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농정, 양곡법·할당관세로 ‘논란’…직불제·청년농 정책 ‘반쪽 성과’

2025-05-01

현 정부가 3년 임기를 끝으로 조기에 퇴장한다. 전문가들은 당초 정부의 구상을 펼치기엔 3년이라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나마 3년도 ‘양곡관리법’ 개정 논란 등으로 대부분 허비했고, 무리한 할당관세 정책으로 농민 민심을 잃으면서 농정 추진 동력을 받지 못했다는 평이 나왔다.

예기치 않게 짧은 임기…평가 ‘극과 극’=3년 농정에 대해선 평가가 극단으로 갈렸다. 중요한 의제를 제시했다고 총평한 전문가도 있었다. 김태연 단국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농정에서 눈에 띄는 큰 실책은 없었다”면서 “농업의 산업적 성장을 위한 정책을 추진한 건 다른 정권에선 못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농업을 산업으로 성장시키는 정책, (미래농업을 위한) 스마트팜과 청년농민 지원 등은 차기 정부에서 계승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구체적 계획과 이행 의지 부족으로 대부분 구상이 공약(空約)에 그쳤다는 쓴소리도 많았다. 임정빈 서울대학교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바람직한 내용과 방향이 대통령 농정 공약에 담겼었지만, 미래 농업·농촌에 대한 대통령의 철학 부재와 공약 이행을 위한 구체적 추진 전략 및 재원 확보 미흡으로 어느 하나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춘수 국립순천대학교 농업경제학과 교수는 “‘농업의 미래 성장산업화’를 내세웠지만 이를 뒷받침할 연구·개발(R&D) 예산은 축소했고, 청년농 3만명 육성이라는 자극적인 공약을 제시하면서도 관련 예산은 증액하지 않아 후계농 육성자금 사태를 촉발했다”고 비판했다. 구자인 마을연구소 일소공도협동조합 소장은 “새로운 정책은 시늉만 하고 기존 정책의 질적 발전도 못했다”면서 “재정당국 압박에 사회적농업과 농업환경보전프로그램 등 좋은 정책은 축소했다”고 일갈했다.

짧은 임기 탓에 제대로 된 평가를 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상당수였다. 서진교 GS&J 인스티튜트 원장은 “어느 정책 하나 확실한 결과가 없어 아쉽다”면서 “농업수입안정보험 본사업화를 포함한 ‘한국형 소득·경영 안전망 구축’은 일부 평가할 수 있지만 역시 성과가 증명되지 않았다”고 했다.

‘양곡관리법’ 사태…농정, 정쟁의 길로=2023년 4월 윤석열 당시 대통령은 남는 쌀 시장격리 의무화를 골자로 한 더불어민주당의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첫번째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전문가들은 이 장면이 농정을 가시밭길에 올려놓은 결정적 순간이었다고 지목했다. 서 원장은 “어렵더라도 정치권을 더 설득해 거부권 행사만큼은 막았어야 했다”면서 “거부권 행사가 야당 협력을 얻지 못한 출발점이었고 이때부터 농정 추진이 어려워졌다”고 진단했다.

임 교수는 “쟁점을 심도 있게 분석하고 합의 가능한 대안을 마련해 정치권을 설득하는 게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나, 오히려 정부는 자신들 입장에 우호적인 이들 목소리만 강조하면서 한쪽으로 치우쳤다”고 밝혔다.

특히 큰 논란을 초래하고도 대안 마련에 미흡한 점이 비판을 샀다. 강용 학사농장 대표(전 한국농식품법인연합회장)는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쌀값 20만원(80㎏ 기준) 보장을 약속했지만 그해뿐이었다”고 했다. 구 소장은 “‘양곡관리법’ 개정을 둘러싼 논쟁으로 쌀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부각시켰다는 게 정부의 성과라면 성과”라고 자조했다.

추락한 농민 신뢰…계속되는 할당관세=농민의 신뢰를 잃은 점도 문제로 꼽혔다. 여기엔 농산물 수입 중심의 물가 대책이 영향을 끼쳤다. 장민기 농정연구센터 소장은 “농산물 가격 상승 때 긴급 수입 등 일시적인 대책만 추진했다”면서 “결국 수급 불안은 해결하지 못했고 오히려 농업 생산 (기반 붕괴) 우려만 낳았다”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전례 없는 규모의 할당관세로 국내 생산기반을 무너뜨리고 농산물 가격의 천정효과(가격이 일정 수준으로 높아지지 않는 것)를 유발, 농가가 생산 감소로 인한 소득 손실을 가격 상승으로 보전할 기회를 박탈했다”고 비판했다.

이 과정에서 농민이 농정당국에 기대한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김 교수는 “농산물은 여건에 따라 가격이 언제든 변동할 수 있고 대부분은 대체재가 존재해 일시적인 문제는 시일이 지나면서 해결되는데, (농림축산식품부가) 이를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고 했다. 강 대표는 “농식품부가 기획재정부 예속 부서 같은 느낌을 주면서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오미란 젠더&공동체 대표는 “농산물 가격이 물가상승 주범으로 지목되자 정부가 납품단가 지원이나 소비자 할인 지원 등 대책을 추진했지만 유통업체의 배만 불렸을 뿐 정작 농민은 혜택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농지·농촌 정책 두고는 설왕설래=농정의 한 방향성을 이룬 농지 규제 완화 기조에 대해선 평가가 갈렸다. 이 교수는 “농촌재생을 명목으로 농업진흥지역 규제를 풀어 농업 근간을 위협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이준원 전 농식품부 차관은 규제 완화가 부족하다고 봤다. 그는 “2022년 8월 개정 ‘농지법’이 시행되면서 농지거래가 50∼60%(2021년 대비 2024년) 줄고 실거래가가 30% 하락하며 농민 불만이 커지는 동시에 농촌소멸이 가속화했다”면서 “정부의 가장 큰 실책은 농지 규제 완화 시기를 놓친 것”이라고 했다.

농촌 정책의 경우 ‘농촌공간 재구조화 및 재생지원에 관한 법률’ ‘농촌 지역 공동체 기반 경제·사회 서비스 활성화에 관한 법률’ 제정이 가시적인 성과로 꼽힌다. 각각 계획 입지 아래 농촌공간을 재구조화할 근거를 마련하고, 필수 농촌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체를 지원하는 법이다. 오 대표는 “농촌공간에 대한 체계적 정비 시스템을 제도화하고 농촌 정주 여건을 개선하려는 시도는 부분적이나마 진전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다만 구 소장은 “법이 실제 작동하려면 타 부처와 협력이 필수적이지만 논의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면서 “농식품부가 협력을 이끌 의지와 역량이 없다면 농촌 정책을 타 부처로 이관하는 게 오히려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직불제 확대, 청년농 육성은 계속 추진돼야”=정부가 추진한 공익직불제 확대와 청년농 육성은 ‘절반의 성과’로 평가되며 차기 정부에서 계승될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 전 차관은 “농촌공간 재구조화의 본격적인 추진과 함께 직불제 예산 확대, 청년농 지원 강화는 다음 정부에서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했다.

임 교수는 “기대보다 (성과가) 미흡한 측면이 있지만 미래세대 육성을 위한 지원 강화, 직불제 예산 확대, 농식품바우처 전국 사업화, 그린바이오·푸드테크 등 농업 전후방 신산업 육성 토대 마련, 농촌공간 재구조화는 계승할 만한 농정과제”라고 말했다.

다만 직불제의 경우 도입 취지에 맞게 선택직불제 확충 등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강 대표는 “농업인 퇴직연금제를 직불제로 포섭하는 등 우리 농업의 방향성과 부합하는 형태의 직불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장 소장은 “단가 인상보다 지역·농민 참여가 늘 수 있도록 선택직불제를 개편·확대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오 대표는 “식량안보와 자급률 제고를 위한 전략작물직불제는 다음 정부에서 계속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석훈 기자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