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햄릿이 말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 질문은 셰익스피어의 문학 속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현대 물리학에서도 비슷한 질문이 등장한다. 바로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이다.
밀폐된 상자 안에 독약과 방사성 원소,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가 있다. 방사성 원소가 붕괴하면 독약이 방출되어 고양이는 죽는다. 원소가 붕괴하지 않으면 고양이는 산다. 문제는 이 방사성 원소의 붕괴 여부가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이다. 즉, 상자를 열어보기 전까지 고양이는 살아 있으면서도 동시에 죽은 상태라는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양자 중첩’ 때문이다.

사실 양자역학 하면 빠지지 않는 이 유명한 고양이 사고 실험은 원래 양자역학의 모순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었다. 슈뢰딩거는 미시 세계에서 중첩이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을 주장하는 젊은 물리학자들을 골탕 먹일 생각으로 이 실험을 고안했다. 미시 세계의 마법을 조금씩 더 크게 확장하면서 고양이라는 거시적 존재에게 똑같이 적용했을 때 얼마나 당혹스러운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하지만 양자역학을 주장하던 물리학자들은 굴하지 않고, 죽은 고양이와 산 고양이의 중첩 상태를 인정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중첩이 꼭 고양이가 들어 있는 상자 안에만 국한될 필요가 있을까? 상자가 놓여 있는 실험실, 건물 전체, 나아가 우주 전체에도 똑같은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 그래서 탄생한 마법 같은 이야기가 그 유명한 다중우주, 멀티버스 개념이다. 다중우주 가설은 참 흥미롭다. 굉장히 난해하고 복잡한 개념인데도 SF 영화를 비롯해 대중문화에서 널리 쓰인다.
사실 다중우주는 수학적으로 매력적인 가설이지만, 실제 관측을 통해 입증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최근 구글에서 개발한 양자 컴퓨터가 다중우주의 존재 가능성을 입증할지 모른다는 흥미로운 주장이 제기되었다. 과연 양자 컴퓨터의 성공은 다중우주의 존재를 입증하는 증거가 될 수 있을까?
최근 논란이 된 이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천문학자, 물리학자들이 당장 증명도 할 수 없는 다중우주 가설을 왜 진지하게 연구하는지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다중우주는 단순한 SF적 상상이 아니다. 물리학자들이 다중우주를 연구하는 이유는 단순히 또 다른 우주가 있을지 모른다는 호기심 때문이 아니다. 다중우주 가설은 우리가 거대한 우주를 양자역학적인 존재로 바라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현재의 물리학은 두 개의 큰 기둥으로 이루어졌다. 하나는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고전 물리학으로 대표되는 거시 세계의 물리학이고, 다른 하나는 양자역학으로 설명되는 미시 세계의 물리학이다. 문제는 이 두 물리학이 아직까지 완벽하게 통합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중우주 가설은 이 둘을 연결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다중우주는 거대한 우주 전체가 양자역학적 존재로서 활동하며, 언제 어디서든 새로운 우주가 탄생할 수 있다는 개념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빅뱅 이론에 따르면, 태초의 우주는 원자보다 더 작은 스케일이었으며, 따라서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의 지배를 받았다. 이 시기에는 공간과 시간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했으며, 물리 법칙조차 불확실한 상태였다.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특정한 물리량의 값은 정확히 알 수 없으며, 그 결과로 진공에서도 에너지가 무작위로 요동할 수 있다. 이러한 원리는 입자-반입자의 쌍이 순간적으로 생성되었다가 사라지는 ‘양자 요동(Quantum Fluctuation)’ 현상을 설명하는 데 사용된다. 이러한 현상은 우주 탄생 초기에도 발생할 수 있었으며, 태초의 우주가 작은 양자 요동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러한 양자 요동이 충분히 큰 에너지 밀도를 가지게 되면, 하나의 독립적인 새로운 공간이 생성될 수 있다. 즉, 우리 우주 전체가 태초의 작은 요동 하나에서 시작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것은 다중우주 가설과도 연결될 수 있다. 불확정성 원리가 작용하는 한, 우주의 탄생이 단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사는 우주 외에도 무수히 많은 우주가 서로 다른 시점에서 생성될 수 있음을 의미하며, 다중우주 가설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개념 중 하나다.
1950년대 휴 에버렛은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 실험을 더 고차원으로 끌어올린 새로운 해석, 일명 다세계 해석을 제안했다. 사실 고전적인 양자역학적 해석에 따르면, 상자 속 고양이는 죽었을 확률과 살아 있을 확률, 두 가지의 파동 함수가 공존하는, 즉 중첩된 상태로 존재한다. 그러다가 상자를 여는 순간 한쪽으로 모든 확률이 붕괴되면서 한쪽의 운명으로만 고양이를 확인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에버렛은 이러한 설명이 어색하다고 생각했다. 잘 존재하던 두 개의 확률이 한쪽으로 모두 쏠려 붕괴할 필요가 없는 새로운 해석을 찾았다. 그는 관측하는 순간마다 고양이가 살아 있는 우주와 죽어 있는 우주가 계속 갈라질 뿐이라면, 그리고 우리가 그 중 한쪽의 우주에서만 벌어지는 일들을 목격하고 있을 뿐이라면, 굳이 실제 우주에서 중첩된 두 가지 확률이 하나로 붕괴되는 가정을 더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즉, 관측을 할 때마다 우주의 운명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일명 다세계 해석이다. 다세계 해석은 어떻게 우주가 셀 수 없이 많은 다중우주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수학적 해답을 제시한다.
우주가 하나가 아니고 셀 수 없이 많을 거라 가정하게 되면 깔끔하게 설명되지 않는 우주의 미세 조정 문제를 조금 더 게으르게 해결할 수 있다. 물리학에서는 왜 우리 우주의 물리 상수가 이렇게 절묘하게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도록 조율되어 있는지 의문을 갖는다. 이에 대한 하나의 해석은, 우리가 사는 이 우주가 무수히 많은 우주 중 하나이며, 다른 우주에서는 물리 상수가 다르게 설정되어 있어서 생명이 탄생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관측 가능한 우주’ 속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맞이했다는 논리다.
그래서 다중우주 가설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개념이 바로 ‘인류 원리(Anthropic Principle)’다. 인류 원리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이 우주를 관측할 수 있는 것은 우리와 같은 관측자가 존재하도록 우주가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논리를 담고 있다. 인류 원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약한 인류 원리(Weak Anthropic Principle)’로, 이는 우리 우주가 생명체가 존재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에 우리가 존재할 수 있다는 단순한 설명을 제공한다.
두 번째는 ‘강한 인류 원리(Strong Anthropic Principle)’로, 우주는 본질적으로 관측자가 존재할 수 있도록 조정되었다는 더 강력한 주장을 내포한다. 이는 우주의 물리 상수가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형태로 조정된 이유가 단순히 우연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하며, 다중우주 가설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최근 구글은 ‘윌로(willow)’라고 불리는 양자 컴퓨터 소식을 전하면서, 우주의 나이보다 더 긴 시간이 걸려야 해결할 수 있는 계산을 아주 빠르게 계산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고 홍보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양자 컴퓨터가 다중우주의 존재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언급해 큰 화제를 모았다.
양자 컴퓨터는 1과 0으로만 계산하던 방식을 넘어 두 가지 상태가 공존하는 양자 중첩을 활용해 계산하는 새로운 개념이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처음 고안했고, 이후 영국의 물리학자 데이비드 도이치가 현대적인 양자 컴퓨터의 문법을 닦았다. 많은 물리학자들은 향후 몇 년 안에 양자 컴퓨터가 유의미한 수준에서 상용화된다면, 도이치가 노벨 물리학상의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도이치는 양자 컴퓨터의 원리를 설명하면서 흥미로운 비유를 한 적이 있다. “양자 컴퓨터는 여러 개의 다중우주와 GPU처럼 연결되어 한꺼번에 병렬 계산을 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의 영화 같은 비유는 현실 세계의 양자 컴퓨터가 우리 우주 너머에 존재하는 또 다른 우주와 연결되어 신비롭게 작동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이것은 멋진 시적 비유일 뿐, 문자 그대로 양자 컴퓨터의 작동 자체가 다중우주의 실험적 증거가 된다고는 보기 어렵다. 단지 양자 중첩과 얽힘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틀리지 않았고, 우리가 예측한 대로 양자역학적 현상이 잘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정말 우리 우주 너머에 셀 수 없이 많은 우주가 공존한다는 것을 말하는 건 아니다.
관측된 것만 믿는 직업병이 있고 그렇게 훈련받아온 천문학자인 내게, 다중우주 가설은 묘한 매력과 거부감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매력과 거부감이 중첩된 것처럼 느껴진다. 천문학의 역사를 보면, 인류는 항상 유일할 거라 생각했으나 유일하지 않았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흘러왔다. 특별할 거라 생각했던 지구도, 태양도, 우리 은하도 그저 셀 수 없이 많은 별과 행성, 은하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자연스럽게 그러한 우려는 이제 우리 우주 전체를 향하게 된다. 유일할 거라 생각한 우리 우주도 어쩌면 수많은 우주들 중 하나이지 않을까? 그동안 천문학의 역사가 걸어온 길을 보면 불가능하지는 않아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관측 가능한 우주 너머의 우주를 이야기한다는 측면에서, 애초에 증명이 불가능한 허무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결국 천문학적 진실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실제 관측을 통해 확인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다중우주는 다른 의미에서 매력적이다. 우리 우주는 태초에 원자보다 더 작은 세계였다. 그래서 우주의 시작을 이해하려면 거시 세계를 노래하는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물리학이 아니라 양자역학이 필요하다. 그 사이 크게 부풀어버린 우주는 원래부터 큼직하고 거대한 세계인 척하지만 사실 그 시작은 미미했다.
우주는 거시적인 척하는 미시적 존재다. 우주를 거시적인 존재인 동시에 미시적 존재로 바라보게 만든다는 측면에서 다중우주 가설은 매력적이다. 빅뱅은 거대한 우주를 태어나게 한 가장 거시적인 이벤트이지만 동시에 지극히 임의로 요동치는 양자 요동의 파도 속에서 벌어진 가장 미시적인 이벤트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양자 컴퓨터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양자 컴퓨터는 우리가 현재 쓰는 고전적인 컴퓨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게 작동한다. 양자 컴퓨터라고 부르면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컴퓨터의 상위 버전인 것처럼 오해를 불러온다. 그래서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그냥 무미건조하게 양자 머신이라고 부르는 게 가장 공평하지 않을까 싶다. 만약 정말로 양자 컴퓨터, 즉 양자 머신이 다중우주를 연결하는 GPU와 같은 기계라면, 우리 우주도 이미 한참 오래전부터 더 발전된 존재가 살고 있는 우주에 의해 리소스를 도둑질당하며 살고 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우리도 슬슬 남의 우주에서 도둑질을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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