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숲의 소나무가 위기다. 최악의 산불 참사의 원인을 이야기하는 모든 논쟁에 어김없이 소나무가 애물단지로 등장한다. 산불 확산의 주요 원인이라는 이유에서다. 소나무를 솎아내고 다른 나무들을 많이 심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덧붙는다. 그래도 소나무가 민족의 역사와 함께한 우리의 대표적 문화유산인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바람 찬 바닷가에 서 있는 ‘강화 초지진 소나무’가 더 애틋해진 건 그래서다. 강화 초지진 소나무는 온몸으로 포탄을 맞으며 민족의 삶을 지켜낸 나무다.
1875년 일본의 군함 ‘운요호’가 무력 도발을 일으킨 곳이 바로 이곳 초지진이었다. 이 전투에서 왜군에 맞서 싸우던 35명의 우리 군사가 목숨을 잃었다. 일본군의 무차별 포격으로 초지진은 잿더미 되어 스러졌다.
폐허가 된 돈대 입구에 서 있는 소나무 한 쌍만 애면글면 살아남았다. 우리 젊은이의 죽음을 증거하는 포탄의 흔적은 나무줄기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상처는 지금도 확인할 수 있다.
강화 초지진 소나무 두 그루는 모두 나무높이가 10m를 넘고, 가슴높이 줄기둘레는 2.5m 안팎으로 자란 크고 아름다운 나무다. 왜군의 포탄이 깊이 박힌 한많은 상처를 붙들어 안았지만, 나뭇가지를 축축 늘어뜨린 ‘처진소나무’ 특유의 기품을 잃지 않았다.
조선 효종 7년(1656)에 설치한 강화 초지진은 운요호 사건에 앞서 병인양요, 신미양요 때에도 외적의 침입에 맞서 우리 병사들이 목숨 걸고 싸운 곳이다. 초지진 건축 초기부터 돈대 앞에 선 강화 초지진 소나무는 이 모든 민족사의 살아 있는 증거자다. 생과 사의 참혹한 갈림길을 넘나든 민족의 현실을 또렷이 지켜본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소나무가 많아서 산불에 위험한 건 과학적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땅에 소나무가 많기 때문에 산불 대책에 더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앞세워야 하는 게 긴 역사를 통해 수굿이 소나무를 사랑해온 우리 민족의 인문학적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