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기후 변화로 인한 빙하 융해가 실제로 산악 지역의 지진 활동을 키울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유럽 알프스 몽블랑 일대에서 15년간의 지진을 분석한 끝에, 눈·빙하가 녹으면서 생긴 물이 지각 깊은 곳까지 스며들어 단층의 응력을 바꾸고, 단기적인 지진 위험을 눈에 띄게 높인다는 정황이 관측된 것이다.
최근 학술지 ‘지구 및 행성 과학 편지(Earth and Planetary Science Letters)’에 실린 이번 연구는, “기후 변화로 인한 융해수”와 “지진 활동 증가”를 직접적으로 연결해 관측한 첫 사례로 평가된다. 스위스 지진학 서비스 소속 베레나 사이먼(Verena Simon) 박사 연구팀은 이탈리아와 프랑스 국경에 걸친 몽블랑 대산괴(그랑드 요라스 산맥)에서 2006~2022년 동안 발생한 1만 2,303회의 지진을 분석했다.
연구자들은 그동안 산악 지역에서 계절별로 지진이 늘었다 줄었다 하는 현상을 관찰해 왔고, 눈·얼음 하중 변화, 집중호우, 기압 변화 등이 원인으로 거론돼 왔다. 이번 연구는 그중에서도 “빙하·적설이 녹아 흘러내린 물”이 단층대 깊숙이 침투해 지진을 유발할 수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추적했다.
미국 컬럼비아대 라몬트-도허티 지구관측소의 지진학자 존 머터(John Mutter)는 “단층면에는 보통 암석이 서로 갈리며 만들어진 고운 부스러기(‘구지(gouge)’)가 쌓여 있는데, 이 틈 사이에 물 같은 유체가 스며들면 마찰이 줄어들어 단층이 더 쉽게 미끄러질 수 있다”고 알렸다. 또 다공성 암석 속으로 침투한 물은 판 사이의 ‘기공 압력’을 높여 기존 응력 상태를 바꾸면서, 작은 자극에도 단층이 미끄러지도록 만들 수 있다.
연구팀은 몽블랑 지역에서 이미 알려져 있던 계절적 패턴에 주목했다. 이 지역은 매년 눈과 빙하가 녹는 늦여름에 지진이 늘고, 겨울에는 줄어드는 특징을 보여 왔다. 특히 녹은 물이 집중되는 몽블랑 터널 인근 전단대에서 지진이 밀집해 관측됐고, 지하수 온도·전기전도도·동위원소 분석에서도 ‘젊은 지표수’(최근 침투한 물)의 유입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결정적인 단서는 2015년 극심한 폭염이었다. 당시 폭염으로 빙하 융해수가 급증하자 이 지역의 미진(微震) 활동도 함께 뛰어올랐다. 연구팀이 구축한 지진 카탈로그를 보면, 2015년 이후 몇 년 동안 지진의 빈도와 규모 모두 이전보다 뚜렷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이먼 박사팀은 이어 수치 모델링을 통해, 폭염으로 늘어난 융해수가 단층대까지 얼마나, 어떤 시간차를 두고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했다. 그 결과, 2015년 이후 몽블랑 및 인근 스위스 알프스 고산지대에서 지진 발생이 눈에 띄게 늘어났고, 이는 “이전까지는 영구 동결 상태였던 고도가 해빙되면서 새로운 침투 경로가 열렸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고 제시했다.
모델은 또 흥미로운 시간 지연 효과도 보여줬다. 얕은 지진은 전년도 융해수(유출량)와, 더 깊은 지진은 2년 전 융해수와 통계적으로 잘 맞아떨어진 것이다. 연구팀은 “녹은 물이 암석을 따라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면서, 여러 해에 걸쳐 단계적으로 기공 압력을 바꾸고 단층을 자극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다만 모든 전문가가 이 연관성을 곧바로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사이먼 연구팀은 이번 결과가 기후 변화와 지진 위험을 연결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며, 추가 연구와 정밀 관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전 세계적으로 고산 지역 빙하가 빠르게 줄어드는 상황에서, 비슷한 지질·기후 조건을 가진 다른 산악 지대에서도 유사한 ‘기후-지진 연결 고리’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다.
머터 교수는 이에 대비해 소규모 유발 지진을 더 촘촘하게 관측·기록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작은 지진들의 분포를 정밀하게 지도화하면 어떤 단층이 실제로 활성화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고, 위험 단층대를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번 결과가 빙하 인근 산악 지역 주민들에게 더 나은 지진 대비의 기반을 제공할 수 있다고 본다. 기후 위기가 진행되면서 빙하가 사라지는 현상은 더 이상 해수면 상승과 물 부족 문제에만 그치지 않고, 지각 깊숙한 곳의 응력 상태와 지진 패턴까지 바꿀 수 있는 새로운 위험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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