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지 마라

2024-07-03

 필자는 매일 새벽이면 경계(境界)를 넘는다. 자전거를 타고 정읍 내장산 추령(갈재)을 넘어 장승촌에서 보리수 열매를 따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곳은 행정구역상 순창이다.

 정작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지정학적 경계선이 아니라 ‘관계의 선’이다. 관계란 서로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유지되는 법이다. 그 상호불가침조약을 어기는 순간 신뢰의 삼팔선은 붕괴한다. 강도는 기존의 친밀 정도에 비례한다. 그 적나라한 예가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다. 두 사람은 검사동일체를 넘어 윤석열 사단의 암수 동체였다. 그 관계로 법무부 장관이 되었고 여권 2인자로 급부상했었다.

 하지만, 한 전 장관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지난 22대 총선에서 한 장관은 김건희 명품수수에 대해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다”라며 윤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렸다. 다가오는 7.23. 국민의힘 전당대회 당대표 출마의 변에서 윤 정부의 아킬레스건인 ‘채 상병 특검법’을 발의하겠다며 국민 감정선에 편승했다. 윤 대통령과는 이미 루비콘강을 건넜다는 공개선언이다. 이는 임명권자에 항명했던 윤 대통령의 업보이자 정치검찰의 속성이 아닐 수 없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은 국가 간에도 마찬가지다. 지난 6월 19일 북한과 러시아 정상은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조약’‘체결했다. 이에 대통령실은 러시아를 향해 “선을 넘지 마라”며 경고했었다. 지나가는 소가 웃을 선을 넘은 허풍이자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다름 아닌 러시아가 선을 넘는 행위를 할 수밖에 없는 단초를 윤석열 정부가 자초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19일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담이 그것이다. 공동성명 내용을 보면 한·미·일이 협력하여 대만과 우크라이나 문제에 공동 대응하자는 취지다. 이는 미국의 똘마니를 자처한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내정간섭이다.

 한미일 공동성명은 동맹조약 체결 수준이다. 효력을 가지려면 당연히 국회의 비준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한미일간 협의에 대한 공약’이란 꼼수를 동원했다. 이 공동성명으로 한반도 분단과 전쟁의 원흉인 일본과 한패가 되어 전장터를 자진한 셈이다.

 선을 넘어도 한참을 넘은 역사적 만행이 아닐 수 없다. 전쟁을 결정하는 것은 위정자들이지만 전장에서 죽어가는 것은 백성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그 역사를 반복한다’는 만고불변의 역사법칙이다. 21세기 한반도 정세를 보면서 19세기 말 전북이 주도한 동학농민혁명이 떠오른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1884년 청나라와 일본이 체결한 텐진조약으로 1894년 한반도에서 청일전쟁이 일어났다. 승리한 일본이 조선을 강탈하려 하자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죽창을 들고 외세에 맞선 것이 동학농민혁명이다.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공동성명이나 북러의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조약은 과거 청일(淸日)의 텐진조약이나 미일(美日)의 가스라 테프트 밀약처럼 주변 강대국에 의한 ‘선을 넘은 행위’다. 하지만 이를 자초한 것은 대한민국과 조선인민공화국의 무지하고 무능한 위정자들이다.

 우리 전북특별자치도민은 자랑스러운 동학농민혁명의 후예다. 고 한승헌 변호사가 지난 5월 11일 혁명기념일에 AI 축사했듯이 모두 21세기 동학농민군이 되어 130년 전 우리네 조상들이 꿈꾸었던 한반도의 평화와 자주를 이뤄야 하지 않겠는가.

 오늘도 넘지 말아야 할 관계의 선은 없었는지 자문하며 순창으로 선을 넘는다.

 염영선<전북특별자치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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