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의 토지거래허가제 해제 번복으로 부동산 시장 혼란은 가중되고 민심은 싸늘하게 식었다. 연초부터 규제 철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오 시장에 대한 신뢰에도 일정 부분 훼손된 분위기다. 특히 오 시장의 2·12 잠실·삼성·대치·청담동 토허제 지정 해제 발표의 주된 명분이었던 ‘재산권 행사’도 서울 강남지역 보수층 표심 얻기라는 정치적 행보 아니었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잠·삼·대·청에 대한 토허제 해제가 그나마 안정세를 보이던 강남 집값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는 우려는 오 시장이 올 1월16일 ‘규제 풀어 민생살리기 대토론회’에서 “해제를 적극 검토 중”이라고 밝혔을 때부터 나왔다. 이후 서울시 내부에서도 토허제 해제시 집값 급등과 같은 부작용 우려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부동산 안정세를 보여주는 지표와 시장경제에 대한 오 시장 소신 등이 반영돼 해제 쪽으로 급속히 무게추가 쏠렸다는 전언이다. 또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을 앞두고 가시화하는 조기대선 경쟁에서 중도 보수층에 어필할 수 있는 ‘한 방’에 대한 오 시장 욕심도 일정 부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부동산 시장과 민심은 언제나 예상치와 엇나간다. 잠·삼·대·청 토허제 해제 이후 한 달 새 해당지역 아파트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송파구 잠실동 잠실엘스 전용면적 84㎡는 지난달 30억원에 거래되며 최고가를 경신했다. 안정세를 찾아가던 부동산 시장이 관리 범위에서 벗어나자 결국 오 시장이 백기투항했다.
오 시장은 잠·삼·대·청뿐 아니라 강남3구·용산구 토허제 확대 지정을 발표하며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주택시장은 자유시장 원리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토허제를 반시장적 규제로 규정하며 소신을 굽히지 않는 모습이었다.

정책은 언제든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단체장의 소신과 정책이 불일치할 때 시민은 불안하다. 당초 3∼6개월 정도 지켜보겠다던 서울시는 한 달여 만에 정책을 뒤집었다. 한번 흔들린 정책 일관성은 되돌리기 어렵다. 서울시정 전반에 대한 신뢰도 역시 시험받게 됐다.
토허제가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한 만병통치약이 될 수도 없다. 재산권 침해 논란을 언제까지나 외면할 수는 없고, 계속해서 특정 지역만 규제로 묶어둔다는 지역 차별 주장도 커질 것이다. 성급한 해제와 번복은 시장에 규제를 더하는 꼴로 끝났다. 이제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상황이 됐으니 토허제 해제를 위해 누가 언제 나설 수 있을까.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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