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지방대 총장 경험한 오연천의 대학개혁 조언

이재명 정부는 교육개혁 과제로 인공지능(AI) 디지털 시대 미래인재 양성, 교육격차 해소를 위한 공교육 강화, 지역교육 혁신을 통한 지역인재 양성 등을 추진하고 있다. 대학개혁 차원에서 거점 국립대 집중 육성, 서울대 10개 만들기, 열린 평생직업교육 체계 구축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중·고교 교육의 현실은 여전히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입시 위주 교육에 머물러 있다.
오연천(74) 울산대 총장을 만나기 위해 KTX에 몸을 실은 이유는 그가 국립대의 맏형격인 서울대 총장(2010~2014년)을 4년간 역임하고, 2015년부터 지방 명문 사립대 총장으로 11년째(3연임) 일할 정도로 현장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교육개혁은 노동개혁과 함께 대한민국 생존과 국가 경쟁력을 위해 매우 절박한 과제여서 교육계 원로에게 경험담과 지혜를 듣고 싶었다.
대학개혁, 정부개혁보다 어려워
대학 구성원들 공감 이끌어내야
산업구조 변화, 인력수요 고도화
교육 공급자인 대학도 달라져야
중국대학들은 활기, 한국은 침체
정부는 대학교육에 투자 확대를

-국립 서울대 총장과 지방 명문 사립대 총장을 모두 경험한 사례를 찾기 어려운데.
"서울대에서 30년 이상 근무한 경험이 있지만, 울산대는 교육 여건과 대학 운용 방식이 판이하다. 서울대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역할과 책무를 찾아내 배우고 적응하면서 소임을 수행해왔다. 서울대는 수요가 보장되고 계열사를 품고 있는 대기업을 운영하는 것 같다면, 울산대는 지역에 특화된 중견기업을 운영하는 것 같다."
-2011년 서울대 법인화를 마무리했고, 사립대도 개혁했는데.
"사립대는 학생 선호도와 재정수입 구조 측면에서 국립대와 근원적 차이가 있다. 급속히 진행되는 지방 쇠퇴와 맞물려 20세기 중·후반에 형성된 학문의 고전적 분류에 따른 학과·대학 체계를 재정립해야 하는 과정에서 구성원들의 공감대 형성이 어려웠지만, 소통과 설득으로 예산·인력 쇄신을 해냈다."
애리조나주립대, 파격적 혁신 노력
이승만 대통령의 미국 유학 시절 스승이었던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프린스턴대학 총장을 8년 역임했다. 1913년 그가 28대 대통령으로 백악관에 입성하자 워싱턴의 직업 정치인들은 "교수 출신의 정치 아마추어"라며 수군거렸다. 이에 윌슨 대통령은 "정부개혁과 기업개혁보다 힘든 것이 대학개혁"이라면서 대학 내부의 갈등 조정을 위해 정치적 조율 노력을 충분히 체험했다고 응수했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ASU)는 최근 11년 연속 미국 대학 혁신 1위다. 2002년부터 23년째 재임하고 있는 마이클 크로(70) 총장은 경제학·컴퓨터공학·인류학과 등 전통학과 69개를 폐지하고 30개 응용학과 등을 신설했다. 2002년 5만명이던 학생 수는 최근 20만명까지 증가했다.

-한국에서는 ASU 같은 대학개혁이 불가능한가.
"한국의 기존 학과 분류 체계는 20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것이라 대학 진학률이 76%를 넘는 시대에는 변화가 필요하다. 기존 산업구조가 급격히 변화하면서 전문 인력 수요가 융합·고도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학교육 공급이 기존 개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학교육의 문제는 대학 자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가 앞으로 어떤 미래인재를 필요로 하느냐는 문제이고, 미래의 국가 먹거리가 될 산업구조를 뒷받침해야 하는 문제다. 대학 구성원이든 정부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미래 수요 변화에 맞춰 순응하고 적응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인재 유출 막으려면 동기유발시스템 필요
-활기찬 중국 대학과 달리 한국 캠퍼스는 침체했는데.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우리는 국가 전체의 자원 배분에서 교육, 특히 대학교육에 대한 투자가 상대적으로 적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13위나 될 정도로 경제가 성장했지만, 그에 상응하는 만큼 교육 투자를 확대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중국·일본보다 한국이 교육 투자를 내실화해 개인과 국가의 역량을 더 끌어올려야 한다. 둘째, 우수 인재의 해외 이탈을 막기 위해서는 교수들의 교육 역량을 높일 수 있는 유형·무형의 동기유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대한민국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자부심을 고취해줘야 설득력이 생긴다."
-대학의 문제는 입시 제도와 연결된다.
"교육개혁은 대학교육의 문제만 갖고 논하면 안 된다. 대학교육의 전 단계인 중등교육이 과연 대학교육과 연계될 수 있는 기반 교육으로서 제대로 되고 있느냐에 대한 자성과 통찰이 필요하다. 고교 시절부터 입시와 경쟁 중심으로만 교육이 집중되는 것이 문제다. 문과는 로스쿨, 이과는 의대 쪽으로 인재가 과도하게 몰린다. 학생들이 각자 개성과 장점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 앞으로 미래 사회가 어떻게 갈 것인지, 각자의 사고 저변을 넓힐 수 있는 기반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지역 특성에 맞춰 지원수단 다양하게
김종영 경희대 교수가 2021년에 쓴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책을 계기로 시작된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놓고 정치권과 학계에서 논란이 뜨겁다. 서울대가 10곳 생기면 지역 소멸, 지방 인재 유출, 대학 서열화 등 고질적 문제들을 한 방에 해결할 수 있을까.
-서울대 총장 출신이 보는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미래지향적 인재 양성에 매진하는 대학의 역량을 획기적으로 증대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공감할 부분이 있다. 하지만 굳이 서울대 10개라는 표현은 추구하는 가치·목표·방법론에서 보완할 필요가 있다. 10개 대학이 추구하는 미래 인재를 어떤 개념으로 할 것인지, 그 목표를 달성할 교육자를 어떻게 양성하고 입시 제도를 어떻게 재정비할지 먼저 세밀히 검토해야 한다. 그런 것이 빠진 상태에서 그냥 서울대는 좋은 대학이니 전국에 10개를 만들겠다는 것은 삼성전자가 좋은 회사이니 삼성전자 10개를 만들겠다는 것과 비슷하다. 권역별로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미래 인재 양성은 물론이고 미래 학문 세대의 육성, 지역 산업에 참여와 기여, 보편적 시민 역량 배양 등 다양한 목표에 접근할 수 있는 모범적인 고등교육 기관을 지속해서 육성해야 한다."
-대학 재정에 지원할 돈이 유한한데 서울대 10개 만들려다 하향 평준화로 갈 우려는 없을까.
"지역 거점 대학에 대한 획기적 지원은 필요하지만, 꼭 10개로 국한하지 말고 지역 특성에 맞는 지원수단을 다양하게 검토해야 한다. 서울대 수준의 거점 대학을 만든다면 굳이 국립대학과 사립대학을 구분할 이유가 있나. 국립대학으로 국한해 정책 효과를 제약하지 말고 개방적 방향으로 가면 좋겠다. 고등교육 기관이 정부 지원을 받는다고 단기간에 목표를 달성하길 바라는 것은 과욕이다. 지원 목표와 수단을 적어도 10년 이상 장기적 관점에서 신중히 검토하고, 획일적 계획 수립과 재정 지원은 지양해야 한다."

전교조 출신 교육부장관, 균형감 필요
대학 개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교육부의 역할이다. 키를 쥔 최교진 교육부 장관은 전교조 부회장과 충남지부장 출신이다. 전교조 간부가 교육부 수장 자리에 오른 첫 사례다.
-전교조 출신 장관 체제에서 기득권 개혁이 가능할까.
"장관은 출신 배경에서 비롯된 문제의식을 최소화하면서 보편적 정책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균형감 있게 추진할 책무가 있다. 그동안 매진해온 초·중·고 교원의 지위 향상은 물론 필요하겠지만, 교육의 여러 목표 중 일부 문제를 전체 교육 시스템에서 일반화한다면 바람직하지 않다. 교육부 장관은 시대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 교육의 기본 목표와 정책 수단의 합리성, 자원배분의 효율성에 초점을 맞추면서 균형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교육 정책을 설계하는 것이 긴요하다고 본다."
-교육부와 기획재정부 사이에서 지방교육교부금 재조정이 가능할까.
"2012년 시작된 반값 등록금 정책은 대학들이 반대했지만 만연한 포퓰리즘 영향 때문에 개선되지 않았다. 2006년부터 내국세의 20.79%를 지방교육교부금으로 배정했는데, 일부를 대학교육에 재배정하자는 개선안에 대해 여야를 막론하고 교육자치단체장(교육감)들이 가장 강하게 반대한다. 이 문제는 진보정부든 보수정부든 재정개혁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 중 하나다. 이 문제만 잘 해결하면 고등교육 재원뿐 아니라 저소득층 지원에 투입할 재원도 마련할 수 있다. 대통령이 이런 방향으로 확실하게 제안하면 다수 국민이 공감할 것이다."
정치, 절대선 확신 벗어나 소통해야
정치경제학 연구로 시작해 재정학자로 봉직해온 오 총장은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등 6명의 역대 대통령을 교수 시절 직·간접적으로 만난 경험을 토대로 2023년 『국정 리더의 길』이란 책을 냈다.
-희망을 줘야 할 정치 때문에 절망하는 국민이 많은데.
"정치권은 각자 추구하는 가치와 목표가 '절대선'이라는 확신에서 벗어나 상대적 기준에 따라 상호존중·타협·포용의 정치문화를 보여줘야 한다. 정부는 정책을 수립하면서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적 사고체계를 유지하고, 진정성 있는 소통과 공감대 형성에 주력해야 한다. 대통령은 야당을 미롯한 국회와의 관계에서 타협과 포용, 상호존중의 자세를 갖고 소통을 주도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상대주의적 사고로 차선의 선택에 매진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선거에서 지지를 보류한 국민의 기대 욕구도 수용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지도자의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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