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형 참사는 복잡하다. 소위 ‘나쁜 놈’ 한 명이 수 백 개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책임이란 단어는 단순해지기 쉽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구조하지 못한 국가 책임을 둘러싼 재판이 그랬다. 세월호 침몰 당시 가장 먼저 사고 지점에 도착했던 목표해경 123정의 정장 김경일 경위만이 금고 3년을 선고받았다. 2023년 법원은 해경 지휘부들이 침몰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을 인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판단하며 무죄를 확정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들은 구조 책임(업무상 과실치사죄)과 관련해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러한 재판 결과들이 “결국 높은 데로 올라갈수록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를 준다”고 말했다. 그는 “대형 참사는 순식간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참사의 국면마다 역할을 했던 국가 공무원들의 책임을 적절히 나눠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2016년 ‘세월호 참사와 피해자의 인권’ 논문을 낸 뒤 국가폭력에 관한 연구를 이어 왔다. 최근엔 세월호·이태원 참사 시민단체들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재난참사에서의 국가책임과 피해자권리’를 발표했다. 16일 이 교수를 서울 광진구 건국대 연구실에서 만나 재난 참사에서의 국가 책임에 대해 물었다.

이 교수는 재난 참사와 관련된 재판에서 법원이 지나치게 참사 발생 당시의 구체적인 행위만을 판단하고 있다고 봤다. 그는 “세월호 참사뿐 아니라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재판에서도 국가의 존재와 책임을 현장 지휘관에게서만 확인하고 있다”며 “현장과 컨트롤타워를 구분한 후 고위 공직자들의 경우 현장에 대한 인식이 결여됐다(예견과 회피의무 부재)며 책임을 면제해줬다”고 했다.
이러한 재판 결과는 높은 지위로 올라갈수록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지기에 ‘높은 사람은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를 준다. 이 교수는 “높은 지위에 있는 이들은 동원할 수 있는 다양한 사람과 자원을 활용해 상황을 파악하고 올바른 지시를 내릴 의무가 있다”면서 “해경 지휘부 관련 재판에선 그것이 아니라 ‘(현장 상황을) 알았냐 몰랐냐’고만 따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위로 올라갈수록 보고를 못 받았다, 몰랐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드는 판결”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재난 참사에 대한 국가 책임을 수학의 ‘미적분’을 활용해 설명했다. 그는 “대형 참사들은 사건 발생 이전부터 발생 후 구조까지 주요 국면마다 촘촘히 국가가 결부돼있기 때문에 그 상황들을 ‘미분’하듯 나눠서 공직자들의 책임 소재를 볼 필요가 있다”며 “동시에 참사 발생의 구조적 배경 등 종합적인 책임을 묻는 ‘적분’적 방식도 적용할 수 있다”고 했다. 국가 전체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민사적 책임과 공직자 개인이 져야 하는 형사적 책임은 구별돼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 책임을 적절히 묻기 위해서는 재판 이전 과정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 이 교수는 “해경 지휘부가(참사 6년 뒤인 2020년에) 늦게 기소됐는데 증거가 남아있더라도 사실상 훼손됐을 가능성이 크다”며 “재난 참사에 대한 상설조사위원회와 같은 담당 기구를 설치하고 특별 검사 제도를 도입해 신속하고 공정한 조사를 끌어낼 필요도 있다”고 했다. 이외에도 형사 재판과 진상규명 및 피해 보상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적절한 참여가 있었는지, 애도 받을 권리가 보장됐는지, 재발 방지 시스템이 구축돼 재난이 최소화되고 있는지 등을 따져 국가 책임이 충분한지를 논할 수 있다고 봤다.
이 교수는 결국 ‘국가 잘못이 없는 재난 참사’에 대한 국가적 책임까지로 나아가야 한다고 봤다. 이 교수는 “세월호와 다르게 대홍수, 지진, 전염병 등 잘못이 특정되지 않는 자연 재난에 대해서도 위험의 공동체에 대한 사회적 연대 관점을 바탕으로 복구 및 경제적인 지원 등을 할 필요가 있다”며 “국가의 특정인이 잘못하지 않았더라도 일어난 재난, 재해를 어떻게 공동체 일로 내부화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