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술력은 충분한 데, 시장에 진입할 길이 없습니다.”
최근 동남아 진출을 시도했던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스타트업 대표의 얘기다. 현지 반응은 긍정적이었지만, 파트너 연계나 고객 대응 체계를 갖추지 못해 결국 진출을 포기했다고 한다.
드문 일은 아니다. 국산 SaaS 기업 상당수가 글로벌 시장 진출에 어려움을 겪는다. 단순한 실행력 부족이 아니라 기업을 지원할 생태계 전략 부재가 공통 원인으로 지적된다.
국내 SaaS 기업들은 회계, 협업툴, 전자결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완성도 높은 제품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력 외의 역량, 즉 해외 시장 대응을 위한 고객지원, 언어, 유통, 결제·법률 시스템 등은 매우 취약하다.
실제로 다수 기업이 글로벌 마켓플레이스에 입점했지만, 영어 대응 인력이나 고객 응대 프로세스가 부족해 수개월 내 운영을 중단한 경우도 많다. 고객 유입부터 유지까지 이어지는 전 과정을 감당할 조직 역량이 부족한 실정이다.
반면에 미국과 유럽 SaaS 기업들은 초기부터 GTM(Go-to-Market) 전략을 정교하게 설계한다. 제품 기획과 함께 현지화, 유통, 고객 지원, 법률 대응 체계를 갖추고, 벤처 캐피탈(VC)과 액셀러레이터로부터 지원을 받는다. 서로 협력하고 지원할 생태계가 공고하다.
우리 정부는 SaaS 수출을 강조한다. 하지만 지원 범위는 기술 데모와 전시회 위주에 그친다. 국내 SaaS 기업이 지속 가능한 고객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다방면으로 복합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이 요구된다.
국산 SaaS 세계화는 이제 '기술만 좋으면 된다'는 논리로는 불가능하다. 성공의 열쇠는 시장 전략과 실행 생태계에 있다. 정부와 산업계는 기술 지원자를 넘어 생태계 설계자로 역할을 전환해야 한다.
류태웅 기자 bighero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