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해 마무리에 바쁜 1991년 12월 19일.
이날 오전 10시. 정부는 청와대 영빈관에서 노태우 대통령 주재로 과학기술진흥회의를 열고 그동안 관계부처가 공동으로 마련한 '과학기술혁신 종합대책'을 확정했다.
진흥회의에는 최각규 경제부총리를 비롯해 김진현 과학기술처 장관 등 국무위원과 정당, 국회, 과학기술계, 산업계, 학계, 언론계 인사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진흥회의는 노태우 대통령이 영빈관에 입장하자 곧바로 시작했다. 국민의례, 김진현 과학기술처 장관의 '과학기술정책 기본방향과 추진시책'과 최각규 경제부총리의 '과학기술투자 촉진을 위한 지원대책' 등 '과학기술혁신 종합대책'을 보고하고 대통령 말씀, 과학기술 개발유공자 포상 순으로 1시간 20분간 진행했다.
노 대통령은 정부가 마련한 종합대책을 보고받고 아래와 같이 지시했다.
“국가 경쟁력은 산업 경쟁력에 달려 있으며 그 경쟁력의 핵심 요소는 바로 과학기술입니다. 과학기술계와 산업계, 정부가 힘을 하나로 모아 과학기술 진흥에 더욱 힘써 주기를 바랍니다.”
노 대통령은 이어 “과학기술 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미 확보한 인력과 재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면서 “정부는 한국통신공사(현 KT) 등 정부 투자기관 주식매각시 그 대금 일부를 과학기술 개발에 투자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노 대통령은 또 “과학기술처뿐만 아니라 모든 부처가 기술개발 촉진에 총력을 기울이고 정부 출연연구기관의 효율성과 생산성이 더 높아지도록 기능을 활성화해야 한다”면서 “과학기술 개발이 수출로 이어지도록 중소기업 기술개발 촉진을 위한 지원도 확대하라”고 당부했다.
김진현 과학기술처 장관은 이날 '과학기술정책의 기본방향과 추진시책'을 보고했다.
“탈냉전과 함께 급속히 전개되고 있는 경제와 기술력 제일주의의 새로운 국제질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한정된 과학기술 재원과 인력을 가능성이 큰 분야에 집중 투입한 후 그 효과를 산업과 사회의 지속적 발전에 파급시켜 나가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김 장관은 “이를 위해 제조업 경쟁력 강화 대책에서 채택한 919개 생산기술개발계획 등을 차질 없이 추진하고 영화 수준의 고선명 TV는 1996년까지, 그리고 공해와 소음이 적은 전기자동차를 1996년까지 개발하는 등 14개 핵심 선도기술을 개발해 2000년까지 관련 분야에서 세계 일류 기술보유국으로 발돋움하겠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또 “오는 2000년까지 우리가 7대 정보통신 신진국으로 발전하기 위해 광대역 통신망 등 차세대 종합정보통신망을 우리 기술로 확보하고 기초과학 발전에 초점을 맞춰 2000년경에는 연간 3만편 이상의 국제적인 논문이 발표되도록 지원하겠다”면서 “이 같은 기술개발 계획의 성공적인 추진을 위해 2001년까지 과학기술 투자를 국민총생산(GNP)의 5% 수준으로 확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 장관은 “우수 과학기술 인력 양성과 확보 방안으로 연구능력이 탁월한 대학을 '대학원 중심 대학'으로 개편하고 우수연구 집단을 기초과학연구 거점으로 육성하며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학사과정을 1991년 510명에서 1996년까지 1000명으로 증원하고 광주과학기술원(현 GIST) 조기 설립을 추진하겠다”면서 “초·중등 학교의 경우 과학 과목 시간을 크게 늘리고 중등학교 과학교사와 실험보조원 중원, 국민학교 과학 전담교사 배치 방안 등을 강구하며 사내기술대학에 대한 조세와 금융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농업·환경·보건의료 등 공공복지기술을 발전시켜 국민생활 편익을 증대시키겠다”고 보고했다.
최각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은 이어 '과학기술투자 촉진을 위한 지원대책'을 보고했다.
“과학기술 투자를 2001년까지 GNP의 5%까지 확대하기 위해 1992년부터 과학기술진흥 기금을 설치, 1996년까지 1조원 규모가 되도록 하겠으며 정부기관의 기술개발투자 확대를 위해 매출액의 일정률을 기술개발에 투자하도록 의무화하고 국방비 중 연구개발투자를 올해 3% 수준에서 2000년대 초에는 7% 수준으로 확대하겠습니다”
최 부총리는 또 “민간부문의 기술개발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한국기술개발주식회사를 자본금 5000억원 규모의 한국종합기술금융주식회사로 확대·개편해 금융지원을 늘리는 동시에 기술개발 투자세액 공제율을 상향조정하고 세액공제 대상 범위를 모든 연구요원으로 확대하는 등 조세지원도 강화하겠다”고 보고했다.
최 부총리는 “산업계의 인력확보를 지원하기 위해 병역특례 연구요원을 1992년에는 올해보다 46% 증가된 1570명으로 확대하고 초·중·고교 과학교육을 강화하며 산학협동 체제 확립을 위해 엔지니어링과 정보산업체가 입주하는 10만∼20만평 규모의 지식산업연구단지 건설을 적극 추진토록 했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보고가 끝난 뒤 과학기술 개발에 공이 큰 산업계와 연구계 6명에 대해 훈장과 포장을 수여했다.
동탑산업훈장을 받은 현대자동차 연구위원(전 델파이코리아 사장)은 멀티밸브식 엔진과 변속기 등 자동차산업 핵심기술 국산화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로인해 외국기술에 의존하던 엔진기술 자립 기반을 마련했고 자동차 산업의 해외 경쟁력을 높였다.
철탑산업훈장 수상자인 김정호 한남화학 이사는 첨단신소재 개발을 통해 수입 원자재의 국산화에 크게 기여했다.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은 박태석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백내장 등 수정체 이상(異常)으로 시력을 상실한 안과 환자 치료용 인공수정체를 개발해 수정체 이상 환자들의 치료 대중화의 길을 열었다.
석탑산업 훈장 수상자인 박주탁 수산중공업 사장은 아스팔트 살포기 등 14개 기종을 연구개발해 1991년 수출액이 500만달러에 달했다.
산업포장을 받은 김승택 유니온시스템 부장은 세계 네 번째로 지문감식업무의 자동화에 성공했다.
산업포장을 받은 문영호 미래산업기술연구소 개발실장은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반도체 검사기를 자체 개발했다.
과학기술처는 이에 앞서 '과학기술혁신 종합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1991년 8월 31일 서정욱 과학기술처 차관(전 과학기술부 장관)을 단장으로 한 '종합대책기획단'을 구성했다.
기획단은 안충영 중앙대 교수와 최명근 서울시립대 교수, 장재식 조세문제연구소 소장, 이진주 KAIST 교수, 차동세 럭키금성경제연구소장, 최영환 과학기술정책연구소장, 맹일영 삼성고문, 강인구 금성연구소장, 임동승 삼성경제연구소장 등으로 구성했다.
기획단은 △21세기 한국의 위상 △과학기술을 둘러싼 세계 동향 △국내 과학기술 현황과 문제점 △과학기술을 선도할 핵심 과학기술 과제 선정 △과학기술 혁신을 위한 전략과 핵심 수단 강화 등을 중점 논의했다.
기획단은 인공지능(AI) 컴퓨터와 전기자동차, 고선명 TV 등 선도기술과 기초과학 연구 등을 핵심 과학기술로 선정했다.
기획단은 특히 과학기술 혁신을 위한 전략적 수단으로 과학기술 투자 확대와 과학기술 인력 양성, 과학기술 정보유통 체계 확립, 연구개발 주체 강화, 국제과학기술 협력 내실화, 신기술 기업화 촉진과 신제품 시장 진출 지원, 원자력 안전성 확보,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이해 사업 추진 등에 역점을 두고 대책을 마련했다.
기획단은 이렇게 수립한 종합대책은 사전에 관계부처 협의를 거쳤다.
정부는 이런 과정을 거쳐 확정한 과학기술종합대책은 1992년부터 본격 추진키로 했다. 과학기술 선진국 도약을 위한 힘찬 시동이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평소 “미래는 과학기술에 달려 있다”고 늘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1991년 10월 25일 저녁 청와대 춘추관에서 '젊은 과학기술인을 위한 음악회'를 개최했다. 음악회에는 연구계와 학계 30~40대 과학기술인 106명을 초청해 재소(在蘇. 현 러시아) 동포인 엘리 리 숙명여대 객원 교수와 한국 오페라계의 전설로 불린 박세원 서울대 음대 교수의 노래를 들었다. 노 대통령은 이들과 다과를 함께하며 연구원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김진현 과학기술처 장관은 “음악회 아이디어는 내가 낸 것이 아니었다. 대통령의 이런 행사는 힘없는 부처로 통했던 과학기술처 장관 위상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현덕 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