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2025전주세계소리축제 개막공연 ‘심청’

2025-08-19

 ▲꿈을 꾸는 연둣빛, 살아 있고픈 붉은빛

 광복 80주년 기념 전야제 공연이 있었다. 싸이가 나와서 공연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우리 모두는 챔피언이라며 노래하는 그가 입은 옷 색깔은 초록 계열의 연둣빛이었다. 힘차게 노래하는 싸이의 노래를 들으며 우리가 광복 80주년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했다. 뜬금없지만 싸이의 연둣빛 옷을 보면서 이번 전주세계소리축제 개막공연으로 올랐던 작품 <심청>을 떠올렸다. 새로운 형식의 창극 <심청>은 전주세계소리축제와 국립극장이 공동제작한 작품이다. 

 이번 국립창극단 작품 <심청>은 굳이 빛깔에서나마 희망을 찾고 싶었을 만큼 비극이 여실히 드러나 관객으로 하여금 불편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었다.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출 요나 김은 관객들이 이 작품을 보는 내내 불편하길 바랐다고 했다. 그만큼 이번 작품 <심청>은 불편한 진실을 직설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불편한 진실이란 심봉사는 심청에게 평생 힘든 부담을 짊어지게 했으며 끝내 죽음으로 몰고 간 인물이었고 심청은 이러한 불행에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는 사회적 약자의 운명에서 결코 헤어나올 수 없는 안타까운 인물이었다는 사실이다.

 작품 속 심청은 처음엔 연둣빛 카디건을 입고 다음에는 붉은빛 카디건을 입고 나온다. 그 색깔에서 연둣빛 심청은 어쩌면 조금은 꿈을 꾸고 있었을 것 같다. 그리고 붉은 빛 카디건의 심청은 붉게 살아있고팠던 것은 아니었을까? 두 가지 상황 모두 심청은 불행했지만 어쩐지 그 색깔을 통해 심청의 희망을 조금이나마 보고 싶었던 것 같다.

 ▲ 심청은 자발적으로 물에 빠진 것이 아닌가요

 공연을 보고 돌아와 아는 작가와 심청 이야기를 했다. 공연을 보는 내내 심청의 희생과 심봉사의 폭력성을 그대로 보게 되어서 불편했다는 이야기였다. 그 작가는 심청이 자발적으로 인당수에 간 것이니 심봉사의 잘못이 그리 크다고 말할 수 있을까, 라고 대답했다. 그 대답에 나는 많이 놀랐다. 심청에게 강요된 폭력은 어려서부터 교육받은 효의 강요에 의한 학대일 수 있다. 어려서 읽은 전래동화에서 병든 시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아이를 솥에 넣고 삶아 드린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솥에서 나온 것은 산삼이었고 아이는 산에서 살아서 돌아왔다는 이야기라지만 이 얼마나 끔찍한 이야기인가. 굶주리던 시절에 종아리 살을 잘라내 부모의 굶주림을 채웠다는 이야기는 또 얼마나 끔찍한가.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팽배할 때의 이야기였다. 지금은 효의 기준이 바뀌었다. 그렇기에 심청의 이야기는 현실의 이야기에 비추어 볼 때 정말 불편한 진실이다. 

 작품 속 영상 속에 여린 심청의 등에 업힌 덩치 큰 심봉사의 모습이 나온다. 여리디여린 심청의 등에 올라타 업히는 심봉사는 여린 심청의 사정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심청이 힘에 버거워 아버지를 떨어뜨리면 다시 올라타 업힌다. 심청의 다리를 부여잡고 업히고 다시 또 업히고 업힌다. 인생의 굴레로 여겨지는 장면이다. 이 얼마나 폭력적인가? 도덕이라는 굴레로 어린 심청에게 지워진 무거운 아버지란 존재는 결코 벗어날 수 없는 형벌과도 같다. 당장이라도 심봉사를 끌어내서 던져버리고 싶은 폭력성이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 같았다. 

 “심청이 자발적으로 인당수에 빠진 것은 아닌가요? 그래서 그 희생이 갸륵해서 효녀라 칭하는 것이 아닌가요?” 아니다. 이 말은 시대적, 사회적 권력의 힘이 힘없는 사회적 약자 위에 군림하기 자행한 폭력의 가스라이팅이나 다름없다.

 ▲ 심청전의 바디를 제대로 살린 공연

 무엇보다 이번 작품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심청전의 바디를 원작 그대로 살렸다는 것이다. 연출 요나 김은 심청전 원작의 바디를 그대로 살린 것을 자랑했다. 나 역시 이 부분에 크게 공감했다. 배우들이 현시대의 옷을 입고 현시대의 상황을 묘사하고, 이야기는 원작과 전혀 다르게 이어지는데도 국립창극단 단원들이 부르는 심청전 원작의 바디는 어떻게 그렇게 상황과 딱 맞는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배우들의 최고조 감정이 담겨 있는 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준다. 하지만 이번 작품 <심청>에서의 소리는 그야말로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고 소리 자체가 가진 내면의 이야기에 힘을 실어 응축시켰다 하겠다. 그리하여 겉으로 보이는 모든 상황들이 실은 얼마나 큰 폭력을 품고 있는지를 소리의 담백한 절규를 통해 더욱 치열하게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작품에서 배우들이 감정을 최대한 덜어내고 소리에는 힘을 담고 더 처절하게 절규하며 울부짖는 듯한 전율의 소리를 관객에게 가장 극대화하여 보여준 것이라 하겠다.

 ▲ 극적인 힘을 실은 배우들의 혼신의 절규

 심청 김우정은 억압받고 불행한 심청의 이야기를 담백하게 전하고 있다. 무표정으로 모든 감정을 끌어모아 소리에 집약시켜 듣는 이로 하여금 심청의 깊은 곳 슬픔을 느끼게 하였다. 그리하여 심청의 소리는 마음이 아프고 불편했다. 어찌 한때의 가벼운 즐거움도 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어야 했을까? 남경상인에게 끌려가며 어린 시절 함께 놀았던 친구들에게 마지막 인사말을 하는 소리는 참으로 가슴을 쥐어짜는 슬픔이었다. 안타까움이라 말하기엔 너무도 커다란 슬픔이 가슴을 훑고 지나가는 통에 심청의 소리는 가슴에 비수로 와서 박히는 것만 같았다. 

 심봉사 역의 유태평양의 소리와 연기는 그야말로 출중했다. 어린 딸을 양육해야 하는 우울한 상황을 현실로 인식하기엔 무기력했던 상황. 심봉사는 자신의 삶이 그저 불행하고 암울했을까? 울고 있는 딸을 기어코 내던져 버리는 잔혹한 아버지. 그러면서도 그 딸을 젖동냥하면서 먹여 키웠던 아버지. 미워해야만 하는 심봉사의 역할 속에서 결코 또 그 인생을 이해해야 할 것만 같은 애잔함까지 느꼈던 것은 아마도 배우의 가슴 깊숙이 간직된 내면의 저력일 것이다. 무엇보다 심봉사의 소리는 너무도 정확하게 잘 들리고 선명하여 오히려 나쁜 주인공을 이해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인상 깊었던 역은 뺑덕이네와 장승상댁 부인이다. 뺑덕이와 장승상댁 부인의 연기 자체가 너무 서늘하여 두려움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나 만날 법한 호러 속 주인공이 아니었나 싶었다.

 ▲ 심청이 행복해지기를

 사회와 모든 주변 상황이 심청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세상. 세상의 약자는 환경을 극복할 수 없는 것일까? 세상은 점점 변하고 조금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간다지만 여전히 사회적 약자가 헤어 나오기엔 층층이 쌓인 벽들이 너무 많다. 

 심청은 죽고 결국 객석을 지나 무대를 지나 바깥으로 자유의 세상으로 걸어나간다. 스스로 죽고난 후에 환생한 심청은 이제 조금 더 나은 세상에서 살고 있을까? 이젠 세상이 심청과 같은 사회적 약자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갖고 긍휼히 여기고 측은지심을 갖고 진심으로 사랑의 마음을 열어주길 바라보는 시간이었다. 

 본인은 전에 창작창극 심청 대본을 쓰기 위해 심청전을 여러 번 읽었다. 다른 심청전의 대본 역시 여러 번 읽었다. 그럴 때마다 느꼈는 것은 마음 속의 불편함이었다. 과연 아름다운 희생으로 목숨을 잃은 심청의 사연을 현대인들에게 효심이라고 칭찬하는 것이 괜찮은 것인가, 하는 의문이었다. 딸을 팔아먹고도 그 돈으로 뺑덕이네와 아무렇지 않게 잘 지낸 심봉사의 행동은 어찌 용서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심봉사를 심청 대신 용궁으로 보내고 심청을 황궁으로 가도록 만든 새로운 대본을 써보기도 했다. 어떻게든 심청을 조금이나마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고 심봉사의 딸 사랑의 마음을 되살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효에 대한 환상 해체 ‘불편’ 불구 새로운 도전 ‘고무적’

 전주세계소리축제와 국립극장이 합작하여 만든 이번 작품 <심청>은 여러 가지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물론 우리들이 전통적인 심청이란 작품에서 만나고 싶은 효에 대한 환상을 모조리 해체해야 한다는 불편한 진실은 우리들을 많이 힘들게 했음은 부인하지 못하겠다. 그럼에도 우리 창극에서 이러한 도전을 해본 것은 커다란 성장이었다고 본다. 그것이 세계소리축제라고 하는 세계적 음악축제에서 선보였다는 것이 참 좋은 시도였다고 하겠다. 

 국립창극단이 가장 전통적이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나 전통의 이야기를 전혀 새롭게 해석해 무대에 올릴 수 있었음은 참으로 고무할 만한 일이다. 또한 무대장치나 영상의 쓰임 등도 무척 새로워서 보는 이로 하여금 처음부터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한 것도 실험적이었다 하겠다. 이러한 긴장은 <심청>을 보는 내내 처음부터 불편하게 하였지만 공연 시작 처음에 던져졌던 심청은 누구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조금은 깊이 고민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할 것이다.

 정선옥 희곡작가 겸 소설가

저작권자 © 전북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