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디와 모방으로 표현력 키운다

2025-01-14

윤오영(1907~1976)은 한국의 대표적인 수필가로 꼽힌다. 그의 글 중 ‘방망이 깎던 노인’과 ‘마고자’, ‘소녀’, ‘참새’ 등이 국어 교과서에 실렸다. 그의 작품 54편을 선정해 〈곶감과 수필〉로 펴낸 출판사는 그가 “일상의 소소한 것들에 관한 남다른 관찰과 사유를 통해 짧지만 깊은 울림을 자아내는 수필”을 썼다면서 “그의 수필들은 하나같이 군더더기 없는 정갈함, 허투루 읽을 수 없는 무게감을 지닌다”고 평한다.

’방망이를 깎던 노인’은 과거 PC 통신 시절 ‘CD를 굽던 노인’으로 패러디됐다. 패러디 산문을 통해 원작이 다시 감상되기도 했다. 과거에 ‘쏜살같던’ 변화 속도는 인터넷 시대에 ‘전광석화처럼’으로 빨라진 바, ‘CD를 굽는다’는 표현이 낯선 독자들을 위해 잠시 짧은 설명을 덧붙인다. 자신의 데이터 파일이나 사진, 음악, 영상 등을 CD 등의 매체에 기록하는 것을 ‘CD를 굽는다’고 표현한다.

패러디란 무엇인가. 익살이나 풍자 효과를 위하여 원작의 표현이나 문체를 차용하는 기법이나 작품을 가리킨다. 문학뿐 아니라 음악과 미술 분야에서도 쓰이는 기법이다. 원작 ‘방망이를 깎던 노인’이 어떻게 패러디됐는지 비교하기 쉽게 첫 문단 이후 패러디된 문단 순서로 각각 두 문단을 아래 옮긴다. 패러디 작품의 저작자는 알려지지 않았다.

〈문학비평용어사전〉은 “패러디의 대상이 된 작품과 패러디를 한 작품이 모두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비추어 생각할 때, 이런 배치와 소개에도 원작의 가치는 깎이지 않으리라고 본다.

벌써 40여 년 전이다 내가 갓 세간 난 지 얼마 안 돼서 의정부에 내려가 살 때다. 서울 왔다 가는 길. 청량리역으로 가기 위해 동대문서 일단 전차를 내려야 했다. 동대문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방망이를 깎아 파는 노인이 있었다. 방망이를 한 벌 사 가지고 가려고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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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4년 전이다. 내가 갓 게이머가 된 지 얼마 안 돼서 용산구에 올라가 살 때다. 용산역에 왔다 가는 길에, 게임 CD를 한 장 사기 위해 일단 전차를 내려야 했다. 용산역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게임 CD를 구워서 파는 노인이 있었다. 게임을 한 장 사 가지고 가려고 구워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를 것 같았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깎던 것을 숫제 무릎에다 두고 태연스럽게 곰방대에 담배를 담아 피우고 있지 않는가. 나도 고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 노인은 또 깎기 시작한다. 저러다가는 방망이는 다 깎아 없어질 것만 같았다. 또 얼마 후에 방망이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방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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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마음대로 구워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인식이 안 되고 뻑이 난다니까. CD란 제대로 구워야지, 굽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이미지 뜬 것을 숫제 1배속으로 걸고 태연스럽게 새턴을 켜고 야구권을 하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흥분해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시디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게임 시디다.

노인은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의 기준에 맞춰서 방망이를 깎았다. 모르는 필자의 눈에는 차이가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완벽을 기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장인이었다.

◇노인이 고집스레 깎은 방망이의 가치

필자가 집에 와서 방망이를 건네자 부인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집에 있는 방망이보다 이쁘기도 하거니와 방망이의 굵어지는 곡선이 다듬이질을 하기에 딱 알맞다고 말한다. 요컨대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윤오영이 누그러지면서 방망이를 깎은 노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는 그 노인에게 탁주라도 대접하며 사과하기로 한다. 이후 원작의 내용 전개와 마무리는 직접 확인해보시라. 아울러 패러디는 어떻게 변주됐는지도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감상해보시라.

원작이 패러디로 어떻게 바뀌는지, 개작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다는 심정으로 비교해보면 패러디 기법을 일부 자신의 것으로 터득할 수 있다.

패러디가 많이 된 작품이 연암 박지원(1737~1805)의 ‘허생전’이다. 이 단편소설은 공대생을 주인공으로 한 ‘공생전’을 비롯해 다양하게 재탄생했다. ‘공생전’의 앞부분은 다음과 같다.

공생은 지곡골(墨積洞)에 살았다. 곧장 포스코(捕手固) 밑에 닿으면, 고속버스터미널 위에 언덕이 서 있고, 경주시를 향하여 포항공과대학교가 있는데, 그 근처 학생들은 의학전문대학원에 관심만 있었다. 그러나 공생은 글읽기만 좋아하고, 그의 여친이 고딩을 상대로 30만원짜리 과외를 하여 입에 풀칠을 했다.

하루는 그 여친이 몹시 배가 고파서 울음 섞인 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평생 기술고시를 보지 않으니, 책은 읽어 무엇합니까?”

공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아직 기술혁신을 익숙히 하지 못하였소.”

“그럼 변리사라도 못하시나요?”

“변리사 학원은 강남구에 몰려 있는데 어떻게 하겠소?”

“그럼 의학전문대학원은 못하시나요?”

“학자금이 없는 걸 어떻게 하겠소?”

여친이 왈칵 성을 내며 외쳤다.

“밤낮으로 기술만 파더니 기껏 ‘어떻게 하겠소?’ 소리만 배웠단 말씀이요? 변리사도 못한다, 의학전문대학원도 못한다면 황우석이라도 못 되나요? 메가스터디 강사라도 못해먹나요?”

공생은 읽던 책을 덮어놓고 일어나면서,

“아깝다, 내가 당초 박사과정만 십 년을 기약했는데, 인제 칠 년인걸….”

하고 홱 포항공대 밖으로 나가버렸다.

‘공생전’이 어떻게 ‘허생전’을 패러디하면서 전개되는지는 마찬가지로 인터넷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 중 다수는 이런 의문을 품을 듯하다. ‘말이야 좋지, 패러디도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니잖아?’ 동의한다. 그래서 패러디가 엄두 나지 않는 독자를 위해 모방을 권한다. 모방은 패러디에 비해 쉽게 시도할 수 있다. 남에게 평가받고자, 신춘문예에 응모하기 위해 모방작을 쓰는 것이 아니니, 제 흥에 겨워 재미나게 원작자의 문체와 전개를 흉내내면 된다.

◇패러디 엄두 나지 않아도 모방은 가능

활자매체에서 사실만 쓰도록 훈련받아 글이 고지식하기 짝이 없는 필자도 패러디는 몇 차례 시도해봤다. 발표장은 소셜 미디어. 그중 하나의 대상은 한동원이라는 필자의 글이었다. 마니아층을 형성한 그이지만, 혹여 모를 독자를 위해 출판사의 저자 소개를 인용한다.

“저자 한동원은 (중략) 2002년 한 영화 소개 TV 프로그램에서 ‘결정적 장면’을 기획, 10개월간 연재하여 전국적인 ‘결정적 장면 신드롬’을 일으킨다. 이후 그의 스타일과 어투는 해당 프로그램은 물론 수많은 매체에 의해 모방되었다.”

필자가 ‘한동원체’로 쓴 다음 글은 그가 쓴 〈나의 점집문화 답사기〉에 대한 리뷰. 그러고 보니 이 책 제목도 다른 베스트셀러 제목을 패러디한 것이다.

아, 이것은 무엇인가.

아무 일 없고 무미건조한 당신의 하루를 간헐적인 키득거림으로 채워주는, 웃다가 눈물을 쏙 빼도록 하지는 않지만 패러디와 유머 속에 운명이라는 강물에 던져진 인간사의 흐름에 대한 간단치 않은 해설을 던지는, 그러면서도 운명철학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부적이자 세상을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 대마초 같은 효과를 내는 이것은.

이것은 바로 〈나의 점집문화 답사기〉다.

‘결정적 장면’이라는 꼭지를 기억하시는가? 나른한 일요일 아침 자유방임형 자세로 눈과 귀와 생각을 TV에 맡기고 있던 우리를 크로스오버적인 표현과 청량음료스러운 멘트로 깨어나게 했던 바로 그 꼭지를?

(중략)

그렇다. ‘결정적인 장면’을 집필한 바로 그 필자가 이 책을 썼다. 저자는 타고난 호기심과 평상시 배우고 익힌 잡다한 지식, 그리고 특유의 능청스러움으로 무장하고 필마단기로 강호 각종 장르의 명문 점술가를 도장격파하듯 찾아다니는데.

물론 승부는 맞느나 틀리느냐로 가름된다. 그는 복채를 걸고 점술가는 자신의 예측력을 건다. 결과는 어땠느냐고? 그건 저자한테 직접 들으시고!

(중략)

아무튼. 저자의 발길을 따라, 마치 몰래카메라로 들여다보듯 국내 최초로 시도된 듯한 탐사취재적이며 인문학적인 해설이 곁들여진 운명상담기를 읽노라면 이름난 점집 복채의 불과 몇 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 이 책의 가격에 감사할 수밖에 없게 된다.

장르와 매체에 얽매이지 않고 그저 하고 싶은 얘기를 할 뿐이라고 겸손하게 말하는 저자 한동원의 다음 답사처가 어디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모방은 예술을 익히는 기본적인 훈련 방법이다. 글쓰기 솜씨도 모방을 통해 향상시킬 수 있다. 모방이 패러디가 되고 자신만의 스타일도 된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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