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존명사는 말 그대로 다른 말 아래에 기대어 쓰인다. ‘좋은 것, 감사할 따름, 웃을 뿐’에서 ‘것, 따름, 뿐’처럼 앞말에 기댄다. 훈민정음 언해본 서문에 “제 뜻을 시러(능히) 펴지 못할 놈이 하니라(많다)”의 ‘놈’도 앞말 ‘못할’에 의지한다. ‘놈’이라고 해서 지금처럼 대상을 낮추는 말은 아니었고, 단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훈민정음 한문본에는 ‘못할 놈’이 ‘불가자(不可者)’로 돼 있다. 여기서 ‘자’는 ‘못할 놈’의 ‘놈’과 뜻은 같지만 쓰임새가 다르다. ‘과학자, 기술자, 노동자’의 ‘자’처럼 쓰였다. 의존명사가 아니라 낱말 끝에 붙어서 새로운 말을 만드는 접미사로 쓰인 거다. 이때 ‘자’는 ‘못할 놈’의 ‘놈’처럼 ‘사람’을 뜻한다. 이전에도, 지금도 낱말 끝에 붙는 ‘자’는 ‘사람’이다.
그런데 변화가 생겼다. “낯선 자”에서처럼 ‘자’가 의존명사로도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어의 영향으로 보인다. 의존명사로 쓰이는 ‘자’는 의미도 달라져 ‘사람’과 ‘놈’ 사이쯤에 있다. 맥락에 따라 더 낮추고 덜 낮추는 차이는 있다. “미친 자, 저 자를 잡아라”에서 ‘자’는 홀대의 정도가 커 보인다. “미친 사람, 저 사람을 잡아라”와 확연한 차이가 난다. ‘부역자’를 더 얕잡고 싶으면 ‘부역하는 자’라고 하면 된다. ‘동조자’는 ‘동조하는 자’라고 하면 된다.
법조문이나 공문서에는 의존명사로 쓰이는 ‘자’가 더 흔하다. 당연하다는 듯이 ‘정치 활동을 하는 자’라고 쓴다. ‘정치 활동을 하는 사람’이 받아들이기 편하다. 특별하지 않다면 ‘노력하는 자’보다는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게 더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