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프런트 오피스에 꽃 배달이 연이어 온다. 밸런타인스 데이다. 꽃 선물을 받아 든 젊은 여사원들의 환한 미소가 어여쁘다. 내 젊은 시절을 돌아보며 밸런타인 꽃 선물을 저들 곁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하다.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보는 것 같다. 그림 속 주제는 스스로 모르기 마련이지만,바라보는 이의 눈엔 행복이 봄 햇살처럼 눈부시게 비친다.
오후 일찍 퇴근한 막내가 찾아와 나를 밸런타인 이벤트로 이끈다. 분위기 있는 식당을 예약해 격조 있는 음식을 즐기고, 이어서 영화관으로 안내되었다.
나랑 극장에 가면 막내는 으레 칵테일바로 먼저 데려가 내가 좋아하는 와인을 시켜준다. 마주 앉아 와인을 마시며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이 시간이 다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최고의 순간이다.
엄마가 얼마나 행복해하는지 아들은 잘 모른다. 언젠가 자연스레 체득하게 될 때가 있으리라. 우리 어머니 노년의 행복이 딸과 함께하는 시간이었음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남기신 글을 읽고서야 알았던 것처럼.
자식들은 엄마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한다고 무심히 여기지만, 엄마야말로 얼마나 많은 말을 마음속으로 접어 두는지. 엄마의 말은 빙산의 일각처럼 조금 드러낼 뿐, 수면 밑에 잠긴 거대한 밑동이 되어 잠잠히 받친다.
막내와 마주할 때면 주로 내가 이야기한다. 아들은 간간이 미소나 짧은 응답을 할 뿐 귀 기울여 듣는다. 이야기 도중 서울 오빠에게서 메일이 왔다. 읽다가 눈물을 글썽이니 놀란 아들이 왜 그러냐고 묻는다. 외삼촌의 안부 글인데 괜히 눈물이 난다며, 읽어 줄까 물었다. 슬퍼서 울게 되는 건 싫다며 고개를 젓는다. 막내의 여린 면모와 마주쳐 엄마의 둔감이 저며 들고 애틋함이 훑는다.
아들이 화제를 재미있게 돌린다. “엄마, 나한테 애인이 있으면 엄만 지금 ‘나 홀로 집에’겠지?” 나는 웃음으로 맞장구친다. 밸런타인을 멋지게 보내게 해주어 고맙다고, 행복하다고 대답한다. 마음속에선 아들이 애인과 밸런타인데이를 보낸다면 더 기쁘리라고 되뇌면서.
영화 상영 대기 시간의 바에서는 아들과 함께하는 정겨운 분위기를 그대로 재워 두고픈 마음이 담겨 와인을 아주 천천히 기울여 음미한다. 다 비우지 못한 잔 위로 아껴 둔 정겨움을 부어 담은 듯, 반쯤 남은 잔을 소중히 들고 영화관 안으로 들어갔다.
‘La La Land’. 엄마가 좋아할 만한 영화를 애써 찾은 듯하다. 감상적인 영화를 보며 혹시 아들이 지루해 하지는 않을까 살짝 훔쳐본다. 아들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좀처럼 눈물짓는 모습을 볼 수 없었던 우리 막내. 정작 마음이 참 여리구나. 아들이 일어서며 말했다. “영화 참 잘만들었지? 전혀 슬픈 영화가 아닌 것 같은데 굉장히 슬프네. 집에 돌아가면 게임 한 판을 해서 슬픈 기운 날려 버려야겠다. 하하.”
주차장에 이르러 아들 부축을 마다하며 방금 영화에서 받은 감흥이 뒤섞여 허밍을 부르고 빙빙 춤을 춘다. 이런 엄마의 제멋 대로를 말리고 싶어하는 눈치라도 보일까 하여 취기에도 언뜻 아들을 살핀다. 내가 넘어질까 봐 주춤거리며 지켜보는 아들 눈길에서 남편의 따뜻한 눈빛이 아른거린다.
엄마의 춤이 저절로 우러나는 행복의 몸짓임을 아는 웃음 같다. 그 웃음에서, 엄마들 못지않게 자식들도 마음의 수면 밑으로 침묵의 말들을 잠가 두고 있음을 읽는다. 우리 모자의 밸런타인 맞이가 오늘 하루 함께한 시간 속에 아름답게 새겨져 갔다.
“고맙다. 우리 아들, 덕분에 엄마 참 행복하네.”
이영신 /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