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글로비스가 최대 1년 6개월치 연봉을 보장하는 퇴직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잘나가는 한화글로비스가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이란 축포를 쏘기 전 '희망퇴직인 듯 희망퇴직이 아닌' 프로그램을 꺼내든 이유에 관심이 주목된다.
1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직원들에게 최대 1년 6개월치 연봉의 위로금을 내건 '넥스트커리어' 프로그램을 시행한다고 공지했다.
넥스트커리어는 정년퇴직을 앞두고 직급과 직책에 무관하게 커리어에 대한 고민과 생애주기 전환에 대해 검토 중인 만 50세 이상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다.
희망자는 경제적인 부분에 한정해 지원받는 것이 아닌, 전직 및 생애주기 전환에 대한 교육을 함께 제공받으며 삶의 다음 단계로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도움받을 수 있다는 게 현대글로비스 측의 설명이다.
현대글로비스 관계자는 "특정 시기에만 진행하는 것이 아닌 희망자가 원할 때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는 사내 복지 프로그램"이라며 "강제성이 없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명예퇴직이나 희망퇴직 등 인위적인 인력감축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를 두고 현대글로비스 직원들 사이에서는 인력감축을 염두에 둔 사실상 '연중' 희망퇴직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회사가 최근 몇 년간 호실적을 이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퇴직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것을 두고 내부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것.
실제 현대글로비스는 지난해 3분기 매출 7조4687억원, 영업이익 4690억원으로 역대 최고 실적 기록을 갈아치우며 4분기 실적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4분기에도 탄탄한 성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돼 연간 기준 역대 최대 매출을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는 연초부터 7조원 규모의 완성차 해상운송 계약을 체결하며 사상 첫 매출 30조원 달성에 대한 기대감도 높였다. 2조원대 영업이익도 노려볼 수준이다.
'재무통' 이규복 현대글로비스 대표이사 체제하에 인건비 등 고정비 부담을 낮추고 운영 효율화를 꾀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한 내부 관계자는 "고연차 구성원 많아지며 회사가 인건비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현대글로비스의 2023년 기준 1인당 평균 급여액은 약 973만원으로, 전년 대비 5.3% 증가했다. 연간급여 총액도 ▲2021년 1278억원 ▲2022년 1692억원 ▲2023년 2145억원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규복 대표는 2023년 취임한 이후 현대글로비스의 재무건전성을 강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수장직에 오른 지 2년 만인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 사장으로 전격 승진했다.
당초 시장에서는 현대자동차그룹에 입사해 재무관리실장과 해외법인 재경담당 임원 등을 역임한 이 대표가 현대글로비스 대표로 발탁되자 의아해하는 시선이 많았다. 그동안 현대글로비스는 비(非)재무 전문가를 대표이사로 선호해왔기 때문이다.
현대글로비스는 향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승계를 위한 핵심 계열사라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정 회장은 현대글로비스 단일 최대주주로서 현대차그룹 계열사 중 현대글로비스 지분이 가장 많다.
현대글로비스의 고배당 정책은 승계 실탄으로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이 대표가 취임 직후 경영 효율화를 통한 기업가치 제고를 내세운 이유다.
특히 이 대표는 최근 실적 상승세를 중장기적으로 이어가기 위해 과감하고 신속한 투자를 강조하고 있다. 2030년까지 9조원의 투자를 집행해 자산 기반의 안정적인 지속 성장을 이뤄간다는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안정적인 성장세의 현대글로비스가 퇴직을 종용할 이유가 없음에도 향후 불확실성을 줄이고 투자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선제적인 퇴직 프로그램을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며 "상시퇴직 제도를 통해 신사업 확대에 따른 젊은 새로운 인재를 등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