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스베이더, 그리고 스승

2025-01-15

작년 한해 많은 교수님들이 정년퇴임을 하셨다. 교수님들이 퇴임하시면서 남긴 자취를 살펴보면 떠나신데 대한 아쉬움과 함께, 앞으로 우리는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인터넷을 통해 터득한 지식이 많아지면서 전통적인 수업의 중요성이 약해지고 가르친 스승보다 오히려 내가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은 최근 들어서 생긴 것은 아니다. 스승에게 배운 후 그 스승을 이기려고 하는 이야기는 책이나 영화에서 자주 나타나는 주제이다.

중국 하나라의 제후국에서 군주로 있던 예(羿)는 궁술에 최고였다. 방몽이라는 제자는 스승인 예로부터 활쏘기 기술을 다 익히고 나서 이 스승만 없어지면 자기가 최고가 된다는 생각에 결국 예를 죽였다. 특이하게도 맹자는 스승을 죽인 방몽뿐 아니라 죽임을 당한 군주 예(羿)에게도 죄가 있다고 하였다(맹자 이루하 24).

맹자는 바로 그다음 문장에서 또 다른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정나라의 자탁유사라는 사람이 적장(유공지사)에게 잡혀 죽게 되었으나, 그 적장 본인의 스승이 바로 자탁유사로부터 배운 제자였다는 이유로 자탁유사를 죽이지 않고 수레에 빈 화살을 쏘는 것으로 대신한 후 놓아주었다고 한다. 적장을 가르친 스승의 스승이라는 사실 때문에 죽음을 면한 자탁유사와, 직접 가르친 수제자로부터 죽임을 당한 예(羿)를 병렬해 보임으로써 예(羿)에게 책임이 있는 이유를 간접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만일 배움이 특정 기술이나 단편적인 지식에 국한되어 있다면, 스승이 제자에게 더 가르칠 기술이 없거나 스승보다 제자가 더 많은 지식을 가지는 순간 사제관계는 성립하지 않게 된다.

흥미롭게도 영화 스타워즈도 이러한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다. 영화의 중심 스토리는 검은색 마스크와 망토를 입고 악의 세계를 대변하는 다스베이더(Darth Bader)와 은하 세계를 구하기 위하여 그를 이겨야만 하는 아들 루크 스카이워크의 대결이다. 다스베이더가 젊은 시절에 배운 스승은 제다이 마스터인 요다, 오비완 케노비, 콰이콘 진과 같은 훌륭한 사람들이었다. 나중에 다스베이더가 어둠의 유혹에 빠져서 이 스승들을 죽이거나 배반하고 마침내 은하제국 군주가 되었다. 동일한 제다이 마스터 스승들로부터 배운 루크 스카이워크는 아버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성장하여 제다이로서 반란군에 서서 아버지 다스베이더와 대결한다.

다스베이더 입장에서는 아무리 배웠다 하더라도 그의 스승 오비완 캐노비나 콰이곤 진을 이기기만 한다면 사제관계가 더 이상 필요 없는 것이다. 배움의 과정이 이와 같다면 스승의 입장에서는 제자가 스승을 뛰어넘지 못하는 정도만 가르쳐야 현명하다. B급 스승은 C급 제자들만 거느리고 싶어 한다. 이것은 은하제국의 황제 다스 시디어스가 군주 다스베이더를 철저히 이용하고 상하관계로 설정하는 것에서 잘 드러난다. 하지만 어쩌랴, 어둠의 은하제국 1대 황제였던 다스 플레거스, 2대 황제 다스 시디어스 모두 자신의 제자(후계자)로부터 죽임을 당한다. 철저한 힘과 기술의 논리 위에서 스승이 제자를 의심하여 견제하고, 제자가 스승의 능력을 자신을 비교하면 결국 제자가 스승을 배신하거나 죽이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에 반해 스타워즈에서 그려내는 반란군 연합 내 제다이의 사제관계는 은하제국과 완전히 다르다. 어떻게 보면 이상적인 사제관계의 전형이다. 스승(제다이 마스터)은 제자(제다이)가 무한하게 성장하도록 도와주고, 기술을 가르치기보다는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도록 영감을 불어넣는다. 마침내 제자가 스승의 능력을 뛰어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제다이의 특징은 제자가 누군가의 스승이 되며 그 사제관계는 세대를 넘어 계속되는 관계라는 것이다.

배우는 과정에서 스승을 초월하지 못하였다는 생각을 하면 부족한 부분을 좀더 보완하는 노력을 하게 되어 지속적인 자기발전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자신이 스승을 초월했다는 교만에 이르면 그에 따른 성장도 멈추게 되는 것이다. 맹자가 제자 방몽으로부터 죽임을 당한 예(羿)를 일러 “그도 죄가 적다고 할 뿐이지 어떻게 죄가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한 것은 제자에게 눈앞에 보이는 기술을 가르쳤을 뿐, 과연 진정한 인격체로서의 성장을 가르친 것이 있었느냐는 냉정한 평가이다.

지금과 같이 서열과 순위에 목매는 사회에서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지 막연할 때가 많다. 필요한 임상 지식이나 세부적인 기술은 유튜브나 온라인 강의로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디지털 데이터가 가득한 시대에 대학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고, 스승은 무엇을 가르쳐야 하며, 제자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이제 우리도 정년을 마친 교수님들의 뒤를 따라가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분들이 내가 먹고 살기에 도움 되는 기술이나 지식을 직접 가르쳐 주셨다는 이유 때문에 감사하다고 느낀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분들의 삶을 보고 나도 따라 하고 싶지만 과연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에 영원한 스승으로 삼게 되는 것이다. 배움의 길은 끝이 없다는 사실과 그 길을 가는 과정이 스스로가 성장하는 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이 진정한 스승이며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가 없다. 이 때문에 기술의 전수가 최종 목적이 되는 세상에서는 진실한 사제관계가 성립되기 어렵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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