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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 일을 알려고 하지 마라." 독자님은 어렸을 때 이런 말 들어 보셨나요? 어른들은 '집안의 중대사'를 논의할 땐 아이들을 쏙 빼놓곤 했습니다. 아이들만 빼놓은 건 아닐 거예요. 많은 가정에서 여성들은 발언권이 작았을 거고, 가장 나이가 많은 남자 어른이 의사를 결정했을 겁니다.

가족끼리 저지른 재산범죄에 대해 형을 면제하거나 친고죄*를 적용하는 '친족상도례'는 이런 집안의 질서가 공고하던 1953년 만들어졌습니다. 아이들뿐 아니라 '집안 바깥'의 법·제도도 집안 문제에는 개입할 수 없었어요. 재산범죄에 한해서는 가정 내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면죄부를 준 겁니다.

71년간 유지돼 온 친족상도례. 며칠 전 헌법재판소가 이 제도가 헌법에 어긋난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김나연 기자의 기사를 함께 읽고, 이야기 더 이어가겠습니다.

*친고죄: 범죄 피해자 등 기타 법률이 정한 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범죄. 다른 범죄는 피해자 등의 의사와 관계없이 검찰이 기소할 수 있다.

현관문을 넘은 법

2024. 6. 27. 김나연 기자

27일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친족상도례가 71년 만에 수술대 위에 올랐다. '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는 친족 사이에 발생한 재산 범죄에 주는 '특례'를 뜻한다. 가족 사안의 특수성을 인정해 사법기관이 개입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가족 간 유대관계가 약해지면서 의미가 퇴색됐다는 지적을 받았다.

형법 328조의 친족상도례는 "법은 문지방을 넘지 않는다"는 고대 로마법 선언에 연원을 둔 조항이다. 1953년 형법 제정 당시 가까운 친족 사이에는 재산을 공동으로 관리하는 경우가 많아 친족간의 재산 범죄에 대해선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가정 내 문제가 사법화하면 가정의 결속력을 흔들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최근 가족의 형태가 다양화하고 유대관계가 약화하면서 친족상도례는 '가부장제의 산물'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전통적인 가족 형태가 해체되고 재산 분쟁도 늘면서 시대착오적이라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럼에도 친족상도례는 민법상 가족이 아닌 관계까지 적용됐으며, 특례 대상 범죄도 늘었다. 2013년 대법원이 친족상도례를 형법상 재산 범죄를 포함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재산범죄에도 확대 적용해야 한다고 판결한 판례도 현재까지 유지돼왔다.

지난 6월27일 '친족상도례' 규정에 대한 위헌 여부 선고를 하기 위해 착석한 헌법재판관들. 정효진 기자

류기환 전 세한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친족상도례 규정의 개정 방향' 논문에서 "친족상도례 규정의 입법취지를 다른 시각에서 보면 친족 사이에서의 재산 범죄는 오히려 친족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파괴하고, 친족 사이에서 맺어진 생활공동체로서의 정서적 유대감을 해체한다는 점에서 일반인의 범죄에 비해 오히려 더 가중된 비난을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친족상도례가 구체적 사정과 사안의 경중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적용된다는 지적도 받았다. 지적장애가 있는 장애인, 치매 환자의 친족이 친족상도례를 악용해 재산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이 사실상 어렵다. 이날 헌재가 결론내린 헌법소원 청구인 중 한명은 지적장애 3급 장애인으로, 부친 사망 후 친척들이 상속재산 등을 빼앗았지만 검찰이 공소권이 없다고 결정을 내리면서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헌재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앞으로 친족 간 재산범죄에 대한 보호 장치가 강화할 전망이다. 배인철 변호사(삼광파트너스 법률사무소)는 "반의사불벌죄로 전환하다든가 액수에 제한을 두는 등 타협점을 찾아서 친족상도례의 취지는 살리면서도 제한적으로 적용하는 식으로 개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연예인 박수홍씨 사례처럼 친족상도례를 악용하는 '꼼수'에 대한 방어도 가능해질 수 있다. 박씨의 친형은 현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데, 비동거 관계로서 친족상도례상 형 면제 대상은 아니지만 친고죄 대상이 된다. 그런데 직계존속으로서 형 면제 대상인 박씨의 부친이 자신이 횡령했다고 주장해 처벌을 피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방송인 박수홍씨. 연합뉴스

국회는 여러 차례 친족상도례 개정을 시도했으나 빈번이 무산됐다. 14대 국회에 친족상도례의 형 면제 조항의 적용 여부를 판사가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이 제출됐지만 통과되지 않았다. 19대 국회에서는 피성년후견인에 대한 재산범죄를 친족상도례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개정안이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이후에도 친족상도례 적용 범죄 일부를 삭제하는 개정안부터 전면 폐지 개정안까지 나왔지만 실질적인 논의는 진행되지 않았다.

헌재가 가족 간 재산범죄에 대한 특례 필요성은 긍정하면서도 '일률적 형면제'를 지적한 만큼 국회는 친족상도례 조항을 친고죄나 반의사불벌죄 같은 소추조건 규정으로 바꾸는 안을 고려할 수 있다. 형을 아예 면제하기보다 피해자에게 6개월의 고소 기간을 주거나,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을 경우 형벌을 선고할 수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가 의사 표현을 하지 않아도 공소할 수 있어 가정 내 문제 해결에 국가가 먼저 개입한다는 점에서 친고죄와 다르다. 특정 액수 이상의 재산범죄일 경우 처벌하는 등 친족상도례가 적용되는 혐의를 제한하자는 의견도 있다.

양태정 변호사(법무법인 광야)는 "친고죄와 반의사불벌죄는 처벌 불원 의사만 있으면 처벌을 면하게 할 수도, 처벌할 수도 있기 때문에 피해자가 처벌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 홈페이지에서 기사를 읽으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친족상도례, 찬찬히 다시 볼까요?

적용 범죄: 강도죄와 손괴죄를 제외한 재산범죄. 절도, 사기·공갈, 횡령·배임, 장물 등.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까지 적용된 판례가 있음.

형 면제 대상: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과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

친고죄 대상: 친족(8촌 이내 혈족 혹은 4촌 이내 인척)

이번 헌법불합치 결정을 끌어낸 헌법소원 청구인 중 한 명의 사례를 통해 이해해 보겠습니다. 지적장애가 있는 A씨는 부친이 사망하면서 2억원 상당의 유산을 받았습니다. 그후 작은아버지 부부의 제안으로 함께 살게 됐고요. 작은아버지 부부는 돈 개념이 부족한 A씨의 상속 재산과 그간 모은 급여 2억3600만원 가량을 4년에 걸쳐 가로챘습니다. 이후 A씨는 작은아버지 가족을 준사기·횡령 혐의로 고소했지만 검찰은 A씨가 작은아버지 부부와 함께 살지 않던 시기에 빼앗긴 1400여만원에 대해서만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습니다. 나머지 금액은 친족상도례상 '동거친족'일 때 빼앗긴 것이라 형 면제 대상이라는 이유에서였어요.

올 초 친족상도례와 관련한 유명인의 사건이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방송인 박수홍씨의 출연료 등을 횡령한 혐의로 친형 박모씨가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어요. 그런데 두 사람의 아버지가 검찰 조사에서 "(횡령한) 재산을 내가 관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를 두고 아버지가 친족상도례를 악용하려 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습니다. 비동거 방계혈족*인 형이 횡령했다면 친고죄 대상으로 박수홍씨가 고소했을 때 처벌이 가능하지만, 아버지는 직계혈족으로 죄가 있어도 형 면제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방계혈족: 직계존속(부모, 조부모 등)이나 직계비속(자녀, 손주 등)가 아닌 형제자매 혹은 형제자매 직계비속 등의 친족

헌법재판소는 이번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며 "친족상도례의 규정 취지는 가정의 평온이 형사처벌로 인해 깨지는 것을 막으려는 데에 있다"고 말했어요. 한국 특성상 가족간 재산범죄에 어느 정도의 특례는 필요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다만 현재의 조항은 실질적 유대나 동거 여부, 범죄 피해 정도와 관계없이 일률적 적용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어요. 또 피해자가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피해 내용을 알릴 '재판절차진술권' 등을 일방적으로 희생시킨다는 점도 언급했습니다.

이번 결정이 시대 변화를 반영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핵가족화 등으로 가족·친족 간 유대가 약화하고 문제를 조정하고 해결하는 권위 있는 가장도 점점 사라지는" 현실에 따른 결정이라는 겁니다.

형 면제 혹은 친고죄 조항을 폐지한다는 것은 그 범죄는 개인적 치부 혹은 당사자 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범죄라고 국가가 인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과거 가족 간 재산 범죄는 집안 밖으로 새어 나가선 안 되는 허물이었을 겁니다. 가족을 고소하는 건 패륜 혹은 '제 얼굴에 침 뱉기'였을 거고요. 문제가 생기면 쉬쉬하며 가족 안에서 주먹구구로 해결하는 방법이 최선이라 여기던 시절이 있습니다.

마치 2013년 이전의 성범죄처럼요. 형법이 제정되던 1953년 '정조에 관한 죄'로 불린 성범죄는 '당한 사람 잘못'이었습니다. 알려지면 피해자만 손해인 사회 분위기 속에 친고죄는 실제로 피해자가 스스로를 보호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합의를 종용하는 과정에서 2차 피해가 심각했고 고소를 해도 수사기관이 수사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는 등 부작용이 많았습니다. 결국 성폭력은 2013년 완전히 친고죄에서 벗어났습니다.

친고죄 폐지 전후로 성폭력은 당한 사람 잘못이 아니라는 사회 공통의 인식이 만들어졌습니다. 가족이 잘못해도 피해자 잘못이 아니라는, 가족 간 문제를 공적 영역에서 해결해도 괜찮다는 사회적 합의가 생겨나면서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도 나왔을 겁니다. 몇몇 가족보다 가까운 친구가 더 친밀하게 느껴지는 사람으로서, 이번 뉴스가 흥미롭게 느껴졌어요. 님은 어떠셨나요?

친족상도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에요. 헌재 결정에 따라 국회는 가정의 평온을 지키면서도 범죄 피해자를 보호할 방안을 마련해야 하게 됐습니다. 기사에서도 여러 방안이 언급됐는데요, 국회는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궁금합니다. 문지방을 넘은 법이 가족 간 돈 문제에 어느 정도로 개입할 수 있게 될까요?

✦ 1.

가족 간 재산범죄에 사법기관이 개입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친족상도례’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 2.

연예인 박수홍씨 사례처럼 친족상도례를 악용하는 꼼수에 대한 방어가 가능해지는 등 친족 간 재산범죄에 대한 보호 장치가 강화할 전망이다.

✦ 3. 이번 결정은 핵가족화 같은 시대 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읽힌다. 가족 간 재산범죄가 개인적 치부 혹은 당사자 간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범죄라고 인정한 것이기도 하다.

이쪽과 저쪽의 자랑

트랜스젠더 아들 한결씨의 엄마 '나비'로 알려진 정은애씨. 여성 소방관 1기였던 그가 40년이 넘는 소방공무원 생활을 마쳤습니다. 성소수자와 함께한 퇴임 축하 파티에 가봤습니다.

기쁜 날 일어난 참변

서울시청 인근에서 차량 돌진사고로 9명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4명은 직장 동료였고 2명은 서울시 공무원이었습니다. 유족과 조문객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싸움을 계속하는 이유

포천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자다 목숨을 잃은 캄보디아 출신 속헹씨를 기억하시나요? 유족은 1년 반째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계속하고 있어요. 속헹씨만을 위한 건 아닙니다.

중국, 어디까지 갈까

창어 6호를 보내 사상 처음으로 달 뒷면에서 암석 샘플을 채취해 지구로 가져온 중국. 이번엔 '재사용 발사체'를 고도 10㎞대까지 발사했다가 착륙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9일은 쉽니다

오늘은 원래 오는 7월9일 받아보실 점선면Deep의 주제를 미리 알려드리면서 독자님 생각을 여쭤야 하는 날이에요. 다만, 점선면팀은 휴가 등 사정으로 7월8~12일 한 주 휴재를 예정하고 있습니다. 항상 뉴스레터 점선면을 아껴주시는 독자님들께 너른 양해 부탁드려요🙂

📬 왜 어떤 사람들은 자꾸만 '초고층' 혹은 '초대형'의 '우람'하고 '웅장'한 것에 집착하는 걸까요? 말 못할 열등감이라도 있는 듯합니다. 무슨 열등감인지는 당최 모르겠네요. (미아님)

📬 도시의 랜드마크라는 것은 여러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기를 대형 게양대에 거는 일이 어떤 상징성과 예술적 심미를 갖추는 일인지 고민 없이 도시의 수장이 치적 한줄용으로 남기고자 하는 무모함으로만 여겨질 뿐입니다. 민주화 시대를 역행하는 탁상행정에 반대하는 시민의 소리가 전달됐으면 좋겠습니다. (린다님)

📬 대구에서는 시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박정희 동상을 광장에 설치한다고 발표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수억 원을 들여 깃발과 동상을 세우는 이들의 깊은 내면에는 '좋은 국가'에 대한 아무런 정치적 목표도, 성과도 없는 스스로에 대한 불안이 자리하고 있는 건 아닌지 짐작해봅니다. 그 불안에 대한 대가를 왜 시민들이 치러야 하는지 모르겠지만요. (혜림님)

📬 태극기가 어느새 보수만의 상징이 되었다는 것에 심히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정치 성향을 떠나서 태극기 그 자체로는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에 태극기 게양대를 설치하는 것으로도 대한민국의 자긍심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랜드마크로 될 수도 있고요. 경복궁 앞 광화문 광장에 태극기라면 대한민국의 자긍심을 잘 나타낼 수 있지 않을까요? (익명의 독자님)

📝 지난 점선면Lite <💸 아주 비싼 태극기>를 읽고 독자님들이 남겨주신 의견을 간추려 소개합니다. 레터를 쓰면서 지난해 보내드렸던 <🔨 동상, 왜 세우고 허무는 걸까?> 레터가 생각났어요.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문제를 다루면서 기념비·기념탑·동상 같은 '상징물'을 세우려는 권력의 마음을 들여다본 레터입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시민의 공간으로 비워두겠다던 열린송현녹지광장에 이승만 기념관을 짓겠다고 한 일도 있었어요. 모두 하나의 맥락에서 보여지기에 광화문광장을 걱정하는 마음이 모이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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