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돼야 할 관계

2025-08-03

강희창, 신학박사·서초교회 목사

그때가 1970년대 중반이었다. 당시 필자는 대학에 다니다가 휴학 후 군에 입대하게 됐다. 유신이다 뭐다 해서 사회가 어지러웠고, 집안 사정도 갑자기 어려워지면서 그런 결정을 했던 것이다.

집안이 어려울 때 큰아들이 가족에게 희망을 줬어야 했는데, 나는 반대편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 내가 무척 싫었지만, 나는 부정적이고 반항적인 쪽으로만 가고 있었다. “이러다가 젊어서 폐인이 되는 것은 아닌가?”하며 염려될 때도 있었다. 그런 시간이 조금 길어지며, 군에 다녀와 새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휴학한 뒤 군 입대를 하게 된 것이다.

한동안 방황하던 나의 모습이 가족들을 무척 실망시켰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시기가 10개월쯤 지난 후에 입대하고서 한동안 집에 편지를 하지 않았다. 가족들을 그만큼 실망시키고나서 군에 온 내가 무슨 소식을 전할 것인가? 내가 떠난 것만 가지고도 가족들이 좀 편안해 하지 않을까 생각됐다.

그저 나는 꽤 오랫동안 폐인처럼 살았던 나를 보면서 가족들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머니도 이제는 별 희망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동생들도 더이상 형을 자랑스러워하지 않을 것이라 그렇게 생각하면서, 편지 쓸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훈련소를 마칠 때쯤 편지를 쓰게 됐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정도는 알려야 할 거 같아서였다. 그 편지에 이런 글을 썼던 기억이 난다.

“나의 소식을 반갑게 기다릴 사람이 없을 줄 알면서도 혹시 연락을 해야 할 일이 생길지 몰라서 이 편지를 씁니다….” 나의 편지에는 그런 구절이 들어있었다.

편지를 부치고나서 얼마 후에 갑자기 많은 편지들이 오기 시작했다. 어머니를 비롯해 가족들 모두가 정성껏 길게 쓴 편지를 보내왔다. 편지를 천천히 읽어보니까 가족들이 나를 포기한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여러 번 자세히 읽어도 그렇게 보였다. 그렇게 며칠 지나던 중 중학교 여학생들에게도 많은 위문 편지를 받게 됐다. 중학교 교사인 누나가 자신의 반 학생들에게 “이 군인에게 편지해서 답장을 받으면 어떤 혜택을 주겠다.”라는 약속을 했었다는 사실은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그럭저럭 첫 휴가를 나와서 집에 갔을 때, 가족들은 내가 처음 보낸 편지를 펼쳐놓고서 한동안 웃으면서 이런 말을 했다. “가족은 그런 게 아니지 않은가?”가족은 어떻게든 내가 시련을 극복하고 일어서서 훌륭하게 될 것을 바라고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아주 낮아져 있을 때, 사랑하는 어머니와 누나 동생들은 나를 다시 일으키려고, 나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함께 살아갈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되는 시기이다.

우리는 너무 많이 깨져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울 만큼 심각하게 깨진 관계들이 주변에 가득하다.

그래도 어떻게든 붙들어서 회복해야 할 관계들에 대해, 다시 한번 관심을 가져보자는 제안을 드리는 바이다.

※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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