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교류위원회에 바란다

2025-10-22

한국문화의 매력이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영미권의 소설에는 굳이 한국에 관한 소재가 아닌 일상적인 설정에도 한국인 이웃이나 친구가 등장한다. 런던 한복판에는 한국식 주점이 서울에서 스타벅스가 보이는 것만큼 포진해 있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는 깨알같이 한국 문화를 보여준다. 무엇이든 한국의 것이라고 내어놓았을 때 주어지는 관심의 기본값이 크게 상승하였다. 국가브랜드를 관리하는 별도의 정부 위원회도 이루지 못했던 일이다. 그 시작은 케이팝과 드라마를 필두로 한 대중문화였다.

대중문화 토대는 창의성과 다양성

정책이 직접 성과 만들기는 어려워

실적주의에 매몰되는 일은 피해야

단기 성과보다 인프라 강화 집중을

때를 맞춘 듯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로서 대중문화교류위원회가 출범하였다. 위원회는 대중문화 정책의 방향을 수립하고 한류의 글로벌 확산을 도모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일방적 진흥에서 벗어나 상호 교류에 주목했다는 점은 정책사적으로 의미가 있다. 문화는 이제 국적이나 기원이 중요하지 않다. 무언가 끊임없이 뒤섞이고 공유된다는 그 자체가 글로벌 문화를 규정한다. 이름만큼 실제 정책에서도 전환점을 이루기 위해서는 문화정책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명확히 짚고 시작할 필요가 있다.

정책이 할 수 있는 일은 토양을 다지는 데까지일 뿐, 실제 씨앗을 뿌리고 거두는 것까지 정책으로 몰고 가기는 어렵다. 1990년대부터 시작했던 소위 한류 정책의 직접 지원은 케이팝보다는 오히려 애니메이션이나 캐릭터 부분이 더 비중이 높았고, 한때는 대중문화보다 전통문화의 지원으로 정책의 방향이 바뀐 적도 있었다.

문화산업의 본질은 성과 예측의 불확실성이다. 음악이든 영상이든 대중성을 예측하는 일은 어렵다. 철저히 데이터 주도 전략을 쓰고 있는 넷플릭스도 무엇이 인기를 끌 것인지 온전히 예측하지 못한다. 할리우드의 메이저 스튜디오들도 10개를 만들면 그중 한 두 작품이 거두는 수익이 전체를 책임진다. 대중문화의 인기는 개별 작품의 내재적 요소로 결정되기보다 그 작품이 초기에 어떤 사람들의 눈을 끌었는지, 얼마나 대화를 유발했는지 등 정보의 폭포가 어떻게 물길을 트는가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좋은 작품이 인기를 끄는 것인지, 인기를 끈 작품이 좋은 작품이 되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우며 사람들은 대개 자기 주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따라간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류의 성과는 디지털 미디어의 확산이 만들어낸 수용 현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따라서 어떤 유형의 작품을 지원하고 진흥해야 하는지 정책적인 디자인을 하기는 매우 어렵다. 문화정책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당장의 성과 내기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사회 전반에 다양성과 창의성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를 지향해야 한다.

우선, 정책은 단순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예측 가능하고 지속되는 판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문화 영역은 객관적인 성과 측정이나 평가가 어렵기 때문에 정책의 방향이나 우선순위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욕망에 좌지우지되기 쉽다. 굳이 블랙리스트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정권이 교체될 때 핵심 인맥이 함께 재편되어온 관행도 문제다. 계파 중심 관행은 문화생태계에 특히 치명적이다.

둘째, 창작자 생태계에서 다양성의 유지는 중요하다. 트렌드를 쫓아가는 이벤트성 정책으로 한 방향으로 창작을 몰아가는 것은 장기적인 성과 측면에서 득보다 실이 크다. 지금까지 성공적인 대중문화 작품은 전반적으로 친숙함 가운데 뭔가 새로움이 살짝 가미된 작품이라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예컨대 넷플릭스 사극 좀비물 ‘킹덤’의 경우, 서구인들에게 익숙한 좀비 이야기지만 좀비들의 움직임에 한국무용 고유의 춤선이 들어가 독특한 시각적인 미감을 준 것이 매력이었다고 한다. 연장선상에서 당장 시장성이 없더라도 비주류, 다양한 서브컬처가 창작 생태계에서 살아남아 유지되도록 돌보는 일이 대통령직속위원회에 더 걸맞은 일이다. 증명할 수 있는 실적이 적더라도 기성세대와는 전혀 다른 감각과 시선을 가진 젊은 창작인들에게 자원이 우선 배분되도록 해야 한다.

셋째, 민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인프라를 강화하는 과업에 집중하는 위원회였으면 한다. 제대로 갖추어진 공연장 시설을 만들거나 인력양성 기관을 지원하는 것, 혹은 기술 추세에 맞추어 저작권 체계를 정비하는 것이 우선 과제일 것이다. 정책의 성과지표가 과연 장기적인 성과를 측정하게 되어 있는지를 정비하는 것도 정책의 유효성을 높이는 기초작업이 될 것이다. 정권 임기나 예산연도에 따르기보다 정책의 효과를 누적적으로 평가하는 지표가 있다면 심지어 정책 담당자들이 자리를 옮기더라도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투자와 지원은 엄연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지원이 투자와 유사한 지표로 평가받는다면 오히려 지원의 기능을 제대로 못 하고 실적주의에 매몰될 가능성이 크다.

김은미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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