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한·일이 후원, 선수는 일본 아이들…세상이 바뀐거죠”

2024-11-22

‘교토국제고 고시엔 우승’ 숨은 주역, 박경수 전 교장

박경수 선생과 기자는 교토국제고 교가를 함께 불렀다. 박 선생은 2017년부터 올해 3월까지 교토국제고 교장을 맡아 ‘고시엔(甲子園) 우승’이라는 기적의 씨를 뿌리고 기반을 다진 사람이다. 인터뷰 요청에 응한 그는 야구부 점퍼와 모자, 고시엔 우승 기념구, 우승 순간을 담은 요미우리와 아사히신문 호외 등을 준비해 왔다.

올해 106년째를 맞은 일본 고교야구 최고 권위 대회인 여름 고시엔에서 1947년 재일 한국인이 세운 교토국제고가 우승했다. 승리할 때마다 고시엔 전통에 따라 교가가 울려 퍼졌고, 선수들이 “동해바다 건너서”로 시작하는 한국어 교가를 부르는 장면은 NHK 방송을 통해 일본 열도에 퍼져나갔다. 교토국제고가 한 경기씩 이길 때마다 서사(序事)가 쌓였다. 전교생 138명에 불과한 이 학교, 더구나 한국계 재단이 세운 이 학교가 과연 3700여 개 고교 야구부의 꿈인 고시엔 신화를 쓸 수 있을지 비상한 관심거리였다.

지난 8월 23일 열린 결승전. 교토국제고와 간토제일고는 9회까지 0-0으로 비겨 승부치기에 들어갔다. 선공인 교토국제고가 2점을 냈고, 수비에서는 무사만루 위기를 1점으로 틀어막아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박 전 교장은 이 장면을 세종시 자택에서 TV로 지켜봤다. 건강이 나빠져 내년까지인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귀국한 그는 건강이 회복돼 강연과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결승전 현장에 갔어야 하지 않냐고 묻자 그는 “제가 갈 자리는 아닌 것 같고, 백승환 현 교장과 감독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며 편안하게 웃었다.

첫 해 0-34로 패, 당시 상대 선수가 현 감독

우승을 지켜본 심정이 어땠나요.

“감격스럽죠. 지난 7년간 어려웠던 기억이 머리를 스치면서 눈물이 났어요. 운동장 사이즈가 최장 70m밖에 안 되는 우리 학교의 약점을 강점으로 바꿔 이룬 우승이니까요(야구장 정규 사이즈는 90m 이상이다). 외야 수비 하기도 어렵고, 장외 파울볼이나 펜스를 넘는 장타를 치면 주차장에 세워둔 차량이 파손될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내야 수비와 투수력 강화, 낮고 빠른 타구를 때리는 훈련에 집중했거든요. 올해부터 공식 배트 두께를 67㎜에서 64㎜로 줄여 장타가 많이 안 나온 게 우리에겐 행운이였죠.”

한국어 교가가 화제였는데요.

“우여곡절이 많았죠. 2021년 첫 고시엔 나갔을 때 야구부 스태프진이 ‘일본 우익의 공격 명분이 될 수 있으니 한국어 교가를 대신하는 일본어 응원가를 만들면 좋겠다’고 건의했고, 이사회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분위기였어요. 이사장이 제게 의견을 물어와 ‘고시엔에서 한국어 교가를 울리겠다며 만든 야구부 아니냐’라며 밀고 나갔죠. 우리 아이들도 한국어와 K팝이 좋아서 진학했다며 제 입장을 지지했습니다. 야구부원들은 등하교 때 함께 교가를 부르곤 합니다. 교가 작사는 변낙하 선생님이 하셨어요. 우리말과 민족정신을 가르치는 민족교사를 하시다 후엔 목회자로 활동하셨다고 해요.”

좁은 운동장에서 60여명이 연습하는데, 실밥이 터진 공에 테이프를 붙여 쓰기도 한다면서요.

“아이들의 연습량이 많다 보니 공이 견뎌내질 못해요. 연습공의 가격도 만만찮아 테이프를 붙여서 재사용을 하고 있지요. 올해 초 일본에 전지훈련을 온 KIA 타이거즈 선수단이 이런 사실을 전해 듣고, 훈련 마치고 가면서 연습구 1000개를 보내줬습니다.”

고마키 노리츠구 감독도 화제인데요.

“1999년 창단한 교토국제고 야구부의 첫 공식시합 상대가 세이조고교였는데, 우리가 0-34로 참패했습니다. 당시 그 학교 2루수가 고마키였죠. 부상으로 야구를 그만두고 은행원으로 있던 그를, 야구부 동기였던 본교 체육 선생님이 ‘주말에 좀 도와달라’고 부탁해서 학교와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1년 뒤 재일동포 감독이 사직하면서 그 자리를 맡았고, 사회과 교사도 겸하게 됐습니다. 고마키 감독은 훈련 중에 한 번도 화를 내거나 욕을 한 적이 없어요. 대신 안 되면 될 때까지 집요하게 연습을 시킵니다.”

박경수 선생은 교토국제고 역사를 설명해줬다. 1947년 교토에 사는 재일동포들이 돈을 모아 교토조선중학교를 세운 게 효시다. 이후 최영오 전 이사장이 현재 위치에 학교 부지를 매입했는데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15년간이나 교사를 짓지 못했다고 한다. 어렵사리 학교를 지어 이전했지만 최 이사장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학생 수가 급감하면서 폐교 위기까지 내몰렸다. 이때 김안일 후원회장을 중심으로 몇몇 이사들이 “야구부를 만들면 야구를 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찾아올 거다. 고시엔에도 나가서 한국어 교가를 전국에 울리자”며 야구부 창단을 주도했다. 이후 한국 교육부의 도움으로 ‘1조교’(일본 정부가 인정하는 정식 학교) 자격을 갖췄고, 2004년 4월 교토국제중고등학교로 새출발을 하면서 일본인과 외국인 학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현재는 남학생 대부분이 야구부이고, 여학생은 K팝에 관심이 많은 쪽이다.

외조부 징용 끌려와 28살에 탄광사고 숨져

학교를 살리는 데 큰 역할을 하셨다죠.

“2002년 재외교육기관 담당으로 근무할 때 ‘50년 넘은 학교가 재정 곤핍으로 폐교 위기에 처했다. 이 학교를 살려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썼습니다. 1조교 전환을 위한 부지 확보를 위해 정부 지원자금을 쓸 수 있도록 건의도 했죠. 이게 받아들여져 1조교 인가를 취득했고, 학교는 일본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오사카총영사관에서 일하다 2017년 교장직을 제의 받아 부임했습니다.”

부임 당시 학교 상황은 어땠나요.

“야구부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고, 여학생들은 부등교가 일상이었습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밤늦게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니 피곤해서 아침 등교를 못하는 거죠. 문제를 일으켜 아동상담소나 경찰서에 가 있는 아이들 데려오는 게 교사들 일이었고, 학교가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정원을 채우기도 힘들었습니다.”

어떤 것부터 시작하셨나요.

“노후화된 교육환경을 바꾸는 게 우선이라고 봤습니다. 교실 증축, 기숙사 리모델링 등을 진행했고, 운동장엔 고시엔 흙(화산토 70%에 고운 모래를 섞은 것)을 깔았습니다. 체육관 개보수, 체력단련실 설치, 야간조명 LED로 교체 등 야구부를 위한 환경조성을 해줬더니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개인운동을 하더라고요. 빵 대신 제대로 된 밥으로 아침을 먹이고, 야구부 전용 버스도 확보해 줬습니다. 유튜브 보면서 춤 연습하던 여학생들도 전문 강사를 모셔오고 악기도 바꿔주고 하니까 학교에 종일 붙어 있었어요. 부등교가 사라졌죠.”

현재 학생들의 진로는 어떻게 됩니까.

“야구부는 일본 프로 팀에 입단하는 선수가 최근 6년간 매년 나오고 있습니다. KBO리그에서도 신성현(두산)·황목치승(LG) 등이 활약했죠. 야구를 그만둔 학생들도 경찰·소방 공무원, 간호사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합니다. 여학생들은 한국과 일본 대학에 진학하거나 각자 특기를 살려 직업을 찾아갑니다. 지금은 입학 경쟁률이 2대1 정도 됩니다. 무엇보다 학생들 표정이 밝아지고 학교에 활기가 넘치는 게 좋습니다.”

야구부 하나로 학교가 일어설 수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일본은 그게 가능합니다. 수능 성적만으로 줄을 세우는 우리나라와 달리 어느 것 하나만 잘해도 대학에 가고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구조잖아요. 그리고 일본은 학교 내 부(部) 활동을 통해 학생의 재능과 취미를 살릴 수 있도록 합니다. 연말에는 야구부·무용부 등이 졸부식(卒部式)을 합니다. 이 자리에서 부모님께 드리는 감사 편지를 읽고, 지금부터는 이치닌마에(一人前), 즉 사회에서 자신의 구실(1인분)을 하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교토국제고의 우승은 동포 사회의 자긍심과 결속을 크게 끌어올렸다. 또한 교토 시민들의 자랑거리가 됐다. ‘교토국제고 서사’가 한국과 일본 사회에 미친 영향을 물었다. 박 선생은 아픈 가족사를 꺼냈다.

“제 외조부가 징용으로 끌려와 28살에 탄광 사고로 돌아가셨답니다. 한국인들이 간사이(關西) 지방에 오게 된 것도, 차별과 고난을 견디며 정체성을 지켜온 것도 역사의 흔적이죠. 지금은 한국과 일본 정부에서 지원하는 학교에서, 일본 아이들이 선수로 뛰고, 고시엔 구장에서 한국어 교가를 부릅니다. 그만큼 세상이 바뀐 거죠. 더 좋은 세상이 올 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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