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안 낳느냐고요? 아빠 되고야 안 ‘육아의 기쁨과 슬픔’

2024-09-07

그날 저녁 8시경, 모든 두려움이 현실화하였다. 2023년 11월 어느 날. 아내의 진통은 마무리 단계를 향해 가고 있었다. 나는 아내와 나란히 누워 손을 꼭 쥐고 있었다. 아들이 태어나는 순간 귀가 얼얼하도록 출산방을 가득 채우던 울음소리. 갓 태어난 아기를 가슴 위에 얹었을 때의 질감과 무게감. 너무 작고 여려서 이 아기가 정말 사람일까 싶은 정도의 연약함….

그날 밤은 한숨도 못 잤다. 아기가 울면서 깰 때마다 아내와 같이 깨서 어르고 달래고 먹였다. 아기도 우리도 익숙한 게 하나도 없어서 허둥지둥했다. 아기가 깨지 않았을 때도 혼자 일어나 코 아래에 손가락을 대보곤 했다. 침대에 누워 눈을 게슴츠레 뜨고 아기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장면을 오래 보기도 했다. 그렇게 낯설고 조심스러웠다. 이렇게 작은 아기가 살아있다는 게. 아울러 두려웠다. 그칠 일 없는 풍랑에 촛불 하나를 꺼내 놓은 것 같아서.

그로부터 300일이 지났다. 지금 아기는 벌떡 일어서서 손으로 소파를 짚고 옆으로 걷는다. 한쪽 다리를 번쩍 들어 올려 소파 위로 올라가고 손에 잡히는 건 뭐든 잡아 관찰한다. 곧 입으로 가져간다. 눈이 맞으면 ‘헤헷’ 하고 웃는다. 아기와 우리는 저기 깊은 곳 어딘가로부터 깊이 연결되어 있는데, 이렇게 웃을 땐 그 웃음과 감정까지 같이 느껴져서 삶이 다 환해졌다.

물론 울기도 한다. 아기는 생명력을 다해, 얼굴을 찡그리고 몸에 힘을 주면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달래질 때까지 운다. 그야말로 아랑곳 않고 세상을 호령하듯 운다. 배가 고프거나 졸음이 몰려오거나. 조금 지루해졌거나 일어나 걷고 싶을 때도 울거나 칭얼거린다.

가끔은 낮밤을 가리지 않는다. 어떤 아기는 100일 즈음부터 ‘통잠’을 자서 ‘백일의 기적’이라는 말이 무슨 유행어처럼 번져있는데, 우리 아기는 300일이 되도록 잠이 얕아서 몇 번이나 깬다. 아내와 나의 잠은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비해 절반 정도로 줄었다. 커피는 낮밤을 가리지 않고 마셨다. 피로는 친구가 되었다.

아기와 단둘이 하루 종일 집에서 보내는 하루를 감당하는 날에는 왜 이렇게까지 출산율이 낮은지 몸과 마음으로 이해하게 됐다. 2023년 한국에서 태어난 신생아 수는 23만명. 2022년에 비해 1만9200명 줄었다. 2013년에는 43만6500명이었다. 10년 사이 거의 절반 가까이 줄었다. 2023년,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합계 출산율은 0.72명이었다. 상황이 이러니 아기가 태어났을 때는 이런 황당한 축하를 받기도 했다.

“아이고 애국하셨네요.”

“제가 나라를 사랑해서 가족을 꾸린 건 아닌데요.”

“아핫. 그래도 요즘 워낙 출생률이… 그러니까요.”

“그러니까, 누가 출생률 높이자고 아기를 낳겠어요.”

진심 어린 축하라도 실례일 때가 있는 법. 내 아기는 애국의 수단이 아니고, 매년 발표하는 합계출산율 같은 건 일상과 매우 동떨어져 있다. 전쟁 피해자를 숫자로 접할 때와 그들의 인생을 다큐멘터리를 통해 접할 때의 차이가 이럴까. 숫자에는 일상도 감흥도 없다. 통계는 편의를 위한 것이지 삶을 들여다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 와중에 ‘한국의 통계가 이 모양이니 삶을 좀 들여다보자’고 생각하는 정치인이 있는 것도 아니다. 최근 들었던 가장 황당무계한 소리는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의 입에서 나왔다. 그는 “젊음은 뜨겁게 사랑하는 것. 애를 낳아서 키워줘야지, 개를 안고 다니는 것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무려 ‘청년 경청 콘서트’에서 했던 말이다.

누가 낳은 아기를 누구를 위해 키워주나. 개를 안는 행복을 모르는 사람이 아기를 안는 행복은 알까. 젊음이 뜨거운 사랑이라는 건 어느 시절 이야기일까. “눈물이 나네요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노래했던 가수 오승근은 1951년생이다. 누가 감히 젊음과 사랑을, 고작 저런 말로 정의할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김문수 장관도 1951년생이던데.

나는 X세대와 MZ세대 사이에 가까스로 끼어 있는 40대지만, 이른바 ‘라떼’의 젊음도 ‘뜨거운 사랑’이라는 한마디로 퉁칠 수는 없었다. 오히려 불안과 돌파에 가까웠다. 어떻게 살아야 옳은지도 모르겠고 직업과 직장은 도무지 오리무중이었다. 결과적으로 좋아하는 일을 찾아 더 열심히 살게 되었지만 그땐 8월에도 (마음이) 서늘했다. 그때로 돌아간다고 지금처럼 해낼 수 있을까? 다 알고 돌아가도 불안하고 치열한 것이 젊음일 것이다. 하지만 1951년에 태어나 부끄러움도 모르는 채 이제 일흔셋이나 된 정치인이 저런 말이나 하는 시대.

문화체육관광부가 내놓은 대책도 신기하다. 저출생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가족 콘텐츠를 확대하기로 했다. 앞으로 결혼, 출산, 육아 등에 긍정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드라마, 예능, 다큐멘터리에 대한 지원을 늘리기로 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아이를 키우는 일상의 즐거움’을 담은 방송 콘텐츠의 제작과 홍보를 확대하고 관련 캠페인도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오케이. 그럴 수 있다 치자. 그런데 이런 지원의 대척점에 <나 혼자 산다>가 있다는 분석은 어디서 나온 걸까?

2023년 12월 보도였다. 서정숙 국민의힘 원내부대표가 “온통 <나 혼자 산다>, 불륜, 사생아, 가정파괴 등의 드라마가 너무나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제라도 좀 따뜻하고 훈훈한 가족 드라마를 많이 개발해서 이런 사회 분위기 조성에 방송사도 기여해주길 부탁한다”고 말했다. 2022년 11월에는 나경원 의원도 <나 혼자 산다>를 언급했다. 저출생의 원인으로 ‘혼자 사는 것이 더 행복한 거로 너무 인식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혼자서 행복할 줄 아는 사람만이 둘이서나 셋, 넷이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당연한 진리를 정치인만 모르는 이유는 뭘까? 훈훈한 가족주의 드라마를 보면 출생률이 올라갈 거라는 얘기가, 클래식 음악을 듣고 자란 돼지고기가 더 맛이 좋다는 얘기나 다를 것 없다는 걸 정말 몰라서 하는 말일까? 저출생의 해법은 결국 정치와 시스템의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정치인들의 해법에는 삶의 흔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말은 어떨까?

“부모는 우리 자녀의 건강과 사회의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친다. 부모의 정신 건강과 웰빙을 중시하고 우선시하는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2021년에 미국 의무총감으로 임명된 비벡 머시의 최근 권고문이었다. 미국 전역에서 부모들과 만나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발표한 것이라고 한다. 그가 만난 부모들은 “부모가 되는 일은 일생의 기쁨을 얻을 뿐 아니라 걱정을 얻는 것”, “부모가 되는 일이 이렇게 외로울지 몰랐다”고 말했다고 한다. 의무총감은 미 연방정부의 공중보건 최고책임자다. 이 권고문은 육아 과정에서 얻는 각종 스트레스를 국가 차원에서 해결해야 하는 공중보건 위협으로 보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는 아이가 아팠을 때의 무력함과 외로움을 언급하며 이어 말했다.

“자녀 양육의 일차적 책임은 부모와 보호자에게 있지만 사회 전체가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육아를 팀 스포츠가 아닌 개인 스포츠로 인식하게 됐지만 부모들은 여전히 가족, 친구, 이웃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 보도를 보고 서울에서 육아 중인 한 부부가 깊은 위로를 받았다고 전해줄 방법이 있을까? 한 명의 아기를 매일매일 기르는 데에는 적어도 세 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아내와 나눈 적이 있다. 물론 엄마나 아빠 혼자서도, 부부가 둘이서도 가능은 하다. 하지만 둘이서는 혼이 쏙 빠질 일, 혼자서는 자아를 통째로 빼앗긴 기분으로 체력까지 고갈되는 게 육아의 현실이다. 미국 심리학협회도 말했다. 부모의 절반이 매일 ‘압도적인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통계 이면의 삶을 들여다보면 정치인도 이런 말을 할 수 있다. 아기는 아름답지만 육아에는 행복만 있는 게 아니니 나라가 도울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들을 찾게 된다는 뜻이다. 가족 드라마로 출생률을 높이겠다니…. 쉴 틈이 있다면 잠을 자야지, 아기와 함께하는 동안에는 TV 볼 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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