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급여 진료와 실손보험 개선은 건강보험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제입니다. 다만 실손보험 개혁이 국민 부담을 가중시키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자칫하면 의료계, 소비자단체 모두 반발하고 보험사만 웃게될 겁니다.”
이주열(사진)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7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현재 의료 생태계를 유지하면서 비급여 진료가 문제되는 부분을 디테일하게 핀셋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개특위)가 여러 차례의 전문위원회와 소위원회 논의를 거쳐 마련한 ‘비급여·실손보험 개편안’이 윤곽을 드러내면서 의료계와 실손보험 가입자를 중심으로 비판이 쇄도하고 있다. 개인 재산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발상으로 보험사만 배불리는 정책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이 교수는 “보건당국의 관리와 통제를 받는 급여 진료와 달리 비급여 진료는 가격·진료횟수·양 등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다”며 “정부가 통제하지 않으면 의료 생태계 질서가 무너질 수 있다”고 운을 뗐다. 의료 서비스의 공급자인 의사는 제한 없이 비급여 진료 항목을 개발해 제공할 수 있다. 그런데 새로운 비급여 항목이 계속 등장하다 보니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해졌다. 급여 진료는 전혀 하지 않고 비급여 진료만을 담당하는 의료기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도 건보재정을 위협하는 요소다. ‘당연지정제’를 근간으로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비급여 진료가 의료체계 전반의 신뢰성과 지속가능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 교수는 “특히 혼합진료, 비급여 단독진료가 건강보험재정 등 국민건강보험체계를 위협할 수 있는 만큼 정부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면서도 “정책의 디테일이 정말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국민건강보험의 기능을 강화하는 동시에 민간보험의 보완적 기능을 적절한 수준에서 활용하는 것이 정책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손보험은 국민 4000만 명이 가입해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린다. 그는 “국민의 약 78%가 실손보험에 가입한 이유가 무엇이겠느냐”고 되물었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65.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80%에 미치지 못한다. 실손보험은 급여 진료의 경우 본인이 지불해야 하는 의료비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고 비급여 진료의 경우 의료서비스 이용과 선택 범위를 넓혀 주는 역할을 담당해 왔다. 일부 공급자와 실손보험 가입자의 도덕적 해이가 결합하면서 불필요한 과잉진료와 비급여, 의료쇼핑 등 부작용도 나타났다. 민간 의료기관이 90% 이상을 차지하는 현실 속에서 어쩌면 부득이한 결과로 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실손보험이 의료 접근성을 높이고 환자들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는 데 기여한 것을 간과해선 안된다”며 “실손보험이 원래의 기능을 회복하고 과잉진료를 유발하지 못하도록 보험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물론 의료계와 보험업계, 소비자단체 등 이해당사자 간 이견이 커 정책 추진에는 난관이 예상된다. 심지어 정부 내에서도 보건당국과 금융당국 간 일부 입장 차이가 있다. 보건당국은 실손보험이 건강보험의 보완적 기능을 벗어나 과잉 의료행위, 건강보험 재정 악화, 의료체계 왜곡을 유발하는 원인이라고 여긴다. 반면 금융당국의 관심사는 실손보험 손해율이다.
이 교수는 “보건당국과 금융당국의 관점은 다를지 몰라도 비급여와 실손보험의 개선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다”며 “정부 당국과 보험업계, 의료계, 소비자단체가 모두 참여하는 다자간 논의를 통해 실질적인 개선안을 도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비급여와 실손보험 개선이 보험업계의 손해액을 줄이는 동시에 소비자의 의료행위 범위를 축소시키고 자기부담금을 늘릴 수 있는 만큼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배제돼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그는 “무엇보다 복지부는 건강보험보장성 강화를 통해 비급여 항목을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며 “비급여 부작용과 문제점을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복지부 건강보험정책국 내 비급여관리과 신설도 필요하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