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기억 속 가장 힘들었던 여름은 2010년이다. 병사로 한창 군 복무할 때다. 수치만 보면 그리 더운 여름은 아니었다. 사상 최악 더위였다는 1994년이나 2018년에 비하면 폭염 일수도, 최고 기온도 많거나 높지 않았다. 문제는 병사들의 존재 여건이었다. 당시 병사들 숙소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한 방 수용 인원은 최대 12명, 더위를 달래줄 기계는 선풍기 한 대가 전부였다. 그마저도 이따금 고장이 나곤 했다. 제대 후 생활관에 에어컨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슬며시 질투가 난 이유다.
그 시절 기억 탓일까. 윤석열 전 대통령 측의 징징거림이 조금은 이해가 됐다. 기후변화로 날이 갈수록 더워져 올해도 ‘역대급 폭염’이라는데 한 덩치 하는 60대 중반이 견디기는 쉽지 않겠다 싶었다. 물론 독방이라니 수용자 여럿이 머무는 혼거실보다야 낫겠고, 신평 변호사 주장처럼 “생지옥” 수준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에어컨이 있는 상황만은 못 할 것으로 짐작됐다.
다만 그 주장의 새삼스러움이 황당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된 ‘윤 전 대통령 독방에 에어컨 설치하라’는 민원만 수십건이라는데, 이 주장을 한 사람들이 과연 이전에도 재소자들의 딱한 처지에 주목했을지 의문이 들었다. 일부 반대 주장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온라인에서 인기를 끈 어느 게시물은 국방의 의무를 다하러 온 병사도 에어컨 없이 살았는데 재소자가 무슨 벼슬이냐고 질문하는 내용이었다. 쪽방촌 등 취약계층의 생활공간이나 개선하라는 주장도 있었다. 우선순위를 따질 때라면 몰라도, 원칙은 모두 에어컨 설치 대상이라는 게 맞지 않을까.
페이스북에서 벌어진 ‘윤석열 사형’ 논쟁도 흥미로웠다. 지난달 초 한 인터넷 매체에 실린 칼럼이 발단으로, 저자는 내란죄를 언급하며 “비슷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윤 전 대통령 사형은 “찬성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썼다. 누군가는 내란은 국가 그 자체에 대한 공격이므로 국가 구성원에게나 적용할 사형 반대 논리를 갖다 대기는 어렵지 않느냐고 물었다. 신기하게도 다들 평소엔 사형 반대론자였노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하지만 예외적 사형 찬성이란 말은 논리적 모순 아닌가. 사형 반대의 본질은 어떤 경우이건 누구도 사형돼선 안 된다는 예외 없음에 있다. 윤 전 대통령을 사형하고 싶다면 사형제에 찬성하면 된다.
왜 이런 사리에 맞지 않는 주장들이 제기되는가. ‘윤석열 예외주의’ 탓이다. 누군가는 그가 너무 소중해서, 누군가는 그가 너무 싫어서 판단에 예외를 둔다. 특혜 논란이 인 지하주차장 출입도 마찬가지다. 6월 조은석 내란 특별검사팀은 윤 전 대통령 측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면 될 일이지 굳이 ‘내란 수괴에게 보호해야 할 사생활과 명예가 있는지 의문’이라는 식으로 조질 이유는 없었다. 반대로 지난 4월 첫 형사재판 당시 재판부처럼 지하 출입을 허용해 논란을 자초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오히려 어떤 경우엔 예외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태도가 비상계엄이란 이상 행동을 낳았다고 본다. 그 같은 예외주의자에게 가장 단호한 대응은 한국 법체계의 예외 없는 작동 아닐까. 윤석열 예외주의는 그만 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