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 전 금융회사에서 명예퇴직한 A씨(53)는 최근 프리랜서로 여행사 가이드 일을 시작했다. 젊은 선배 가이드들과의 치열한 경쟁, 잦은 지역 출장으로 몸과 마음 모두 고되지만, 당장의 소득을 생각하면 포기할 수 없는 일자리다. A씨는 “대학생인 두 아이가 결혼할 때까지는 계속 일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오랫동안 일했던 직장에서 일찍 퇴직하는 중년이 늘어나면서 이들의 ‘빈곤한 노년’이 길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직장이 있어도 팍팍한 생계는 소득이 뚝 끊기며 급격하게 어려워지고, 자녀와 부모 부양에 대한 부담은 계속되면서 결국 중년 상당수가 경제적 위험에 경제적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중이다.

13일 통계청에 따르면 자신의 주된 일자리(가장 오래 근무한 곳)에서 정년퇴직한 사람은 지난해 48만2000명, 권고사직·명예퇴직·정리해고 등으로 조기퇴직한 사람은 60만5000명으로 많았다.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05년 이후 정년퇴직자가 2배(23만7000명→48만2000명)로 늘어날 때, 조기퇴직자는 2.5배(24만4000명→60만5000명)로 더 빠르게 증가했다.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평균 나이는 49.4세로 50세에 미치지 못했다. 20년 전(2005년 50.0세)보다 0.6세 앞당겨진 상황이다.

조기퇴직자가 늘어나는 것은 40·50대 인구 자체가 증가한 영향도 있지만, 인력을 줄이려는 직장이 많아진 영향이 더 크다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윤정혜 한국고용정보원 고용동향분석팀장은 “산업의 변화 속도가 빠르고, 기술 발전과 자동화·디지털 전환 영향을 받아 인력 축소나 재배치가 빈번해졌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조기퇴직은 고령층이 노동시장에서 빠르게 이탈하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직장을 일찍 떠날수록 공적 연금 등을 받을 때까지 소득이 급격히 줄어드는 ‘소득 크레바스(공백)’가 깊어질 위험이 크다. 직장에서 이탈하는 연령층이 노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의 돌봄을 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인 1960년대생 ‘마처 세대’라는 점도 우려를 키운다. 이들 세대가 정작 자신의 노후를 준비하지 못하면서 향후 노년 빈곤 문제가 더 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40.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다.
서울연구원은 최근 ‘서울시민 생애과정 변화와 빈곤 위험’ 보고서를 통해 “전통적으로 빈곤은 실업·질병·가족 해체와 경제적 계층이 주요 요인이었으나, 최근엔 고령기 조기 은퇴와 청년(자녀)의 성인 이행 지연 등과 맞물려 증폭된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특히 “불안정 일자리에서 조기 은퇴한 사람의 빈곤은 수도권과 비수도권 모두에서 심각한 증가 추세”라며 “비정규직 고령자의 빈곤 위험을 줄이기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노년 빈곤 문제를 완화하려면 고령층에 다가가는 근로자가 일정 기간 더 안정적인 일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발간한 ‘초고령사회와 고령층 계속근로 방안’ 보고서에서 “65세까지 계속근로가 가능할 경우 기존 소득 공백 기간(60~64세) 동안 정부가 제공하는 노인 일자리에 종사하는 경우보다 월 소득이 179만원 증가하고, 65세 이후 연금 수령액도 월 14만원 증가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정년 연장보다는 퇴직 후 재고용이 현실적이라는 게 한은 보고서의 주장이다.
정부는 계속고용 논의와 별개로 조기퇴직한 중장년의 재취업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노년 빈곤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올해부터 조기퇴직한 50대 이상이 전기·소방·산업안전·사회복지·직업상담 등 분야 기업에서 실무를 경험하고 취업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중장년 경력지원제’ 등을 운영 중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50대 조기퇴직자가 빠르게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재취업 일자리를 3년간 15만 개 발굴하는 등 고용정책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