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차가 최근 전 세계 자동차 산업 전반의 판도를 바꾸고 있는 것처럼 디젤 엔진이 발명됐던 1892년은 세계의 산업을 바꾸기 시작한 원년이다. 발명 당시 디젤 엔진은 값비싼 석유 연료 없이도 작동하는 강력한 엔진으로 이것을 발병한 독일인 루돌프 디젤은 백만장자가 됐다. 보통명사처럼 사용했던 디젤은 발명자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발명한 사람의 이름에서 따온 줄도 모를 정도로 루돌프 디젤의 존재는 희미하다. 이유는 1913년 9월 29일 런던행 여객선 드레스덴호에 타고 있던 디젤이 한밤 중 망망대해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당시 급부상하던 강대국 미국을 두 차례 순회한 이후 얻은 통찰을 기록하기도 하고 윈스턴 처칠, 토머스 에디슨, 노벨 가문 등 세계적인 인사들과 교류하며 그의 영향력 역시 확대되던 시기에 발생한 디젤 실종 사건은 가장 미스터리한 세계사 중 하나로 꼽힌다. 이 때문에 사고사·자살·타살 등 수많은 의혹들이 난무했다.
책은 디젤의 삶과 혁명적이고 놀라운 발명품, 그리고 실종된 밤의 비밀을 추적하며 100년 동안 풀리지 않았던 미스터리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가난했던 유년기를 극복하고 디젤 엔진을 개발해 성공한 이야기부터 자신이 발명한 기술이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고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를 바랐던 디젤의 이상을 담아냈다. 자본주의의 엄밀함을 믿으면서도 노동 착취가 증가하던 시절 디젤은 인간적 노동 조건을 옹호하면서 기술자로서의 과학자 그리고 사회 이론가라는 두 역할이 모두 가능하다고 믿은 이상주의적 과학 사상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직전 국제 정세는 불안정했고 그가 선의로 발명한 최신 기술을 전쟁에 이용하고자 하는 이들로 인해 세계사는 격변을 맞는다. 특히 독일제국 황제 빌헬름 2세와 ‘석유왕’ 록펠러는 각자 다른 이유로 디젤을 주목하고 있었다. 결국 디젤의 기술은 그를 세계의 유력자들과 얽히게 했고 그의 갑작스러운 실종 사건은 각종 음모론을 낳았다.
책은 디젤의 죽음으로 시작해 그의 삶과 업적을 자세히 따라가고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국제 정세를 생생하고 흥미롭게 재연한다. 디젤이 막대한 재산을 남긴 채 왜 사라졌는지 궁금증을 계속해서 자아내게 해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스릴과 재미를 선사한다. 2만 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