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인 수형자가 생활하는 교도소에서 장애인을 위한 대변기나 손잡이 등 필수 편의시설을 마련하지 않은 것은 차별이라는 판결이 항소심 법원에서도 유지됐다. 법무부는 1심 패소 후에도 “편의시설 설치가 지연된 게 위법행위는 아니다”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장애인에게 차별적인 환경을 제때 바로잡지 않은 건 위법’이라고 재차 확인했다.
15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광주고법 민사3부(재판장 최창훈)는 장애인 수형자 A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약 2억원대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단한 원심이 옳다고 지난 13일 판결했다.
A씨는 교통사고로 척수가 손상돼 팔다리가 마비된 중증 장애인이다. 특정경제가중처벌법 위반으로 징역 11년6개월을 선고받고 2015년부터 전남 순천교도소에 수감됐다. 교도소에는 장애인을 위한 화장실이 따로 없었다. A씨는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 일반 화장실을 이용하면서 화장실에 손잡이 등을 설치해달라고 교도소에 요구했다.
순천교도소는 3년여만에 화장실에 손잡이를 설치했다. 그런데 이마저도 배관용 쇠파이프에 페인트를 칠한 것이라 A씨의 팔에는 쇳독이 올랐다. 이에 A씨는 교도소에서 차별을 당해 손해가 발생했다면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이밖에 교도소 공보의가 A씨를 진료하면서 수차례 “다리병신”이라고 하는 등 혐오 발언을 한 점에 대해서도 배상을 요구했다.
1심 법원은 지난해 7월 A씨가 교도소 내에서 차별을 당했다고 인정했다. 법이 정한 필수적인 편의시설을 제공하지 않았다면 이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른 ‘정당한 편의 제공을 거부한 차별행위’에 해당한다는 판단이다. 공보의의 차별 발언 등도 위법으로 인정해 위자료 300만원 지급을 명령했다.
1심 판결은 전국의 장애인 수용 전담 교도소가 1년 이내에 화장실 편의시설을 설치하라는 적극적 조치까지 명령한 첫 사례이기도 했다. 이후 법무부는 전국 장애인 수용 전담 교도소 9곳의 화장실에 필수 편의시설을 마련했다. A씨의 소송 전에도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던 곳은 전국에 안양교도소 한 곳뿐이었다.
다만 A씨는 법원에서 인정된 위자료가 너무 적고, 교도소 내에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한쪽 눈이 실명된 점 등도 정부 책임이 인정돼야 한다며 항소했다. 법무부는 편의시설 미설치가 차별이자 위법 행위라고 본 법원 판단에 불복해 항소했다.
2심 재판에서 정부는 “교도관들은 A씨의 원활한 수용생활을 위해 다른 수용자에 비해 더 많은 노력과 관심을 기울였는데, 이제와 새삼 자신의 직무집행이 위법해 손해배상책임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전국 교정시설에 필수 편의시설 설치가 완료돼 소송을 각하하거나 위자료를 줄여야 한다고 했지만 2심 법원은 1심 판결을 수긍했다.
A씨를 대리한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장애인에게 차별적인 교도소 환경이 위법이라는 점이 법원에서도 다시금 확인됐다”며 “전국 교도소 9곳 중 8곳이 1심 패소 판결 후에야 부랴부랴 편의시설을 마련한 점도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