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경쟁 속 생물학적 보수화…2030 남성이 ‘태극기’ 들게 된 이유

2025-04-16

신자유주의는 ‘적자생존’ 강조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정당화

청년들은 스스로 피해자 인식

약자들 생존 위협에 보수 지지

부자 감세·복지 축소에 투표

편파적 자유 용인, 비극적 귀결

공화주의는 ‘집단선택’을 적용

정의와 예속 없는 자유를 추구

왜곡된 ‘공정’ 바로잡는 시스템

헌법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

탄핵으로 ‘민주’는 지켜냈고

이제 ‘공화’의 의미 생각할 때

한 집단 안에서 볼 때는 도덕적인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해 경쟁에서 유리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집단 간의 경쟁을 생각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다시 말해 공동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은 집단은 다른 집단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분명히 높을 것이다. 이런 말을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찰스 다윈이다. <종의 기원>을 발표한 지 12년 만인 1871년에 출간한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에서 다윈은 이타적인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집단 수준에서의 자연선택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반적으로는 당연한 이야기로 들리지만, 생물학적으로는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자연선택의 대상이 오직 개체인지 아니면 집단도 포함될 수 있는지는 치열한 논쟁거리였다. 다윈과 마찬가지로 초기 진화론자들은 집단의 이익을 위해 스스로 번식을 자제하는 조절 기능을 가진 개체군들만이 살아남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적극적으로 이러한 주장을 펼침으로써 집단선택설의 대표 주자처럼 인식된 사람이 조류학자였던 베로 윈에드워즈다.

이에 맞서 혈연선택이 정설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였다. 1964년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서 존 메이너드 스미스는 집단선택은 매우 특정한 조건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예외적인 현상일 것이라고 주장하며, 그에 반하는 일반적인 진화 메커니즘으로서 혈연선택이라는 용어를 제시했다. 같은 해 포괄 적합도 이론을 발표한 윌리엄 해밀턴은 이타적인 행위는 유전적 근연도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것을 밝혔다. 1966년 조지 윌리엄스는 저서 <적응과 자연선택>에서 자연선택은 유전자를 대상으로 해 오직 개체의 적응만을 만들어낸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집단선택설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리고 1975년 에드워드 윌슨의 저서 <사회생물학>과 1976년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통해 신다윈주의는 대중에게까지 급속히 전파되기 시작했다.

집단선택설에서 가장 흥미롭게 사용된 예시는 ‘레밍’이라고도 불리는 나그네쥐들의 행동이었다. 엄청난 번식력을 가진 이 쥐들은 몇 년에 한 번씩 수천마리 규모로 바닷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음을 맞이하는데, 집단선택설을 지지하던 학자들은 개체군의 밀도가 너무 높아 먹이가 부족해지면 늙은 쥐들이 후손들을 위해 스스로 떨어지는 것이라고 추론했다. 그러나 조사 결과 단순히 쥐들이 먹이를 찾아 우르르 몰려가다가 벼랑 끝에서 멈추지 못하고 뒤따라오는 쥐들에게 밀려 떨어지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의 만화가 게리 라슨이 풍자한 그림을 보면, 함께 죽으러 가는 쥐들 사이에 구명 튜브를 하고 있는 쥐가 한 마리 있다. 결국 몇 세대만 지나면 이 나그네쥐 집단은 구명 튜브 모습을 한 이기적 유전자가 지배하고 있을 것이고, 집단자살이라는 현상도 진화의 역사 속으로 금세 사라질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전체 자원의 양과 집단 내 개체의 수를 인지해 자기 조절을 하는 유전자라는 것은 아예 없었거나 나타났어도 한두 세대 만에 소멸했을 것이므로, 애초에 생명의 역사에서 집단자살과 같은 희생적인 현상 따위는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반면 혈연선택은 ‘사회성 동물’이라고 불리는 벌이나 개미의 헌신적인 행동도 설명할 수 있다. 일개미는 자식을 낳지 않으며 여왕개미와 다른 일개미들을 돌보고 먹을 것을 나누며 심지어 목숨을 바치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것은 개미의 성 결정 시스템으로 너무나 잘 설명되는데, 한 여왕개미가 낳는 모든 암컷 자매들은 서로 유전자를 공유하는 정도가 무려 75%에 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미는 50%의 유전자를 공유하는 자식을 낳아 기르는 것보다, 어머니인 여왕개미를 도와 75%의 근친도를 가진 자매를 계속 낳도록 돕는 것이다.

동물이 아닌 식물조차도 자신과 유전적으로 가까운 친족에게 유사한 행동을 한다. 수전 더들리 교수의 선구적인 연구 이후로 많은 학자들이 이 놀라운 현상을 반복적으로 관찰함으로써, 한때 이단시되었던 이 이론이 이제는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예를 들어, 주변에 유전적으로 관련 없는 개체들이 있을 때 물과 토양분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뿌리를 뻗던 식물들이, 주변에 친족이 있을 때는 이러한 행동을 억제한다는 것이 관찰되었다. 햇빛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도 마찬가지다. 주변에 친족이 있으면 식물들은 잎이나 줄기의 성장 방향을 조정함으로써 서로를 가리지 않으려고 한다. 또한, 꽃을 더 크게 많이 피우면 나비와 같은 꽃가루 매개자들을 전체적으로 더 많이 끌어들여 주위의 개체들과 함께 이득을 얻을 수 있는데, 최근 연구에 의하면 이런 현상은 주변 식물들과 근친도가 높을 경우에만 나타난다.

공교롭게도 신다윈주의와 같은 시기에 지배적 이념으로 태어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다. 신자유주의를 대표하는 두 명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밀턴 프리드먼 등을 통해서다. 1974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하이에크의 사상은 1980년대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프리드먼은 1962년 <자본주의와 자유>를, 1980년에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자신의 인생책이라고 했던 <선택할 자유>를 통해 정부는 개입을 줄이고 개인과 시장의 자유를 확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기적으로만이 아니라 이념으로서도 신다윈주의와 신자유주의는 그 궤를 같이한다. 신다윈주의는 생물의 세계에 집단을 위한 희생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오직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려는 이기적인 개체들만이 자연의 선택을 받아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한다. 신자유주의는 국가의 규제 - 집단을 위한 조절 - 없이 개별 경제주체 - 개체 - 들이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매진할 때, 보이지 않는 손 - 자연 - 이 주도하는 자유시장의 원리 - 적자생존의 섭리 - 에 따라 경제가 효율적으로 굴러갈 것이라고 말한다.

흔히 신자유주의는 정치적으로는 보수 진영의 지지를 받는데, 이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보수적 성향은 자연선택에 순응해 생존과 번식에 몰두하게끔 하는 유전자들의 발현이며, 이는 또한 자연이라는 원초적인 체제에 대한 정당화를 유도하기 때문이다(지난 연재 ‘모태보수, 모태진보’ 시리즈 참고). 이것은 오늘날 보수화된 젊은 남성들이 가진 공통의 신조가 ‘능력 기반의 자유 경쟁’인 것을 매우 잘 설명한다.

젊은 남성의 보수화는 요즈음의 한국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파이낸셜타임스, 가디언, 이코노미스트 등은 198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젊은 세대 남녀 간의 정치 양극화가 점차 심화되어왔다는 분석을 최근 잇따라 내놓았다. 이들이 주목하는 점은 젊은 남성들이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 상황이다. 사실 젊은 남성들 스스로도 자신들을 사회적 약자 내지는 피해자로 여긴다. 이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보수적 성향을 띠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사회 경제적으로 취약한 이들은 늘 생존에 위협을 느끼는 불안한 환경 속에서 교감신경과 편도체가 활성화되어 생물학적으로 보수가 된다. 팬데믹이나 전쟁의 위협을 더 크게 느끼며, 이주노동자들과 취업을 두고 벌이는 경쟁에도 더욱 민감하다. 따라서 보수적인 정책을 지지하게 되고, 혐오에 기반한 정치적 선동에도 취약해진다.

특히 주목할 점은 젊은 남성들이 ‘자연적으로’ 능력 경쟁에 민감하다는 것이다. 동물의 세계에서 수컷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함으로써 번식을 놓고 경쟁하는 존재로 진화해왔다. 수사자의 갈기, 길고 화려한 수컷 공작의 꼬리, 수사슴의 크고 아름다운 뿔, 포식자를 만나도 도망가지 않고 제자리에서 팔짝팔짝 뛰는 톰슨가젤의 대담한 행동 등은 유전학적 우수성을 과시하는 ‘값비싼 신호’다(지난 연재 ‘유한계급이 된 호모 루덴스’ 참고). 남자의 능력이 번식 성공률에 얼마나 중요한가는, 형편이 좋을 때는 아들을 선호하고 형편이 좋지 못할 때는 딸을 선호하게 되는 부모들의 진화적 본능에서도 알 수 있다(지난 연재 ‘유전자와 교육열’ 참고). 부모들이 그럴진대, 남성들 자신에게는 더더욱 능력과 번식은 인생의 성공을 판가름하는 요소로 다가온다. ‘매노스피어’ 즉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섹스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남자들을 ‘인셀’ 즉 비자발적 독신주의자라 부른다. 번식의 실패자들이라고 비하하거나 자조하는 말이다.

결국 보수화, 극우화된 젊은 남성들이 증가한 배경에는, 1980년대 이후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 치열해진 경쟁 사회가 있다. 바로 여기에 비극적인 아이러니가 있다. 마치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 감세와 복지 축소를 추진하는 보수 정당에 투표하는 것처럼, 마땅한 재산도 훌륭한 유전자도 물려받지 못해 불리한 처지에 있는 이들이 승산도 없는 능력 경쟁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보수는 본능적으로 적자생존을 당연시하고, ‘자연적인’ (혹은 구조적인) 불공정은 그들이 지고의 가치로 여기는 능력주의의 정당한 결과로 본다. 매노스피어에서는 20%의 잘난 남성이 80%의 여성을 독점할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진화생물학의 알파, 베타 메일 개념과 경제학자 파레토의 80/20 법칙을 엮은 것이다. 이들에게 자연법칙과 경제 원리가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하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자신이 낙오된 80%에 해당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무능력하게 타고난 자신이 겪을 수밖에 없는 자연의 섭리다. 그 좌절감은 분노로 표출되는데, 그것은 종종 - 자신들을 선택하지 않는 - 여성들을 ‘인위적으로’ 유리하게끔 만드는 페미니즘적인 역차별 제도를 향한다.

이렇게 신자유주의의 폐해로 생겨난 젊은 보수 남성들은 역설적으로 신자유주의 원리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러나 왕과 귀족에 저항해 시민들의 정치적 권리를 찾고자 했던 고전적 자유주의와 달리, 신자유주의가 추구하는 자유는 경제적 불공정을 정당화하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이것은 편파적인 자유다.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려는 고용주의 자유는 근로자의 권리를 제약하게 되며, 젊은 세대의 성장할 권리는 이미 차지한 자리를 지키려는 기성세대의 이해관계에 의해 억압될 수 있다. 모리치오 비롤리 프린스턴대 교수가 <공화주의>에서 지적했듯이, 자유에 대한 권리라는 것은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인간 사회의 법과 관습을 통해서만 주어지는 역사적인 것이다. 자유주의적 자유와 달리, 공화주의적 자유란 그 누구도 특권을 가진 자에게 예속되지 않도록 하는 법 체제하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신다윈주의가 밝혀낸 자연의 적자생존 이치를 그대로 인간 사회에 적용하고자 한다. 문명을 버리고 자연으로 회귀하는 야만적인 세상이다. 이러한 세상에서 강한 자의 자유는 어떠한 간섭과 방해도 받지 않는 특권이 된다. 사회의 약자들은 생존 경쟁의 불안감 속에 손쉽게 생물학적으로 보수화되고, 본인들이 잃어버린 자유와 권리를 엉뚱한 곳에 화풀이하며 보수 정치가들의 먹잇감이 된다.

말년의 윌슨이 <지구의 정복자>에서 내비쳤던 바람과는 달리 집단선택은 자연적으로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공화주의는 바로 이 집단선택의 원리를 인간 사회에서 실현하고자 한다. 공화주의의 가장 중요한 공공선은 바로 정의다. 이 정의는 신자유주의가 주장하는 공정과 전혀 다른 것이다. 오직 정의로운 공화국 안에서만 우리는 타인에게 예속되지 않고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번 윤석열 탄핵심판 결정문의 결론 부분 작성에 특별히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것은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선언으로 시작한다. 이번에도 우리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이제 ‘민주’ 다음에 따라오는 ‘공화국’의 의미를 생각할 때다.

■최정균 교수

카이스트 교수로 2009년부터 재직하며 인간유전체학을 연구하고 있다. 연구목표는 암을 비롯한 여러 질병의 유전학적 원인 규명과 진단 및 치료기술 개발이며, 진화론을 접목하고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데 관심이 많다. 아산의학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선정 과학기술인상을 포함해 여러 학회의 학술상을 수상하였고, 과학기술한림원 선도과학자, 포스코사이언스펠로십에 선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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