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대선주자 탐구
1980년대 초 서울 구로동. 한 주택 대문 앞에서 한 청년이 할 말을 잃은 듯 멍하니 서 있었다. 청진기와 약봉지를 품에 안은 채였다. 그가 망연히 바라본 건 대문 앞에 내걸린 조등(弔燈)이었다.
그는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집주인의 운명을 알리던 그 조등을 한참이나 들여다봤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가 혼잣말을 되뇌기 시작했다.
옆집 주민이 더욱 끔찍한 소식을 전한 건 바로 그때였다.
자초지종을 들은 청년은 충격을 받았다. 그가 “공동체를 위한, 타인을 위한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 순간이었다.
그 청년은 구로동 달동네에서 진료 봉사활동을 하던 서울대 의대생 안철수였다.
들어가며
지난 8일 6·3 대선 출마 선언을 한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하 경칭 생략)의 이야기를 구로동 진료 봉사활동에서 시작하는 것은 그리 어색하지 않다. 벤처 기업가, 교수, 정치인 등 그의 화려한 이력의 첫 페이지가 의사로 시작됐다는 점도 이유다. 올해로 정치 입문 13년 차를 맞은 그가 아직도 노회한 세태의 때를 묻히지 않고, 인간적 면모를 장점으로 내세울 수 있는 것도 그의 태생이 의사라는 사실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네 번째 대권 도전을 알리며 “누구보다 깨끗한 후보”라고 당당히 자임할 수 있었다.

지금부터 그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인생의 어떤 장면들이 그의 오늘에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그의 실질적인 출발점이 됐던 1980년대 초반의 서울 구로동으로 되돌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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