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해운의 최대주주인 한앤컴퍼니(약 79%)가 HMM(011200)의 경영권 매각 우선협상 대상자 지위를 박탈했다. HMM이 우협에 선정된 지 6개월여 만에 협상이 공식 종료되면서 한앤코는 국내외 여러 인수 후보군에 다시 협상 테이블을 오픈할 것으로 보인다.
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한앤코는 최근 HMM과의 SK해운 경영권 매각 협상을 더 이상 이어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한앤코는 올 1월 HMM을 우협 대상자로 선정하고 HMM에 단독 실사 기회를 부여했으며 가격 협상도 이어왔다.
협상은 초기부터 양측이 원하는 가격대 간 차이가 크다는 것이 확인되며 계속 삐걱거렸다. 그간 시장에서는 SK해운의 전체 몸값을 최대 4조 원대로 평가해왔다. 반면 HMM은 SK해운 내 액화천연가스(LNG)선 사업부를 제외한 원유운반선, 액화석유가스(LPG)선, 벌크선 사업부 등을 인수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인수가를 최대한 낮추기 위해 노력했다. HMM은 현대상선 시절이던 2014년 LNG 사업부를 분할 매각하면서 15년간 경업 금지에 합의한 바 있다. IB 업계에서는 HMM이 SK해운 사업부 인수에 투입하려 했던 자금이 최대 2조 원대에 그쳤을 것으로 추정했다.
시장 관계자는 “양측은 가격은 물론 인수 대상 사업부와 인력 등 여러 조건을 두고 이견이 컸다”며 “한앤코는 SK해운 내 선박을 분할 매각하거나 일부 사업부를 묶어 매각하는 등 전략을 다변화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매각 측은 SK해운이 보유한 사업 경쟁력이 HMM의 판단보다 훨씬 높다고 봤다. 실제 SK해운은 2018년 한앤코에 인수된 후 우량 화주와의 장기 운송 계약이 늘며 사업 구조가 더 탄탄해졌다는 분석이 많았다. 기존 SK그룹과의 계약 이외에도 현대오일뱅크, GS칼텍스, 카타르에너지 등 국내외 우량 화주사와 신규 장기 운송 계약이 다수 체결됐다. SK해운의 2024년 말 기준 장기계약(계약기간 5년 이상) 비중은 87%에 달한다.
그 결과 SK해운의 영업이익은 2018년 733억 원에서 2024년 3957억 원으로 5배 이상 상승했다. 같은 기간 상각전영업이익(EBITDA)도 2317억 원에서 6409억 원으로 두 배 이상이 됐다. 시황 변동성이 높은 스팟 사업을 축소하고 장기 계약 비중을 높인 게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이에 SK해운은 해운 경기 사이클과 크게 관계 없이 안정적인 실적 기반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울러 HMM은 가격 외에도 고용 방식 등 다른 조건에서도 매각 측과 다른 의견을 가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올 3월 HMM의 선장이 최원혁 대표이사로 교체되며 인수가 원점에서 재검토 된 것도 협상이 원활하지 않게 된 배경으로 지목된다. 이재명 정부의 공약 가운데 하나인 HMM의 부산 본사 이전 추진도 일부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HMM은 상당 기간 공을 들여온 SK해운 인수에 실패하면서 회사의 장기 투자 계획에도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HMM은 지난해 9월 장래 사업 공시를 통해 2030년까지 신사업에 23조 5000억 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특히 HMM은 현재 컨테이너선 쪽에 편중된 현재의 사업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벌크선이나 원유·가스운반선 등의 신규 인수합병(M&A)을 추진해왔다.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는 것이 향후 컨테이너 운임지수의 하락 사이클을 극복할 가장 좋은 전략이기 때문이다.
한편 한앤코는 국내외 복수의 선사나 투자자들과 SK해운 매각 협상을 재개할 전망이다. SK해운은 지난해에도 한국가스공사 등 화주사와 용선 계약이 만료된 다수의 LNG운반선,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들을 해외에 매각해왔다. 이 같은 분할 매각 방식은 물론 사업부 여러개를 합쳐 통매각하는 방식 등 여러 가능성을 열어둘 것으로 보인다.
IB업계 관계자는 “한앤코는 장기 계약 위주로 재편된 선박과 일부 사업부를 분할 매각하면 HMM 제시가 보다 높은 가격에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