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동안 시키는 일 다했던 PD…‘근로자’ 아니랍니다

2025-05-09

지상파 A 정보프로그램의 외주제작사에서 일하는 B씨는 11년차 PD다. 그의 8일 단위 업무를 보면 2일은 방송 촬영, 2일은 밤샘 편집, 나머지 4일은 마무리 작업으로 채워졌다. 감독이 시킨 예고영상, 자료영상, 코너영상 제작도 그의 업무다. 이렇게 그는 2013년부터 일해왔다. B씨는 “방송 특성상 비오는 날에도, 쉬는 날에도 촬영을 위해 대기했다”며 “사업주가 업무지시를 했고 경비를 부담했다”고 말했다.

B씨의 업무 양태는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로 볼 수 있는 징표가 많다.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는 계약 형식이 아니라 근로 제공 관계의 실질을 본다. 겉으로는 자영업자처럼 보여도 사용자 지휘 감독 등을 받는 종속적인 관계라면, 근로자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게 최근 법원의 판단 흐름이다. 하지만 그는 지방고용노동청에서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는 “성실하게 일한 노동의 가치를 모두 부정당한 것 같다, 납득할 수 없다”며 고용청에 재진정서를 제출했다.

방송사 PD, 헬스장 강사, 콜센터 용역업체 직원 등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한 노동자들이 지방고용노동청에 집단 진정에 나섰다. 이들은 자신이 근로자임에도 사업주가 개인사업자처럼 둔갑해 법적 권리와 보호 밖에 있다고 호소한다.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은 7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엔딩크레딧과 3차 집단 공동진정 기자회견을 열었다. 7개 직업군에 속한 노동자 50여명이 진정서를 작성했다. 자신이 근로자인지 확인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노동청에 근로자 지위 확인 진정을 제기하거나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을 하면 된다. 근로자성이 인정돼야 이들은 연차휴가, 퇴직금 등 근로기준법 상 보호를 받는다.

하지만 고용노동부가 근로자성 판단 업무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은성 노무사는 이날 기자회견장에서 “매년 무늬만 프리랜서로 오분류 된 노동자가 늘어나는데, 작년부터 진정을 제기해도 고용부는 위장 사건에 대한 통계도 수집하지 않고 있다”며 “식당 아르바이트 노동자,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이주·난민 노동자도 사업자처럼 위장되고 있다”고 말했다.

오분류는 근로자인데 특수형태고용종사자(특고), 개인사업자, 프리랜서로 잘못 분류된 상황을 뜻한다. 정흥준 서울과기대 경영학과 교수가 2018년 이를 처음으로 실증했다고 알려졌다. 당시 한국노동연구원 의뢰로 특고 3만명 표본 조사를 실시한 결과 특고 221만 명 중 74만5000명이 임금 근로자로 분류됐다. 보고서는 “74.5만명을 모두 임금근로자로 해석할 수 없지만, 임금근로자와 유사하게 노무를 제공하는 경우여서 오분류 가능성이 적지 않다”며 “많은 소송에서 특고가 임금근로자 지위를 회복하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매년 특고와 프리랜서가 늘면서 오분류된 근로자는 8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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