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장애인 교정시설에 화장실 편의시설 설치하라” 첫 명령

2024-09-27

차별적 조치에 국가 책임 인정, 시정조치 첫 사례

전국 장애인 교정시설에 대변기 등 1년 내 설치 명령

장애인 수형자에게 화장실 내 대변기·세면대와 같은 필수 편의시설을 제공하지 않은 교도소의 조치가 위법하고 차별행위에 해당한다는 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법원은 법무부에 ‘전국에 있는 장애인 수형자 전담교정시설에 대변기와 세면대와 같은 화장실 편의시설을 1년 이내에 설치하라’고 명령했다. 장애인 수형자에 대한 차별적 조치에 대해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시정조치를 내린 첫 사례다.

27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광주지법 순천지원 민사3-3부(재판장 유철희)는 장애인 수형자인 A씨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약 2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차별시정 조치 요청에 대해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법무부 장관이 정한 전국의 장애인 수형자 전담교정시설을 대상으로 차별시정을 위한 적극적 조치도 명령했다. 구체적으로는 판결 이후 1년 이내에 장애인 수형자 전담교정시설에 대변기와 세면대를 설치하도록 했다.

이 사건의 원고인 A씨는 교통사고로 척수가 손상돼 사지가 마비된 중증 장애인이다. 그는 수년간 장애인을 위한 편의가 갖춰지지 않은 교도소에 수용돼 불편을 겪었다. A씨는 2015년 교도소 입소 당시 장애인 화장실이 없어 다른 화장실까지 간병인들의 도움을 받아 이동해야 했다. 화장실 손잡이 설치도 요구했지만 2019년 1월에야 설치됐다. 이마저도 정상적인 제품이 아니라 배관용 쇠파이프에 페인트를 칠한 대체용이라 1년만에 녹이 슬었고 A씨 왼팔에는 쇳독이 올랐다. A씨가 요청한 양손잡이 핸드레일 및 입구 경사로는 소송이 진행 중이던 2022년 5월18일 설치됐고, A씨는 현재 형집행정지로 나온 상태다. 법무부는 재판에서 화장실 편의시설이 설치되지 않았던 배경에 고의나 과실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A씨의 손을 들었다. 법원은 교도소 측이 장애인 수형자에게 법이 정한 필수적인 편의시설을 제공하지 않았다면 이는 장애인 차별금지법에 따른 ‘정당한 편의 제공을 거부한 차별 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장애인 차별금지법은 교도소와 같은 수용시설도 화장실과 같은 ‘정당한 편의’에 대해 장애인과 장애가 없는 사람이 동등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편의 시설을 마련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규정돼 있다.

재판부는 A씨가 있던 교도소 측이 2019년 설치한 화장실 손잡이에 대해서도 “법의 기준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 4조 등은 교정시설에 설치해야 할 편의시설을 세부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화장실 대변기와 세면대는 의무설치 사항으로, 소변기는 권장사항으로 정하고 있다.

A씨 측은 재판에서 이 사건 교도소만 아니라 전국의 장애인수형자 전담교정시설을 대상으로 ‘차별행위 중지 및 시정’ 등을 위한 ‘적극적 구제 조치’ 판결을 요구했다. 전국에 있는 장애인 수형자들이 장애를 이유로 더 이상 차별받지 않길 바란다는 취지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법원이 차별행위의 중지 및 차별 시정을 위한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이행기간을 밝히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일정 배상을 하도록 명령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재판부는 A씨의 이 같은 요구를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장애인 수형자 전담교정시설에 대한 편의시설 설치 및 재활치료프로그램의 실시는 형 집행법 시행규칙에 따라 이미 의무사항으로 규정돼 있다”며 “피고(법무부)와 장애인 수형자 전담교정시설을 대상으로 관련 의무를 이행하도록 명할 당위성도 있다고 판단되고, 이는 입법상 논의의 필요성 등까지 나아가지 않더라도 현행 법령만으로 충분한 해석”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법무부를 상대로 판결이 확정된 시점으로부터 1년 이내에 장애인 수형자 전담교정시설에 한해 장애인 등 편의법 시행규칙에 따라 대변기나 세면대와 같은 화장실 내 편의시설을 설치하도록 명했다. 2023년 기준 전국의 장애인 수형자 전담교정시설 중 지체장애인 관련 전담교정시설은 A씨가 있었던 순천교도소와 안양·여주·포항·청주·광주·군산교도소, 충주·통영구치소 등 9곳이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가 적극적 조치 판결에도 이를 위반할 개연성이 크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간접강제명령은 부여하진 않았다.

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박민서 변호사는 “지금까지 법원의 적극적 구제조치는 소송 당사자 구제에 한정됐지만 이번에는 전국 장애인 전담 교정시설 수용장애인에 대한 구제조치까지 확대됐다”며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적극적 구제조치’ 권한을 행정부가 아닌 사법부에 부여한 입법취지와 의의가 구현된 첫 사례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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