람의 무언가를 빼앗가 갈 때, 상대적으로 느끼는 좌절이 크지 않다. 원래 가진 게 많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가지고 있던 걸 빼앗가 가면 좌절을 더 많이 느끼게 된다. 남자라면 마땅히 당연히 가졌어야 할 기회가 줄어드니, 뭔가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데서 나타나는 강한 부정적이고 감정적 반응이 남성들에겐 중첩돼 있다고 본다.”
-부모의 지위를 떠나 남성들 사이 ‘남성이 더 차별받는다’는 인식의 국제적 경향은 어떤가.
“부모의 지위와 ‘나’의 지위 여부를 빼놓고 보면 ‘남성이 더 차별받는다’는 인식 자체는 전 세계적 현상으로 보인다. 소위 1990년대 중반~2010년대 초반 태어난 제너레이션 Z(GenZ) 세대에선 남성이 피해를 받고 있다는 인식이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아직 데이터를 들여다보고 있는 중인데, 한국보다 스페인이나 미국에선 남성의 ‘피해자 남성성’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스페인과 미국에서는 30대 이후 남성에게서 ‘남성이 더 차별받는다’는 인식이 강한데, 반대로 한국에선 30대 이후보다 20대 남성에게서 ‘남성이 더 차별받는다’는 인식이 더 선명하게 측정됐다.”
-국가 내 지역적 특성도 있을까.
“예를 들어 스페인은 지역적으로 정치적 입장의 차이가 크다. 이에 따라 젠더 의식도 달라지는데 한국은 흔히 보수적이라 불리는 경상도라고 해서 ‘남성이 더 차별받는다’는 인식이 더 높다는 결과는 잘 안 나온다.”
-경제적 지위에 따른 성차별적 인식을 연구한 논문도 소개해달라.
“흔히 세상이 바뀌면서, 아니면 여자들이 어떤 우위를 점한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이 스트레스를 받아서 반 페미니즘에 동조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연구를 해보니 전체 남성 집단에서는 이같은 현상이 보이지 않았다. 모든 남성들이 반 페미니즘 기조에 동조를 하는 게 아니었다. 우리가 보통 반 페미니즘 정서를 보일 것이라고 예상하는 비정규직, 저임금 남성들도 마찬가지였다. ‘부모 세대보다 내가 지금 못하고 있다’는 두려움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성차별적 인식이 나타났다.”
-반 페미니즘 정서가 이른바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남성 집단에서 나타날 것이라는 추측을 경계해야 할 것 같다.
“반 페미니즘을 정확한 원인 진단 없이 특정 집단에 돌리면 차별적 구조가 더 심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은 반 페미니즘 정서를 투영하고 있지 않다. 사실 노동시장에서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는 사회나 공론장에 잘 반영되지 않지 않나. 단순히 ‘못 사는 남성이 여성혐오가 심하다’는 식의 접근은 위험하다.”
-‘부모 세대보다 내가 지금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에게서 나타나는 또 다른 특징이 있나.
“이들은 사회와 정부를 비판하지 않는다. 이들 집단은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고자 하는 마음이 크다. 성차별적 구조를 유지해 남성의 우위를 이어가길 바란다고 본다. 이 상태를 유지하려면 굳이 사회나 정부를 비판할 필요가 없다.”
-두 논문의 결론은 ‘지위 하락’을 느끼는 남성들에게서 성차별적 인식이나 남성을 피해자화하는 인식이 강하게 나타난다고 제시한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지위 하락’은 실제 ‘지위 하락’보단 주관적 인식에 가까워 보인다.
“한국의 연구들은 실제 이동성이 감소하지 않았다는 결과를 내놓기도 한다. 그런데 청년들의 주관식 인식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노력하고 인풋을 넣어도 돌아오는 결과값이 예전 부모세대가 손에 쥐었던 것과는 다르다. 상대적 박탈감이 클 수밖에 없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서 제대로 잘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회의가 더 커진 것 같다.”
-‘지위 하락’ 인식과 최근에 사회를 위협하는 극우 세력의 부상과도 연결이 되는지 궁금하다.
“한국을 비롯해 다수의 전 세계 연구 결과는 사회의 이동성 감소나 사회경제적 지위 하락이 극우 정치인을 지지하는 현상과 연관이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김원진 기자 onejin@kha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