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기억] 노부부의 여름나기

2024-07-26

불볕더위가 내리쬐던 날 땀을 뻘뻘 흘리며 산길을 내려오고 있을 때였다. 시원한 물소리와 함께 노부부가 서로 등목해주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담장이 없는 집이라서 마당이 훤히 다 보이지만 산자락과 맞닿은 곳이라 오가는 행인조차 거의 없으니 노부부는 평소에 남의 눈 의식하지 않고 살아왔을 것이다. 오늘도 한나절 밭일하고 땀에 절어 집에 돌아와 윗옷부터 벗어 던지고 우물물 길어 차가운 물을 등에 끼얹는 중이었다. 그때는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밖에서 땀을 흘리다가 집에 돌아오면 우물가로 먼저 달려갔다. 일단 벌컥벌컥 실컷 들이마신 후 열기로 달궈진 몸에 물 한 바가지 확 쏟아부으면 종일 달라붙어 끈적거리던 더위가 비로소 저만치 떨어져 나갔다. 차가운 물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갈 때는 소름이 돋으며 저절로 오싹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연신 물을 퍼부어 얼얼해진 몸으로 앞뒤 툭 터진 대청마루에 큰 대자로 누우면 얼마나 개운하고 가벼운지 걷잡을 수 없이 눈이 감기며 스르르 잠이 쏟아지곤 했다. 50년 전 여름에 “뭘 이런 걸 다 찍는대. 늙은이들이 무슨 사진이 된다고?” 하시면서도 할머니 등에 살갑게 물 한 바가지 더 부어주시던 할아버지. 어느새 젊고 어여쁜 나이를 지나 이마에 주름이 가득하지만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한평생을 서로 의지하며 살아온 노부부에게는 서로가 세상 누구보다 귀하고 소중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자기의 등에 물 한 바가지 끼얹어 줄 한쪽이 없다면 긴 여름에 날마다 등목으로 하루의 노동을 마무리하는 소박한 행복을 어찌 누릴 수 있을까.

지금 다시 이 사진을 보면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벌써 반세기가 흘렀으니 이 노부부도 마침내 그 강을 건너고야 말았을 것이다. 그래도 사진에서는 여전히 등목하는 물소리가 들려오고 물 한 바가지라도 더 퍼부어주려던 노부부의 모습이 정겹게 살아 있다. 시간의 강을 건너지 않는 사진의 힘이다.

사진가 김녕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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