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런던 중심가 코럼스 필즈 인조잔디 경기장. 토요일 아침, 차가운 공기 속에서 소년, 소녀들이 축구를 하고 있다. 공을 차는 소리, 심판 휘슬 소리, 그리고 끊이지 않는 고함이 뒤섞인다. 선수들뿐 아니라 양 팀 코치, 그리고 무엇보다 터치라인을 따라선 아빠들의 고성이 귀를 때린다. 가디언은 25일 자녀에게 계속 축구에 대해 큰 소리로 뭔가를 요구하는 사커 대디에 대해 비판적으로 평가했다.
‘소리 지르는 아빠(Shouty Dad)’ 한명이 유독 돋보인다. 그는 경기 내내 자신의 아들에게 쉼 없이 소리친다. “넓게 벌려”, “달려 그를 제껴!”, 그리고 “입이 있잖아? 그걸 써!”까지. 그 말은 공을 요구하라는 뜻이겠지만, 아들은 그저 땅속으로 사라지길 바라는 듯하다. 하프타임이 되자, 그는 팀 코치의 작전 회의에 끼어들어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기도 한다.
이 정도는 그나마 평온한 축에 속한다. 최근 켄트에서 열린 10세 이하 경기에서는 선수들 간 충돌 이후 부모들이 그라운드로 뛰어들었고, 주먹이 오가는 아수라장이 됐으며, 한 아이는 통제 불능의 아빠에게 들이받혀 다치기까지 했다. 노섬벌랜드 축구 리그 총책임자 이안 코츠는 “경기 중에 주의 깊게 들어야 할 유일한 사람은 바로 지도자”라며 “아이들에게 그냥 하고 싶은대로 하고 엄마, 아빠가 뭐라고 하면 내에게 오면 내가 엄마, 아빠를 혼내주겠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사실 이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개리 리네커는 10년 전부터 부모들의 과도한 개입이 아이들의 축구 사랑을 망치고 있다고 경고해왔다. 코츠는 그 원인을 “사회 전반의 규율 붕괴”로 설명한다. 그는 ‘상위 리그의 나쁜 본보기’가 하위 리그로 전염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선수가 심판에게 “장난하냐”고 외치면, 관중석 전체가 곧장 “심판은 개XX”라며 노래를 부른다. 그걸 지켜본 13살 소년이 자신의 경기에서 같은 말을 했다가 퇴장당하는 장면, 그리고 그 아버지가 터치라인에서 다시 심판에게 항의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잉글랜드축구협회(FA)의 2023-24 시즌 자료에 따르면, 풋볼 관련 불미 사건(심각한 비신사 행위)에 대한 징계 건수는 2561건으로, 전년 대비 13% 증가했다. 그중 60%가 유소년 경기에서 발생했다. 하지만 이는 선수나 코치의 행동에 대한 통계이며, 부모의 행동은 별도로 다뤄지지 않는다. 서머싯 카운티 축구협회 CEO 존 파이크는 “FA 규정상, 부모는 ‘경기 참가자’가 아니기 때문에 개인 징계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벌을 주고 싶어도 실제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고 말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그 억눌림이 폭발하듯 과격한 언행이 증가했다는 분석도 있다. 파이크는 이를 “뚜껑을 연 콜라병 같다”고 표현했다. 경기 재개 이후인 2023~24 시즌, 서머싯 지역에서만 273차례 비신사 행위가 기록됐다. 그는 젊은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한 리더십 교육 시간에 ‘축구에서 싫어하는 것’이라는 주제로 작성된 포스트잇들을 소개했다. 그중 상당수는 “부모의 고함”, “터치라인에서 아빠가 소리치는 것” 등 성인의 부정적인 행동을 지적했다.
앤트 캐너번은 안필드에서 일하는 직원이자 하부리그 심판이다. 그는 “지난 20년간 유소년 축구에서 부모의 과잉 개입은 계속된 문제였다. 특히 아버지들이 문제의 중심”이라고 말한다. 때론 어머니들도 과하게 행동하지만 드물다. 그는 “예전 아스널 트라이아웃에서 떨어졌던 사람. 그래서 자기 아이를 통해 축구 선수의 꿈을 대리 만족하려 한다”며 “어떤 경우엔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아니, 알고도 무시한다”고 지적했따.
이러한 ‘꿈의 투영’은 단순한 관심을 넘어선 폭력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실제로 노섬벌랜드에서는 심판이 학부모들에게 쫓겨 락커룸에 몸을 피했던 사건이 있었다. 그는 “그 아빠는 심판에게 또 한 번 반칙을 불면 주차장에 끌고 가 찌르겠다고 협박했다”고 회고했다.
경찰이 개입한 사례이긴 하나, 대부분 부모들은 제재를 받지 않는다. FA는 클럽에 벌금을 부과할 수 있지만, 부모 개인은 규정상 대상이 아니다. 공공 부지에서 벌어지는 경기에서는 출입금지 명령도 어려운 실정이다.
노섬벌랜드 리그는 최근 심판과 스태프에게 경찰용 바디캠(몸캠)을 시범 도입해 큰 효과를 보고 있다. 캐너번은 “내가 부모에게 다가가 말을 걸기 전 바디캠을 작동시키면, 그들은 갑자기 톤을 바꾼다”며 “빨간 불빛 하나에 태도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가디언은 “아버지는 터치라인에서는 입 닫고 있어야 한다”며 “이게 아이들이 아버지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인지 모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