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10분 전 대사 외워 골든글로브 수상…맥컬리 컬킨 동생 키에란의 '리얼 페인'

2025-01-14

영화 ‘리얼 페인’(15일 개봉)에서 조울증을 앓는 백수 벤지(키에란 컬킨)는 친형제처럼 자란 사촌 데이비드(제시 아이젠버그)와 돌아가신 할머니의 폴란드 고향집을 방문하기로 한다. 둘은 “1000번의 기적으로”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할머니를 기리기 위해 역사 투어에 참가한다.

폐 끼치기 싫어하는 데이비드와 달리, 벤지는 누구든 스스럼없이 친구가 되지만 순식간에 무례하게 돌변한다. 그런데 그의 무례엔 늘 이유가 있다. 가령, 이런 경우다. 선조가 겪은 공포를 되새기는 투어를 하면서 어떻게 1등석 기차, 최고급 음식 같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냐고 울부짖는 거다. “투어가 원래 그런 것 아닌가요?” 당황한 가이드는 반문하지만, 정곡을 찔린 모두는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영화 ‘리얼 페인’으로 지난해 선댄스영화제부터 주목받은 배우 키에란 컬킨(43)이 지난 5일(현지 시간) 미국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에 올랐다. 에드워드 노튼, 덴젤 워싱턴 등 쟁쟁한 경쟁자를 제치고서다.

'석세션' 재벌집 막내아들서 조울증 백수로

폴란드계 유대인 배우 제시 아이젠버그(‘소셜 네트워크’ ‘나우 유 씨 미’)가 20여년전 폴란드의 숙모 생가를 방문한 경험을 녹여낸 자전적 영화다. 벤지는 실제 완벽주의자인 그와 정반대이자, 평소 동경하던 유형의 캐릭터. 직접 맡으려던 이 역할을 넘겨준 건 컬킨이 살아 숨 쉬는 벤지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여유롭고 개방적이고 현재에 충실한 사람. 우울증을 겪어도 자유로운 방식으로 대처하는 사람”(아이젠버그) 말이다.

앞서 컬킨이 첫 골든글로브(TV 시리즈), 에미상을 차지한 HBO 드라마 ‘석세션’(2018~2023)의 재벌가 막내아들 로만도 시한폭탄 같은 면모가 벤지와 빼닮은 캐릭터였다. ‘리얼 페인’ 제작에 참여한 배우 엠마 스톤마저 “컬킨이 없으면 이 영화는 무너진다”고 장담했을 정도다. 스톤과 컬리는 결혼 전 한때 사귀었던 연인 사이다.

맥컬리와 '나홀로 집에' 데뷔, 콩가루 가족

‘리얼 페인’은 “역사적 트라우마보다 작을 수 있지만, 개개인에겐 진정한 고통”(아이젠버그)을 탐구하는 영화. 컬킨은 이를 누구보다 이해할 적임자였다.

7살 때 형 맥컬리와 함께 영화 ‘나 홀로 집에’(1990, 사촌동생 풀러 역)로 데뷔한 그는 가난한 7남매 속에 자랐다.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난 누나,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 아버지 쪽 이복누나까지, 그가 12살 때 가족을 떠난 아버지 대신 생활력 강한 어머니 슬하에서 온가족이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스타덤에 오른 형 맥컬리와 달리 영화‧드라마‧연극무대의 조‧단역을 차근차근 거쳐온 컬킨은 유년시절 아버지에게 학대 당한 형이 비참하게 추락한 시절에도 헌신적으로 형을 돌봤다. 어릴 적 아픔이 오히려 그를 더 단단한 ‘패밀리맨’으로 만들었다. 그 자신도 2013년 결혼한 아내, 어린 두 딸과 8일 이상 떨어지지 않는 게 철칙일 정도로 소문난 ‘딸바보 아빠’로 살아가고 있다.

촬영 10분 전 대사 왼다…감독 당황한 즉흥연기

이런 실제 면모가 영화에도 묻어난다. 벤지는 외향적으로 보이지만 늘 가족이 먼저다. 누구보다 가까웠던 할머니를 여읜 뒤엔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다. 원치 않게 나치에 살해당한 유대인들과, 살아남은 할머니의 흔적 앞에 그는 진짜 고통에 대해 생각하고 담담히 나아간다.

‘리얼 페인’에서 컬킨의 호연이 놀라운 건 매 장면이 거의 즉흥 연기처럼 이뤄졌다는 것이다. 사전에 대본을 숙지한 뒤, 대사는 그 장면 촬영 10분 전, 심지어 몇 초 전에 외는 게 버릇이다. 정해진 동선에 맞춰 서는 것조차 힘들어한다. 최근 영국 매체 가디언과 인터뷰한 내용이다.

처음엔 불안해했던 아이젠버그도, ‘석세션’ 제작진으로부터 컬킨의 빼어난 즉흥 연기에 대해 듣고 오히려 이를 활용했다. 다른 투어 참여자 마샤에게 다가가는 장면, 2차 세계대전 동상 앞에서 역사를 놀이하듯 재현하는 장면 등이다. 컬킨은 “배우들이 촬영장에서 감정에 몰입하려 노력하는 게 바보 같다”고 말했다. 실제 우리 삶에선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벤지로서 즐겁게 지내려고 했다”고 촬영 당시를 돌아봤다.

3월 오스카상도 유력 후보

원해서 연기를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어느 순간 연기가 유일한 생존 기술이 됐다는 그다. 카메라 앞에서 매 순간에 충실히 살아있는 것, ‘리얼 페인’을 진짜 삶의 한순간으로 만들어낸 키에란의 연기 철칙이었다. 골든글로브 수상 소감에서 그는 “모두 아이젠버그의 놀라운 각본 덕분”이라며 이 모든 공을 감독에게 돌렸다.

그 놀라운 각본을 완성하기까지 아이젠버그는 자그마치 15년을 바쳤다. 홀로코스터에서 생존해 101세까지 천수를 누린 숙모가 살던 폴란드 작은 마을 크라니스토의 생가에서 실제 영화를 촬영했다. 폴란드 루블린 도심에서 5분 거리의 마이다네크 유대인 강제 수용소가 영화에 나온 것도 ‘리얼 페인’이 처음이다.

‘리얼 페인’은 오는 3월 10일(현지 시간)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유력한 수상 후보로 꼽힌다.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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