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피가로 “‘제도적 폭탄’을 투하한 윤 대통령”
국회에선 만장일치, 시민들은 “우리가 이겼다”
미국·중국·일본을 비롯해 유럽 매체 등 거의 모든 주요 외신이 지난 3일 밤부터 6시간 동안 일어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부터 해제까지 전 과정을 긴급 타전했다. 특히 유혈사태 없이 국회와 시민들의 힘으로 이뤄낸 정치적 해결 과정에도 주목했다.
AP통신은 4일 윤 대통령이 “반국가세력”을 제거하겠다며 갑자기 선포한 비상계엄은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요구 결의안’이 통과되면서 6시간 만에 효력을 잃었다고 보도했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 소총을 동원한 계엄군이 국회에 진입하고 국회의사당 상공에 군용 헬리콥터가 나타났지만 심각한 폭력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했다.
프랑스 르피가로는 윤 대통령이 5100만명의 한국 국민을 깜짝 놀라게 한 TV 연설로, 위험한 질주로 보이는 ‘제도적 폭탄’을 투하했다고 했다. NHK·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과 CCTV·환구시보 같은 중국 매체도 신속하게 비상계엄 선포를 보도했다.
CCTV는 “비상계엄 해제 이후에도 사태가 진정되지 않자 여야는 물론 시민단체까지 윤 대통령에게 화살을 돌리며 퇴진과 탈당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윤 대통령이 현재 전대미문의 위기를 맞았다”고 했다.
특히 외신은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도출된 정치적 합의 과정과 성숙한 시민 의식에 주목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한국인들이 계엄령을 거부한 방법’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윤 대통령이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이례적 시도로 계엄령을 선포했지만, 국회가 만장일치로 거부하면서 ‘셀프 쿠데타’는 굴욕적 실패로 막을 내렸다”고 했다.
FP는 “윤 대통령이 국회 표결을 막기 위해 군대를 이용하려 했지만, 여야를 막론한 모든 정당의 정치인들이 이를 거부했으며, 시위대가 군인들에 맞서 인간 바리케이드를 형성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군대가 윤 대통령의 지시를 따랐다면 군과 시민 간 충돌 등 위기가 고조될 수 있었지만 군대는 국회에서 후퇴했고, 윤 대통령은 결국 비상계엄을 해제했다”고 했다.
월스트리트저널도 “의원들이 (의사당) 담장을 넘고 무장 군인 사이를 뚫고 국회 안으로 진입했고, 계엄 해재 요구 결의안 투표를 통해 ‘190 대 0’이라는 결과를 냈다”고 했다.
외신들은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가결이 의원들과 시민들의 합작품이라고 평가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국회에 파견된 무장 특수부대가 (출입을) 통제하자 수백명의 시위대가 인간 방어선을 만들어 군의 국회 진입을 막았고, 수천명의 시위대가 국회 밖에서 ‘윤석열 체포’를 외쳤다”고 했다.
로이터통신도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자 격분한 국회의원들이 만장일치로 거부했고, 이에 국회 밖에 있던 시위대는 함성을 지르고 박수를 치면서 ‘우리가 이겼다’고 외쳤다”면서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외신은 이날 관공서·은행 등이 문을 여는 등 평소처럼 하루를 시작한 서울시민들의 침착한 모습에도 주목했다. AP통신은 서울을 찾은 한 호주 관광객이 한국 상황과 관련해 “전혀 걱정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을 전하면서 “서울의 거리는 여느 수요일 같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