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간첩, 빨갱이 천국이 되겠구나.” 역전과 재역전을 거듭하던 개표 결과가 김대중 대통령 당선으로 기울자, 새벽녘까지 지켜보던 나는 덜컥 겁이 났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고, 내 고향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같았다. 이렇다 할 현대사나 정치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던 데다 나고 자란 곳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나는, 그 이상의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무거운 마음으로 등교했다. 평소 좋아한 과학 선생님이 분위기를 살피더니 말했다. “호남에서도 대통령이 나와야지.” 딱히 설득이나 강변도 없었다. 그저 별일 아니라는 투였다. 머리가 쨍하고 울렸다. 말보다 그 태도가 내겐 충격이었다. 체 게바라 얼굴이 커다랗게 박힌 시사주간지를 들고 다니던 그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굳이 선생님께 ‘그 사람이 대체 누구냐’고 물어보고 주간지를 사보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사뭇 다른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 자신은 수많은 사람을 통해 만들어진다. 개인의 정체성은 사회적 산물이라는 거창한 말을 하지 않더라도, 사람은 만남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모두가 안다. 물론 윤석열 전 대통령처럼 만남이 그 자신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조차 이 명제를 증명한 셈이다.
윤 전 대통령 파면 이후 문형배 헌법재판관과 독지가 김장하 선생의 인연도 새삼 주목받았다. “받은 것을 사회로 돌려주라”는 선생의 말에 문 재판관은 평생을 ‘평균인’ 이상으로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큰 인연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작은 정성과 말과 행동에 대해 생각한다. 그날의 선생님처럼.
광장균(28·활동명)은 지난해 12월23일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가 한 노인으로부터 자리를 양보받고 이런 말을 들었다. “젊은이들이 우리 세대 때문에 고생이 많다.” 사실 그는 친구들과 놀다 들어오는 길이었는데, 그 말을 듣고 괜히 부끄러웠다. 그다음날부터 그는 윤석열 탄핵 촉구 시위에 참여했다. 윤석열 지지자들이 던진 달걀에 맞고 뺑소니에 치이면서도 그는 집회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경향신문 3월31일자 5면).
클레어 키건의 소설에서도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전해지는 뭉클한 그 무언가에 움직이는 인물들을 볼 수 있다. 갑작스레 먼 친척의 아이를 맡게 된 <맡겨진 소녀>의 킨셀라 부부는 첫날 침대에 실수한 아이를 보고도 매트리스에 습기가 찼다며 모른 채 넘어간다. 아이는 부모에게서도 단 한 번 느끼지 못한 따뜻한 감정을 배우고,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비혼모 가정에서 자란 <이처럼 사소한 일들>의 빌 펄롱은 어린 시절 도움을 준 미시즈 윌슨을 떠올리며, 같은 처지의 또 다른 소녀들을 차마 지나치지 못한다.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구절이 담긴 이 책은 지난해 한국에서 가장 많이 읽힌 소설 중 하나였다.
어쩌면 우리는 변화나 배움을 떠나 그저 만나서 어울리고 떠들기 위해 사는지도 모르겠다. “인간적 연대는 정치적 변화라는 목적에 핵심적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자체가 이유다.” 영국 비평가 테리 이글턴이 <왜 마르크스가 옳았는가?>에서 마르크스의 사상을 설명하며 한 말이다. 마르크스는 <경제학-철학 수고>에서 이렇게 말했다. “공산주의자 노동자들이 함께 모일 때 그들의 즉각적인 목적은 지도와 선전 등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에겐 새로운 필요, 곧 교제의 필요가 생기게 되며, 수단으로 보이는 것이 목적이 된다. 담배 피우기, 먹고 마시기 등은 더 이상 사람들 사이의 연계를 창출하는 수단이 아니다. 그들에겐 교제 자체가 목적이 되는 함께하기, 어울리기, 대화로 충분하다. 인간의 연대는 공허한 문구가 아니라 현실이며, 노동이 몸에 밴 그들의 모습에서 인간의 고결함이 빛을 발한다.”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고민한다. 창의력, 총체적 사고, 미묘한 수작업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냥 사람 옆에 사람으로 서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마르크스에게 궁극적 혁명이란 소규모 반란 집단이 갑자기 체제를 뒤엎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혁명적인 인간이 되는 것을 뜻했다. 소수에 의한 다수의 지배가 아니라 시민들의 자기 지배를 의미했다. 그것 역시 사람 옆에 사람으로 서 있음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여의도에서, 남태령에서, 헌법재판소 앞에서 보여준 시민들의 모습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