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인도 가는 길*

2025-01-14

분홍이 쓰윽 들어서고 남자가 물기 탈탈 털어

우산꽂이에 꽂는다

늦여름비가 따라 들어왔다가 털려나간다

떠나가는 것들과

떠나보내는 것들의 중간 어디쯤

반은 슬픔이고

반은 그 슬픔이 허방이었다는 거

그래, 늘 반반이었어

늦여름

늦비는

늦은 사랑

기다리지 않았던 시간이 분홍우산으로 들어설 때

창밖의 빗소리가

안으로 들이닥치는 것처럼

문득

뜻밖이라

저 우산을 탈탈 털어내는 저 남자의 단호한 몸짓이

옥수숫대 꺾어대는 소리로 들렸다

8월이 오고 8월이 가고

처음부터 없었던 건 없었을 터

인도 가는 길은 타인처럼

또 아닌 것처럼

반반인 것처럼

* 대구 대봉동에 있는 인도음식 전문식당

■약력: 경남 합천 출생. 시인시대 등단. 시집 <흐린날의 고흐>. 대구시인협회, 대구문인협회, 죽순문학회, 미래작가회동인.

■해설: 시에서 내내 궁금한 건 분홍우산을 쓰고 들어서는 남자다. 인도와 분홍이 무슨 관계? 아니면 시인의 마음이 남자를 기다리는 분홍의 상태인가? 한때 시인들이 분홍에 대한 연민을 드러내던 시절이 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이는 걸출한 어느 한 시인의 흉내 내기 정도였다. 결국 분홍은 분홍일 뿐 창의적 상징이 되지 못하고 기분 정도로 보면 될 듯하다. 따라왔던 늦여름비가 탈탈 털리는 장면에서 남자는 꽤 섬세한 남자로 보인다. 불쑥 다가온 늦여름, 늦비, 늦사랑이 반은 슬픔이고 반은 허방이어서, 시인은 아프다. 이렇듯 아픈 사람들이 꿈꾸는 곳이, 한때 몰려가던 곳이 결국 인도가 아니던가? 다가올 늦여름쯤 나도 분홍 우산을 쓰면 암퇘지 부어오른 뒤태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려나! 아무튼 노란 우산과 인도는 발랄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시이다 -<박윤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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