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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백호(26·KT)는 근래 몇 년 동안 활짝 웃을 수가 없었다. 아팠고, 부진했고,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매년 시즌 전, 또박또박 시즌 준비를 이야기할 때도 언제나 한참을 생각한 뒤 신중하게 입을 열곤 했다.
2025년 스프링캠프를 마무리해가는 지금, 강백호는 발랄해졌다. 스프링캠프 소감을 물으면 “지금까지 중 가장 힘든데, 가장 재미있다”고 말한다. ‘포수 강백호’로 정말 열심히 땀 흘리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스프링캠프는 예년보다 열흘 정도씩 모두 앞당겨 시작됐는데도 일본 오키나와에서 만난 강백호는 “캠프 기간이 굉장히 짧게 느껴졌다. 끝나는 게 처음으로 아쉽다. 지금까지 캠프 중에 몸은 가장 힘든데 (마음은) 가장 편하다. 힘은 들어도 포수로 바꾼 것을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고교 시절, 투수이며 포수이며 4번타자이기도 했던 투타겸업의 강백호는 프로 입단후 타자로 올인했다. 내·외야를 오가다 지난 시즌 중 갑자기 쓰게 됐던 포수 마스크를 올해는 아예 작정하고 쓸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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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백호의 스프링캠프를 역대급으로 힘들게 하는 것도, 데뷔 이후 가장 재미있게 만든 것도 포수 훈련 때문이다. 강백호는 입단 이후 처음으로 스프링캠프에서 완전히 포수로 훈련 중이다. 포수들은 일반 야수들과 달리 조를 이뤄 함께 움직인다. 가장 일찍 나가 타격 훈련 하고 다른 야수들이 타격훈련할 때는 불펜으로 이동해 투수들의 공을 받는다.
데뷔할 때부터 주전이었던 강백호는 보강훈련, 야간 훈련이 그리 필요하지 않은 선수였다. 그러나 이번 캠프에서는 포수들과 함께 매일 아침 가장 일찍 나가 가장 늦게 훈련을 마치는 생활을 했다. 장재중 배터리 코치도 “그 전엔 하지 않아도 됐던 야간 훈련과 엑스트라 훈련까지 강백호가 이번엔 하루도 안 빠지고 전부 다 해냈다”고 전했다.
강백호는 “양이 진짜 두 배는 많아진 것 같다. 전에는 내가 포함된 야수조 훈련만 끝나면 12시 반에 점심 먹고 숙소 돌아가서 웨이트트레이닝 1시간 하면 공식 훈련은 끝이었다. 오후 3시면 끝나던 스케줄이 이제는 8시는 돼야 끝난다”고 그 차이를 설명했다.
KT는 호주 1차 훈련에서 5명의 포수조를 꾸렸다. 그 중 강백호의 선배는 장성우 한 명이다. 동기 조대현이 있고 후배 강현우와 김민석이 있었다. 고졸신인으로 입단하자마자 1군에서 주전으로 활약한 강백호는 베테랑 타자가 많은 KT에서 늘 막내였다. 선배들 틈에서 ‘내 것’만 하면 됐던 전과 달리 포수조에서 함께 한 이번 스프링캠프에서 강백호는 후배를 챙기고 서로 피드백을 주고 의논하며 또래끼리, 무엇보다 포수끼리 ‘공유’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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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백호는 “정말 자부할 수 있을 정도로 훈련량이 가장 많았는데도 포수조가 좋고 뭉쳐서 하니까 같이 힘들고 같이 재미있었다. 원래 캠프에서 사진 같은 걸 별로 찍어본 적이 없다. 이번엔 포수들끼리 사진도 많이 찍었다. 쉬는 날엔 밖에 잘 안 나가는 편인데 포수들끼리 모여 밥도 먹고 구경도 다니니 좋았다. 굉장히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인터뷰 중 후배 김민석과 영상 통화를 나눈 강백호는 “(김)민석이가 되게 귀엽다. 작년에도 캠프는 같이 갔지만 사실 그때는 말을 한 마디도 나눠보지 못했다. 나를 굉장히 조용하고 무서운 선배로 생각했는데 밝고 재미있다고, 의외라고 하더라”며 웃었다.
일반적으로 야수들의 훈련은 ‘내 것’만 하면 되지만 포수는 투수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강백호는 지금 그 진한 맛을 체험해가고 있다. 절친한 선배이자 포수 선배인 장성우와 지금까지 중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눴다. 장성우는 “백호가 가장 많이 묻는 부분은 ‘투수들을 편하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이다. 사실 훈련이란 것이, 대부분 선수들은 자기 것만 하면 된다. 포수는 좀 다르다”며 “백호가 이제는 투수들 신경쓰면서 해야 되고 포수끼리 같이 움직이고 하는데 그걸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지금까지 캠프 중 이번이 제일 재미있다’고 자주 말한다. 굉장히 잘 하고 있다”고 전했다. 강백호는 “캐칭도, 볼배합도 나는 경험이 부족하다. 우리 투수들을 좀 더 잘 알려면 내가 좀 더 많이 공을 받아야 되고 소통해야될 것 같다고 생각한다”고 열의를 보이고 있다.
‘포수 강백호’로 올라서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타격이다. 기존에 잘 하던 것을 잃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타율 0.289 26홈런 159안타를 치고 96타점 OPS(0.840)을 기록한 강백호는 “작년 8~9월엔 그보다 더 못 칠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시즌 성적이 그렇게 끝났으니 잘 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 8~9월만 무난하게 넘겼어도 톱클래스 성적을 냈을 거라고 긍정적으로 보고 올시즌에는 그래서 더 잘 할 거라고 생각한다”며 “이번 캠프에서 타격 페이스가 그동안 중에서도 가장 빠르다. 커리어하이까지는 몰라도 그 정도까지는 갈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자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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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강백호가 대단히 주목받는 이유는 포수 변신에도 있지만 올시즌을 마치면 자유계약선수(FA)가 된다는 데 있다. FA 최대어로 미리 주목받고 있지만 강백호의 머릿속에는 지금 FA나 해외 진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작다. 지난 시즌 뒤 메이저리그사무국으로부터 신분조회도 받았던 강백호는 “작년엔 그 상태로 굳이 포스팅을 해서 해외에 가고 싶지는 않았다. 가게 된다면 정말 잘 할 때 가고 싶다”며 “나 역시 모두처럼 해외 진출의 꿈이 있지만 올해 잘 해야 된다. FA도 마찬가지다. 올시즌 잘 한 뒤에나 말할 수 있지, 지금은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금 강백호의 시선은 건강하게 잘 치고 투수들과 팀에 도움 되는 포수로 조금이라도 ‘성장’하는 데 꽂혀 있다. 강백호는 “작년처럼 다치지 않고 풀시즌을 팀과 같이 함께 하고 싶다. 그리고 우승하고 싶다는 목표가 지난 어느 시즌보다 더 강해졌다. 팀이 가을야구를 몇 년 연속 하다보니 이젠 우승해야 만족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포수를 시작하기로 하면서 내가 세운 목표는 ‘투수가 의지할 수 있는 선수’가 되는 것이다. 공부 더 많이 하고 투수들과 이야기 많이 하면서 한 명의 포수로서도 인정받고 싶다”고 말했다. ‘포수가 된 강타자 강백호’는 데뷔후 가장 힘들지만 가장 재미있는 시간을 통해 완전히 새로 태어나고 있다.