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폭력 피해자들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악몽 같은 옛 기억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학교 근처만 지나가도 가해자 얼굴이 떠오른다고 한다. 피해자의 시간은 멈춰 있는데 정작 가해자 중 상당수는 피해자를 괴롭힌 과거를 망각한 채 살고 있다. 과거 학교에선 학폭 문제에 대해 쉬쉬하거나 온정주의로 처리하는 경향이 컸다. 학폭 탓에 영혼까지 부서진 한 여자가 치밀한 준비 끝에 ‘사적 복수’에 나선다는 내용의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2023년)가 엄청난 인기를 끈 것도 이런 토양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2023년 2월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지명됐던 정순신 변호사 아들이 학폭으로 징계를 받고도 서울대에 진학한 사실이 알려져 여론이 들끓었다. 피해자는 우울증으로 입원하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할 만큼 고통을 받았는데 가해자가 버젓이 대학 생활을 하고 있어 공분을 샀다. 게다가 권력을 가진 학부모 앞에서 학교와 교육청의 학폭 징계 시스템은 사실상 무용지물이 돼 충격이 더 컸다. 결국 정 본부장은 하루 만에 낙마했고, 이 사건은 대학들이 ‘학폭 가해 사실’을 입시에 감점 요인으로 의무 반영하는 계기가 됐다.
학폭 가해 사실이 대입에 처음으로 반영된 2025학년도 전형에서 국립대 6곳에 지원한 학폭 가해자 45명이 불합격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북대가 22명으로 가장 많았고 부산대(8명), 강원대·전북대(각 5명), 경상대(3명), 서울대(2명) 등이었다. 지나치게 가혹한 조치라는 반론도 있지만, 학폭에 대한 국민의 오랜 걱정에 묻히는 분위기다. 2026학년도부터는 모든 대학이 의무적으로 학폭 가해 이력을 확인해 불이익을 줘야 한다.
방송인 박명수는 KBS 라디오에서 “공부 잘하고 S대 간다고 성공하고 인성이 좋은 게 아니다”며 “경북대의 강력한 조치를 지지한다. (만약) 경북대에서 행사를 하게 된다면 (출연료를) 20%를 할인해 드리겠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박씨 발언에 응원·공감하는 댓글이 넘쳐 난다. 학폭으로 피해 본 학생과 가족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우리 사회의 희망이자 미래인 청소년들이 폭력과 공포 속에서 성장하는 일은 막아야 한다. 이번 조치로 ‘학폭은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는 인식이 사회에 뿌리내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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