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안일한 원전 실용론

2024-11-21

지난 11월20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서 정부가 제출한 원전 관련 예산이 여야 합의로 2138억원 규모의 원안 그대로 통과되었다. 지난해에는 정부가 제출한 1800억원 규모의 원전 예산을 모두 삭감했던 더불어민주당이 태도를 바꾼 게 화제가 되고 있다. 국민의힘에서는 민주당이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의 오류를 인정한 것이라고 평하고, 경제신문들은 이제 비로소 합리적 에너지 믹스 정책이 시작되었다고 환영한다.

민주당 의원들이 원안에 모두 동의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난 대선부터 최근 영광군수 재선거까지 이재명 대표가 피력한 이른바 ‘원전 실용론’이 영향을 끼친 결과라는 해석이 많다. 재생에너지 예산을 그나마 지키기 위해 여당을 어느 정도 달랠 필요가 있고 민주당이 경제 활성화에 발목을 잡는 모습으로 비치는 게 부담스럽다는 현실론도 보태진다.

그런데 한국에 에너지 믹스가 없었던가 하면 그건 아니다. 화석연료 발전, 원전, 수력, 재생에너지 등의 조합을 말하는 에너지 믹스는 언제나 있었고, 문재인 정부 때도 원전이 제로가 되는 믹스는 아니었다. 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설계수명이 다한 원전의 연장 가동을 그만두고 신규 원전을 짓지 않으면서 재생에너지로 그 자리를 대체하는 데에 30년 정도가 필요할 것이니 그 과정을 시작하자는 것이었다.

이는 탈원전을 주장하는 시민사회의 기대에 매우 못 미치는 것이었지만, 문 정부 때에도 원전은 계속 활용되었고 에너지 믹스는 계속 수정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원전 실용론이나 합리적 에너지 믹스 같은 표현은 탈원전을 이념에 치우친 무책임한 이상론으로 규정하는 용어다.

그리고 사실 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원칙론이나 이상론으로 만드는 것은 오히려 민주당이다. 민주당은 탈원전 선언 이후 이를 뒷받침할 후속 입법, 대안 에너지 체제를 위한 시나리오 개발, 구체적 재생에너지 프로젝트 모두에서 손을 놓고 있었다. 국민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려는 노력조차 부재했고 대선 국면에서는 탈원전의 쟁점화를 회피하기만 했다. 그리고 지금 민주당의 태도는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원전 르네상스는커녕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는 원전 산업에 합리적인 믹스가 아니라 ‘올인’하고자 하는 윤석열 정부의 핵폭주 정책을 현실론으로 만드는 데 톡톡히 한몫하고 있다.

짐짓 현실주의로 치장되는 합리적 에너지 믹스를 주장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그 실용론의 책임은 원전 예산 묵인으로 끝나지 않는다. 원전을 계속 이용하고 새로운 원전과 기술을 추진하는 데에 동의하려면 그만큼 치열한 탐구와 설명이 수반되어야 한다. 에너지 정책의 갈림길은 막대한 기회비용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당분간 원전이 필요한 것 아닌가라는 현실론에는 그 당분간이 언제까지인지 어떤 과정인지, 그리고 전환을 위해서는 어떤 조치와 입법이 필요한지에 대한 각론이 따라와야 한다. 예를 들어 SMR이 향후 몇년도까지 만들어낼 일자리 수와 온실가스 감축량을 공공부문의 해상풍력 프로젝트가 만들 효과와 비교하는 정도의 예산안 토론이 있어야 실용론이고 현실론이다. 예산은 미래를 만드는 이야기이고 메시지다. 민주당에 그런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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