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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엔비디아 같은 회사가 하나 새로 생겼다. 지분 70%는 민간이 가지고 30%는 국민 모두가 나누면 굳이 세금에 그렇게 막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오지 않을까요?”(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최근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K엔비디아’ 논란의 발단이 된 발언이다. 이 대표는 'AI와 대한민국, 그리고 나'를 주제로 하정우 네이버 클라우드센터장, 오혜연 카이스트 AI연구원장과 진행한 대담을 지난 2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공개했다.
영상에서 이 대표는 “앞으로 도래할 인공지능(AI) 사회에 인공지능으로 인한 엄청난 생산성의 일부를 공공 영역이 가지고 있으면서 국민 모두가 그걸 나누는 시대도 가능하다”며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예를 들면 지금 인공지능에 투자해야 하는데 그 중 일부를 국민 펀드나 국가가 가지고 있으면서 거기(투자)서 생기는 생산성의 일부를 국민 모두가 골고루 나눠가지면 굳이 세금 많이 안거둬도 되지 않냐"며 논란의 ‘K엔비디아’ 발언을 꺼냈다.
왜 하필 엔비디아

AI 시대의 대표 기업으로 주목 받는 엔비디아는 대만 출신 미국 이민자인 젠슨 황이 30세였던 1993년 4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의 패밀리 레스토랑 ‘데니스’의 구석 자리에서 창업했다. 창업 31년만인 2024년 6월 애플, 미이크로소프트(MS)에 이어 시가총액 3조 달러(약 4328조 원)를 돌파했고 MS를 제치고 세계 시총 1위에 오르는 성공 신화를 썼다.
엔비디아는 데스크탑 PC에 사용되는 게임용 그래픽카드를 만들다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에 진출해 대형 언어 모델(LLM) 기반의 ‘챗GPT’로 대표되는 생성형AI 열풍에 힘입어 급성장했다. 엔비디아가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GPU는 대량의 연산이 필요한 LLM(대형 언어 모델)의 학습 및 추론 속도를 높여 AI 모델이 효율적으로 대량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게 하는 핵심 부품이다.
이 대표의 발언은 엔비디아와 같은 세계적인 기업 육성을 AI 시대의 대한민국 경제 성장 비전으로 제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한 기업 성장의 과실을 국민 모두가 나누자는 이 대표의 의견은 그가 그동안 주장했던, 정부가 국민의 최소 생활 수준을 보장하기 위해 소득·재산 등의 조건과 무관하게 보편적으로 지급하는 ‘기본소득’과 닮았다.
비판 → 반박, 결국 공개 토론?
유튜브를 통해 이 대표의 발언이 공개되자 국민의힘에서는 비판이 쏟아졌다. 함인경 대변인은 지난 3일 논평을 통해 “현실경제와 시장원리를 철저히 무시한 공상적 계획경제 모델과 다름없다”며 “개인의 이익은 전체의 이익을 위해 희생될 수 있다는 전체주의적 모델”이라고 지적했다.
대권 주자로 꼽히는 정치인들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려 비판에 나섰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우클릭이라고 하더니 사회주의인가’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기업 성장의 동력이 돼야 할 투자 의지를 꺾는 자해적 아이디어”라며 “입으로는 기업과 경제를 외치지만, 머릿속은 결국 국가가 기업 성과를 독점적으로 관리하겠다는 무서운 기본사회 구상을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기본소득보다 더 황당한 공상소설 같은 얘기”라며 “엔비디아 같은 회사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방법은 어디에도 없고, 그런 상상 속의 회사가 있다고 가정하고 뜯어먹을 궁리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IT보안기업 안랩(옛 안철수연구소)을 창업한 안철수 의원은 “기업의 창업과 발전 생태계를 모르는 무지의 소산”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안 의원은 “엔비디아는 수십 년 동안 그림을 그리는 전용 칩인 GPU를 만들던 회사인데 처음에는 인공지능에 이것을 사용할 줄은 창업자(젠슨 황)도 몰랐다”며 “인공지능의 딥러닝에서 병렬 실수 연산이 필요한 덕분에, 엔비디아는 그림 그리려고 만든 GPU로 인공지능 시대에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처음에 어떤 방향으로 갈지, 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르는 회사의 지분을 어떻게 국민들께 나눌 수 있겠냐”며 “그리고 성공한 지금은, 막대한 국고가 소요되는 주식을 어떻게 무조건 나누어줄 수 있겠냐”고 되물었다.
차기 대선 출마 의지를 나타낸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도 “이재명 대표가 아무리 오른쪽 깜빡이를 켜도 본질적으로 반기업적, 반시장적인 인물이라는 것이 다시 한번 증명됐다”면서 “엔비디아 같은 글로벌 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창업자의 지분도 자연스럽게 줄어드는 구조인데, 정부가 30%의 지분을 ‘국민 몫’으로 확보하겠다는 것은 기업 생태계를 전혀 모르는 발상”이라고 반박했다.
비판이 이어지자 이 대표는 4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AI 관련 기업에 국부펀드나 국민펀드가 공동투자해 지분을 확보하고, 그 기업이 엔비디아처럼 크게 성공하면 국민의 조세부담을 경감할 수 있다고 했다"며 해명에 나섰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을 겨냥해 “AI가 불러 올 미래에 대한 무지도 문제지만 한국말도 제대로 이해 못하니, 그런 수준의 지적 능력으로 어떻게 대한민국을 책임지겠냐”며 “극우본색에 거의 문맹 수준의 식견까지 참 걱정된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5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미래 첨단산업 분야는 과거와 달리 엄청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데 민간 기업에서 감당하지 못해서 국제 경쟁에서 문제가 될 경우는 국부펀드나 국민펀드 등의 형태로 온 국민이 함께 투자하고 성과를 나눌 수 있다”며 “이걸로 사회주의, 공산당이라고 하는데 이런 수준의 지식으로는 험난한 첨단산업 시대의 파고를 넘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만 TSMC도 정부 투자 지분이 초기에 48%였다”며 “대한민국만 미래 첨단산업 분야에 투자하면 안 된다는 무지몽매한 생각으로 어떻게 국정을 담당하겠다는 것인지 납득이 잘 되지 않는다”면서 자신을 비판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에게 AI 기술 관련 투자와 국가의 역할, AI 산업의 미래, 군의 현대화 문제 등을 두고 공개 토론을 제안했다.
사실상의 ‘대선 토론’ 되나
안 의원과 유 전 의원은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공개 토론에 응하겠다는 의사를 나타냈다. 안 의원은 “이재명 대표의 토론 제안을 받아들인다”며 “시간과 장소는 이재명 대표에게 맞추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 전 의원은 “국부펀드도 정부도 당연히 기업에 투자해서 지분을 가질 수 있고 팔 수도 있다”면서 "이 대표 말에서 정말 문제가 되는 부분은 ‘엔비디아 같은 회사가 생기고..’ 바로 이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에게 “어떻게 하면 엔비디아 같은 기업이 생기냐”고 질의하면서 “'엔비디아 같은 회사가 생기고' 이 말은 나에게 ‘도깨비 방망이가 생기고’와 똑같은 판타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런 혁신적인 기업가, 기술자, 노동자, 투자자들이 도대체 어디에서 나타나서 세계 최고 회사를 만든 것인지 이 대표가 답해야 한다”며 이 대표의 토론 제안에 대한 환영 의사를 밝혔다.
한동훈 전 대표도 이날 서울 마포구에서 열린 자신의 북콘서트 행사에서 “이 대표 말대로 국부펀드가 투자할 순 있는데 (소유·재원이 아닌) '투자'의 영역”이라며 "AI 시대에 혁신가들의 혁신을 지원하는 거다. 혁신이 성공할 경우 30%를 갖고 가겠다면 누가 그걸(기업을) 하겠나"라고 논쟁에 가세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선고를 앞두고 차기 대권 주자로 꼽히는 정치인들은 차기 대선 준비에 나섰다. 탄핵 인용 결정이 내려질 경우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경제 저성장이 지속되는 가운데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005930)마저 위기를 맞았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새로운 성장 비전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이 대표의 발언으로 시작된 ‘K엔비디아’ 논란을 계기로 대권 주자들의 두각을 나타내기 위한 경쟁이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